II. 형제의 결투(하)
주물대문 앞에서 엄마가 팔짱을 낀 채로 서 있었다. 기다렸던 모양인지 나와 썬의 그림자를 발견하자마자 입을 연다.
“너희 왜 이렇게 늦었어? 대체 이 시간까지…”
말줄임표부터는 너무 놀란 나머지 손으로 입을 막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면 되겠다. 아마 가로등 불빛에 비친 내 얼굴을 확인한 것 같았다. 아직 거울을 보지 못해서 정확한 상태를 알 수는 없었지만 얼굴 여기저기가 따끔 거리는 걸 보면 꽤 많은 상처가 생긴 걸로 짐작됐다.
“유림아. 네 얼굴 왜 이래?! 누가 이랬어?”
엄마가 내 얼굴을 어루만졌지만 나는 뒤로 물러나 그 손길을 거부했다.
“형이랑 좀 싸웠어.”
뒤 따라온 썬이 내 옆에 멈춰서 말했다.
“그럼 네가 형 얼굴을 이랬다는 거니?”
엄마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그렇긴 한데 우리는 어디까지나 정정당당하게…”
그러나 엄마는 녀석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주물대문 안쪽으로 뛰어 들어가 버렸다. 저렇게 급히 어딜 가는 거지? 나나 썬이나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잠시 후 재등장한 엄마의 손에 그 해답이 들려있었다. 지하 계단에 비치해 둔 플라스틱 빗자루가 그것이었다.
“어떻게 형 얼굴을 이래 놓을 수가 있니!”
엄마가 빗자루로 썬의 종아리를 세게 때렸다.(엄마는 힘이 약해서 세게 때려봤자 아프지는 않다.) 퍽 퍽 하고 청바지 터는 소리가 골목을 메아리친다. 그러자 녀석이 눈물을 왈칵 쏟았다.
“엄마! 나도 맞았어. 왜 나한테만 그래!”
노벨 평화상을 받아도 모자랄 정도의 엄마는 비폭력 평화주의자이다. 나나 썬에게 있어 엄마에게 체벌당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엄청난 쇼크인 것이다.
나도 어안이 벙벙해서 처음엔 멀뚱히 구경만 했다.(내 탓도 아니었고 맞는 모습이 고소해서 방관한 것도 있다) 썬이 억울한 상황인 것은 분명하나 그러기에는 녀석의 얼굴이 너무나도 깨끗하지 않은가.
얼마 후에 녀석이 양껏 맞았다고 생각한 나는(지금 생각해보면 그놈은 아버지한테도 맞았어야 했다) 그제야 엄마를 말리기 시작했다.
“그만해 엄마. 정정당당히 일대일로 붙은 거야. 엄마가 이러면 내 꼴만 더 우스워져.”
내 말에 엄마는 빗자루를 땅에 떨어트렸다. 그리고는 얼굴을 감싸고 소리 죽여 울기 시작했다. 참고로 드라마의 악역이 죽는 장면을 보고도 불쌍하다며 눈물을 흘리는 광명의 천사니까 이 정도 사건이라면 대성통곡할 일인 셈이지. 곧 썬도 눈물을 꾹 참으며 지하층으로 사라졌다.
“엄마. 나 친구네 좀 갔다 올게.”
내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하필 이렇게 늦게…”
엄마는 말끝을 흐리더니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자정을 넘긴 일요일 밤에(엄밀히 말하면 월요일 새벽) 갈만한 친구 집이 어디 있겠는가. 단지 이렇게 울적한 기분으로는 잠을 청하고 싶지 않았던 거고 엄마도 그걸 눈치챘을 뿐이다.
나는 집을 등지고 정처 없이 걸음을 옮겼다. 가을을 심하게 타는 타입이라 걸을수록 더 우울해진다. 나무들은 대부분 탈모가 진행 중이었고 간혹 머리숱이 무성한 나무들만 멋내기용 염색을 하고 있었다. 초록 나뭇잎 중간중간에 울긋불긋한 단풍잎이 무질서하게 섞여있는 모습이 마치 신체검사 때나 보게 되는 색맹 검사 표 같다.
