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형제의 결투(상)
형제란 정말 애매한 관계다. 처음에는 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비슷한 생활방식을 공유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나중에는 환경적인 요인에 의하여 얼마든지 다른 인생을 가질 수도 있다.
당장에 나와 썬만 보더라도 외모부터 성격까지 완벽한 평행선을 달리고 있지 않은가. 미성년자라는 족쇄 때문에 아직은 둘 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실타래마냥 엉켜 살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아가페에 가까운 부모님과는 유대감의 종류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모를 기준으로 하면 형제란 남이라기엔 가깝고 가족이라기엔 먼 그런 애매모호한 사이가 되어 버리는 거지. 굳이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피가 섞인 친구 정도랄까.
어른이 되고, 철이 들면 좀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원래 현실은 시궁창 같은 거다. 멀리 볼 필요도 없다. 우리 아버지의 형제관계는 거의 가루 수준에 가까울 정도로 엉망진창이다.
실망스럽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어른이 되면 더 현명해지는 게 아니라 더 이해관계에 밝아질 뿐이다. 다시 말해 어떤 관계든 지금이 가장 좋은 순간인지도 모른다.
다시 조금만 돌아가자. 나는 가족 간의 유대감을 곧잘 ‘줄’에 비유하곤 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이 탯줄이다. 그렇다면 형제관계는 과연 어떤 줄에 비유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 서로 이어져 있기나 한 건지 의구심이 들 때도 더러 있지만 어쨌든 그에 관해서는 꽤 오랫동안 고찰해온 터라 결국 해답에 근접하게 되었다.
잠깐 초등학교의 가을운동회를 상상해보자. 직경 32밀리미터의 마닐라 로프를 편을 갈라 잡아당기던 줄다리기 시합. 형제관계란 바로 그 경쟁의 ‘줄’이다. 상대방을 먼저 자기 쪽으로 끌어와야 승리하는 바로 그 경기의 매개체 말이다.
혹시라도 지금까지 소개된 에피소드를 통해 나와 썬의 관계를 단순히 우애 좋은 형제로 착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그건 당신의 오해라는 걸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우리는 함께 지내온 세월의 대부분을 처절하게 힘겨루기 해왔으며 이번 에피소드는 그 전쟁 중에서도 가장 파이팅이 넘쳤던, 녀석과 내가 마지막으로 주먹다툼을 하게 된 일화다.
참고로 말해두는데 썬은 어릴 적부터 싸움을 잘했다. 그냥 그렇다고.
찬바람이 가을을 몰고 온 10월 5일 일요일이었다. 요일까지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그 날이 수능 딱 한 달 전이었기 때문이다.
오후에 반 친구 몇 명이 나를 방문하기로 예약돼있었다. 내 방을 성지 순례하기 위해서였는데 부모님의 맨투맨으로부터 탈 압박이 가능한 옥탑방은 또래들 사이에서는 그야말로 유토피아나 다름없다.
나는 B팩토리 앞에서 친구 두 명을 만나 집까지 에스코트한 다음 2층에 들러 부모님께 인사시켰다. 순례자들은 명물로 통하는 연지색 계단에 입을 맞추고 경건한 마음으로 루프탑에 올랐다.
그러자 수호동물인 럭키가 외부인을 발견하고 사납게 짖어댄다. 나는 공포에 떠는 친구들을 안심시키며 스틸 도어를 열었다. 그런데 정결해야 할 내 거처를 누군가 떡하니 점령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그 불결한 녀석이 누구겠는가. 다름 아닌 썬이, 내 침대에 누워 팔자 좋게 만화책을 보고 있었다.
“얘기 좀 하고 들어와 있어라. 매너도 없냐.”
내가 까칠하게 말했다.
“뭘 새삼스럽게. 빈 방이면 있을 수도 있는 거지.”