한강 나들목 돌계단에는 금빛 은행나무 잎들이 층층이 깔려있어서 마치 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방불케 했다. 나는 토끼 굴을 통과해 기름처럼 새까만 한강과 맞닥쳤다. 강바람은 땅 바람보다 차서 닿자마자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다. 조금 더 걷다가 철제 펜스가 없는 지점에 멈춰 섰다.
처량한 신세다. 동생한테 맞고서 홀로 한강을 찾는 형이라니. 나는 손으로 더듬더듬 얼굴을 만져 보았다. 응고된 피가 딱지로 변했는지 피부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여기 있을 줄 알았다.”
그때 누군가 내 곁으로 다가왔지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목소리만 들어도 정체를 알 수 있었으니까. 바로 형을 무참하게 폭행한 동생 썬이었다. 나는 콘크리트 호안에 그대로 앉아버렸다. 썬도 내 옆에 앉는다.
우리는 바늘 한 코 들어갈 틈 없이 새카만 하늘로 나란히 시선을 고정했다. 달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지만 드문드문 떠 있는 별 때문에 밤하늘이 설탕가루를 뿌려놓은 듯 반짝인다.
“받아. 형 거야.”
썬이 느닷없이 종이컵을 내밀었다.
“웬 종이컵?”
내가 묻자 녀석은 초록색 소주병을 들어 보였다.
“한 잔 하려고. 2층 냉장고에서 하나 빼왔어.”
나는 종이컵을 낚아챘다
“아버지한테 걸리면 네 책임이다.”
썬은 득의의 표정을 짓는다.
“괜찮아. 아버지가 술 가르쳐줬으니까 이제는 마음대로 마셔도 된다는 뜻이야.”
“설마 그게 그런 뜻이겠냐.”
녀석과 나는 서로에게 알코올을 채운 다음 종이 잔으로 건배했다. 그다음엔 썬이 고개를 돌리고 잔을 손으로 가리는 것 같길래 내가 야유했다.
“우우. 적당히 해. 평소에는 형을 개떡같이 알면서 주도 챙기기는.”
썬이 잔을 비우고 말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나는 불평했다.
“그나저나 안주는 없어? 과자 같은 거라도 좀 챙겨 오지.”
“그냥 좀 마셔라. 왜 그렇게 까탈스럽게 구냐.”
그렇게 티격태격하면서도 우리는 연거푸 술잔을 주고받았다. 한 병을 다 비울 즈음 반대편 잔디블록에서 귀뚜라미가 울기 시작한다.
“나는 피해의식이 많은 것 같아. 어렸을 때부터 항상 형하고 비교를 당해왔으니까.”
젖은 종이컵을 꾸기고 썬이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차별은 나도 반대네요. 설마 하니 너는 지금까지 나를 가해자로 간주 해온 건가?”
나는 약간 서운해졌다.
“형을 탓하는 게 아니야. 단지 나는 걱정이 돼. 가끔은 내가 엉뚱한 데다가 화풀이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야.”
녀석은 입술까지 바르르 떠는 것 같았다. 나는 못 본 척 넘겨버렸다.
“썬. 가족이니까,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이해하고 넘기라고들 하잖아. 생각해보면 그거 웃긴 거야. 오히려 가족이니까 더 크게 상처 받는 건데 말이야.”
“웃기긴 하네. 웃음은 안 나지만.”
썬은 그렇게 말하고 몸을 비틀었다. 나도 말을 비틀었다.
“다니엘씨가 그러는데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나중에 추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대.”
“잘 이해가 안 가는데. 약간 취해서 그런가.”
그 말에 내가 녀석을 보듬었다.
“앞으로는 표현하라고. 그게 뭐든. 그리고 그게 누구든.”
우리는 어깨동무하고 걸었다. 강에서 부는 바람이 파도처럼 밀려든다. 내가 막 토끼 굴로 뛰어 들려는데 썬이 내 팔을 붙잡았다.
“형. 동아줄이다.”
자전거 전용도로에 굵은 밧줄이 널브러져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다 터널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시 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는데 아래로는 가파른 잔디블록 전체가 파란 비닐 시트에 덮여있다. 그 시트를 일정한 간격으로 고정하는 밧줄들 중 하나가 분명했다. 내가 말했다.
“저 고정용 밧줄이네. 하나가 풀어졌나 봐.”
썬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묻는다.
“그나저나 잔디에 왜 저런 짓을 하는 거야? 추워지니까 보호하려는 건가.”
“아니. 잔디가 도망갈까 봐 묶어두는 거지.”
나는 그렇게 실없는 소리를 던졌다. 녀석은 무시하고 걸음을 옮기더니 밧줄을 들고 돌아왔다.
“형. 줄다리기 안 할래?”
“취했냐. 관심 없으니까 빨리 집에나 가자.”
“집에 빨리 가려고 그러는 거야. 택시비 내기 어때?”
내가 물었다.
“너 스쿠터 타고 온 거 아니었어?”
썬이 반문했다.
“그럼 음주 운전하게 될 텐데?”
“아아. 그건 안 되지. 알았어. 택시비는 내가 낼게.”
그러자 건방진 동생 녀석이 감히 형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뭐 자신 없으면 말든가. 하긴 밥을 먹어도 나보다 2년이나 더 먹었는데 지면 망신이지 뭐.”
“그 따위 도발에 내가 넘어갈쏘냐.”
나는 밧줄을 나눠 들고 반대편 보행자용 전용도로에 뚝 멈춰 섰다. 결코 도발에 넘어간 건 아니다. 갑자기 택시비가 아까워져서.
“혹시 걸어오는 사람 있으면 멈추기다. 그때도 계속하면 반칙이야.”
“오케이. 중간에 볼록거울 있지? 거기까지 먼저 끌려가는 사람이 지는 거야. 나중에 딴 말하기 없기다.”
썬이 그렇게 엄포를 놓았다.
“너나 딴 말 하지 마. 이 건방진 놈아. 자! 하나 둘 셋 하면 시작한다.”
우리가 잡은 줄이 어느 정도 팽팽하다고 느껴졌을 때 내가 외쳤다.
“잠깐! 셋. 할 때 시작이야? 아니면 셋. 하고 나서 시작이야?”
이게 뭐 별거라고 녀석은 유난을 떤다. 내가 대답했다.
“셋. 하고 나서 시작. 거 참 말 많네!”
그러나 대화가 끊기자 은근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바람도 풀벌레 소리도 심지어는 시간마저도 멈춘 듯하다. 우리는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나와 반대편에 있는 저 녀석은 어딘지 모르게 나와 비슷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어 살짝 웃고 말았다. 썬과 내가 동시에 외쳤다.
“하나 둘 셋!”
줄다리기 시합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무엇일까. 우리 팀? 상대팀? 혹은 장비? 모두 아니다. 그것은 바로 레프리다. 경기의 반칙이나 승패를 판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심판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공정한 룰에 입각하지 않은 경쟁은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고 그것을 깨닫는 순간 누구나 중도 포기하려 할 것이다. 즉, 잡고 있던 줄을 손에서 놓아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고 마는 거다.
그것이 왜 안타깝냐 하면 치열한 경쟁으로만 여겨지던 형제의 줄이 사실 한편으로는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는 줄이기 때문이다. 팽팽하게 당겨진 로프를 보며 저 멀고 어두운 반대편에 나와 비슷한 녀석이 분명하고 여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기에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기분 좋은 땀방울을 흘릴 수 있는 거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강력하다. 결국 형제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공정한 부모다. 특히 사춘기 시절에 부모가 내리는 판정은 그야말로 최종적이며 또한 절대적이다.
문제는 바로 그때 침투하는 차별인데 그것은 공정한 경쟁이라는 고매한 가치를 저해하는 바이러스이며 타고난 것에 의해 정해진 역할을 강요하는 폭력이나 다름없다.
물론 장남 우선주의 원칙을 고수하는 아버지가 나에게는 항상 유리하기는 할 테지만 이제는 날카롭게 호각을 불 차례이다.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번 에피소드를 마무리하겠다. 아아. 마지막으로 그날 우리의 줄다리기 시합 결과는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