보통 때와 다름없는 썬의 반응이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이 대결을 지켜보는 관객들이 있었기에 녀석의 태도가 심히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남동생을 둔 사춘기 남학생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철없는 시절에는 동생의 군기를 잡는 것이 마치 포획한 사냥감을 박제하여 자기 동굴 앞에 진열해두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나는 헌팅 스탬프 따위에는 흥미도 없고 그런 부류로 하향 평준화되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었지만 막말로 체면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야. 한번 말하면 좀 들어. 말대꾸하지 말고.”
나는 한껏 무게를 잡고 입을 열었다. 물론 내 실체를 훤히 아는 썬에게 그런 허접한 위협 따위 통할 리 없었다. 오히려 녀석은 가소롭다는 듯 비웃더니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왜 그래. 뭐 잘못 먹었어?”
그 말에 울컥해서 나도 모르게 썬의 뒤통수를 그대로 후려갈겼다. 그러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이 크게 고꾸라졌다. 음. 큰일 났군. 생각보다 힘 조절이 안 된 모양이다.
천천히 몸을 세우는 녀석의 이마에 시퍼런 핏줄이 툭하고 솟는다. 나는 식겁했지만 겉으론 애써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으르렁거렸다.
“뭘 쳐다봐?”
썬은 대꾸도 하지 않고 눈동자만 번득인다. 마치 결투를 앞둔 총잡이 같았다. 그러나 나 역시 그만둘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리고 형 친구들 봤는데 인사도 안 하냐.”
최대한 껄렁하게 들리도록 노력했다. 난데없이 소환된 두 친구는 어쩔 줄 몰라하는 얼굴로 우리 사이에 껴 있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
고심하던 나는 가죽 홀스터에서 권총을 뽑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썬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나는 움찔했지만 녀석은 내 친구들에게 고개만 까닥하고는 그 길로 꽁무니를 뺀다.
맥 빠지는 나의 승리를 목도한 친구 하나가 내게 말했다.
“유림. 너 보기보다 대단하다. 네 동생 혼자서 주변 학교 다잡는다고 소문났던데.”
나머지 친구도 거들었다.
“그러게. 선배고 뭐고 안 가린다던데. 아까 보니까 포스 장난 아니더라.”
내가 으스대며 말했다.
“형 앞에서 포스가 어디 있어. 지가 날고 기어봤자 중학생이지. 됐고 어서 안으로 들어와.”
나는 승자의 여유로 순례자들을 맞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치열한 교전 끝에 승전보를 남겼다고 생각했으니까.
성지순례를 마친 친구들과 밖을 쏘다니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헤어졌다.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루프탑에 돌아오니 덜 찬 보름달이 무시무시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형. 잠깐 얘기 좀 하자.”
썬의 목소리였다. 어둠 속에 매복한 채여서 나를 부르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그냥 지나칠 뻔했다. 녀석은 원목 평상에 앉아 고슴도치마냥 몸을 둥글게 말고 있었다. 나는 시치미를 딱 떼고 털이 바짝 서 있는 녀석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무슨 얘기?”
썬이 전투를 재개한다.
“아까 낮에는 형이 너무 심하지 않았어?”
2차전의 막이 오른 셈이다. 나는 코웃음부터 쳤다.
“웃기지 마. 네가 원인 제공을 한 거잖아.”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바닥에 벗어둔 슈퍼스타를 신고 일어섰다.
“그렇지만 남들 앞인데 형이 좀 심하긴 했잖아. 그래도 나름 형 입장 생각해서 그냥 참고 내려 간 거야.”
그랬었군. 하지만, 그래 고마워,라고 대꾸할 수도 없는 노릇인 데다 오히려 자존심마저 상했다. 안 그래도 싸움꾼으로 소문난 녀석인데 서로 덩치가 비슷해지면서부터는 내가 힘으로도 조금씩 밀리는 상태(저번 달 추석에 벌어진 씨름, 팔씨름, 레슬링, 닭싸움에서 4연패를 당했다)라 얼마 없는 형의 위신에 스크래치가 상당했다.
“안 참았으면 어쩔 건데. 한판 붙기라도 하려고?”
그 말에 썬이 바짝 다가와 도발했다.
“내가 많이 참은 거니까 알고나 있으라고.”
그래, 그건 이미 잘 알고 있으니까 이제 그만해주렴, 이라는 속마음과 반대로 나는 녀석의 얼굴에 코를 박고서 말문을 뗐다.
“네가 싸움 좀 한다고 까부나 본데 한번 죽어볼래?”
원래는 더 거친 말을 내뱉고 싶었으나 평소 욕설 및 비속어 사용을 지양하는 터라 저게 최선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썬도 전혀 물러설 마음이 없어 보였다.
“형. 여기서 이러지 말고 밖으로 나갈까?”
썬은 날카로운 송곳니까지 드러내며 씩 웃고 있었다. 나는 흠칫하고 말았다. 녀석의 발언인즉슨, 적합한 장소에서 스파링을 벌이자는 의미다. 2차 성징이 끝난 남자 형제가 나누는 몸의 대화는 고스란히 기물 파손으로 이어지므로 우리끼리 정한 암묵적인 룰이었다.
그러나 나는 답변을 보류한 채 빠르게 잔머리를 굴렸다. 두렵지는 않았으나 얼마 전 엄지산에서 또래 다섯 명을 홀로 제압하던 썬을 우연히 목격한 터라 가급적 피하고 싶은 싸움이었다.
“좋아. 삼십 분 뒤에 백석 어린이 공원에서 보자.”
울며 겨자 먹기로 승부수를 걸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매듭을 짓는 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
썬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소 쿨하게 루프탑을 내려간다. 나도 방 안으로 들어와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그래! 어쩌면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몰라. 지금이야말로 침몰하는 형의 권위를 구출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이니까. 그런 생각으로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카키색 스톤워싱 카고 팬츠에 라운드 니트 티셔츠 겉에는 블랙 가죽재킷을 걸쳤다. 나는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그 안에 싸움에 이골이 난 용병 같은 녀석 하나가 서 있다. 싸움은 주먹으로 하는 게 아냐, 깡으로 하는 거지, 그렇게 명대사를 읊고는 한쪽 입 꼬리만 올려서 미소 지었다.
시간을 확인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도색이 벗겨진 주물 대문을 터프하게 열어젖혔다. 백석 어린이 공원은 집에서 불과 백오십 미터 거리라 오 분도 채 걸리지가 않는다. 어두운 골목을 통과해서 큰길로 들어서자 차고 마른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코끝이 저릿저릿했다.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 도 없이 공원에 다다르니 낙엽이 타는 냄새가 진동한다.
“어이. 여기야.”
을씨년스러운 공원 한복판에서 썬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출입 금지’라는 종이가 붙은 노란색 바리케이드를 겨우겨우 뛰어넘어 링 안으로 입장했다. 예산 문제로 몇 년째 보수가 중단된 상태라 현재는 공터나 다름없는 곳이다.
“옷이 너무 터프가이인데. 좀 과하지 않아?”
그렇게 조롱하는 녀석은 스판 청바지에 회색 후드 집업 차림이다. 아까 입었던 복장 그대로 출전한 듯했다. 하긴. 뉴욕 양키스만 이기는 이유가 핀 스트라이프 유니폼 때문이라 걸 녀석이 알 턱이 없지. 나는 녀석을 노려보았다. 허공에 서로의 시선이 맞부딪치며 불꽃이 튀는 것 같다.
“이렇게 붙는 것도 오랜만이군. 거의 일 년 만인가?”
내가 운을 띄웠다.
“뭐야. 혼자 액션 영화 찍어? 멘트가 왜 그 모양이야. 어쨌든 추우니까 바로 시작하자.”
녀석은 여유만만이다. 나는 이를 드드득 갈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주먹을 턱까지 올리고 한 발은 뒤로 빼서 몸을 45도로 튼다. 그리고 무릎은 살짝 굽히고 발꿈치를 들어 리듬을 탄다. 가만히 지켜보던 썬이 한마디 했다.
“하루 종일 자세만 잡을 거야?”
그러나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평정심을 유지하며 썬과의 거리를 재고 있었던 거다. 기다리다 보면 반드시 한 번은 기회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결국엔 썬이 한숨과 함께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안 올 거면 내가 간다.”
바로 그 순간 녀석의 빈틈이 보였다. 나는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하지만 역시 관성의 법칙이란 사람을 꼴사납게 하는 법이다. 썬은 가볍게 피하는 동시에 내 발목을 툭 걷어찼다. 덕분에 나는 차가운 우레탄 바닥을 몇 미터나 나뒹굴어야 했다. 바닥이 푹신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뻔했다.
재빨리 일어나 썬을 바라보니 미안해하기는커녕 표정이 어느 정도 풀려있었다. 건방진 동생 놈 같으니라고. 양반다리로 못 앉는 녀석이라 버르장머리가 없군. 나는 바싹 약이 올라서 그때부터는 기본자 세고 뭐고 그냥 죽기 살기로 덤벼들었다.
그렇게 무작정 주먹을 휘두르다 보니 아마 몇 번 정도는 녀석의 얼굴 근처로 펀치가 날아가기는 했나 보다. 썬이 갑작스레 멀찍이 거리를 두고 소리쳤다.
“형. 우리 서로 얼굴은 안 때리기로 하지 않았었나? 나는 그래서 일부러 형 얼굴은 안 건드렸는데 말이야.”
듣고 보니 그런 협정을 체결한 것 같긴 했다. 서로 주먹 다툼한 게 티가 나면 집 안팎으로 골치 아픈 일이 많아지니까 말이다. 하지만 녀석의 깔보는 듯한 말투가 내 부아를 더욱 치밀어 오르게 만들었다.
“웃기시네! 싸움에서 무슨 규칙을 따져. 이기면 장땡이지.”
그랬더니 이번에는 썬의 눈이 풀려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역시 거기서 그만했어야 했다.
“아하. 그래? 오케이. 그럼 나도 제대로 하지 뭐.”
그때까지만 해도 방어 일변도로 일관하던 썬의 움직임이 별안간 기민해졌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면들이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나뒹굴기를 반복하면서 추가적으로 얻어터지기까지 했다. 보다 못한 녀석이 타이르듯 조언을 건넨다.
“형. 주먹을 끝까지 보라니까. 겁난다고 눈 먼저 감으면 안 돼. 그리고 펀치는 짧게 끊어치고.”
그 말에 이성을 잃고 몇 번 더 돌격해봤지만 그럴수록 더 크게 나가떨어질 뿐이었다. 어떠한 공격도 녀석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마지막에 가까스로 일어나니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썬과 대면할 수 있었다.
“형. 그만하자. 더 이상은 못하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씩씩대며 녀석의 멱살부터 움켜쥐었다.
“싫은데! 이 정도면 준비운동에 불과하지! 이렇게 된 거 아예 끝장을 보자! 둘 중 하나가 정신을 잃으면 끝나는 거야! 어때?!”
그러나 썬은 더 이상 싸울 의사가 없다는 듯 양팔을 내려 보일 뿐이다. 나는 오기로라도 입을 뗐다.
“끝까지 가려니까 이제 슬슬 겁이 나나 보지?”
“그럼. 끝까지 가는 건 무섭지.”
녀석은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한다. 나는 엉성하게 잡은 멱살을 풀며 최대한 근엄한 표정으로 충고했다.
“다음부터는 안 봐줘. 앞으로는 형한테 까불지 마라.”
썬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도록 하지.”
참으로 허술하게 빌어먹은 항복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형으로서 해야만 하는 최후의 발악이기도 했다. 이제 남은 자존심은 단 한 가닥뿐이다. 썬이 약간 뒤처져서 내 뒤를 따라왔다.
나는 일부러 누렇게 굳어버린 낙엽을 밟으며 걸어갔다. 낙엽은 바스락 소리를 내며 부서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