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만취된 삼부자
스쿠터를 은신처에 주차한 뒤, 집으로 돌아와 각자 마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런 다음 나는 쌀을 씻고 썬은 청소를 했다. 지붕은 우두두 내리치는 비를 견뎌낸다. 내가 전기밥솥에 취사 버튼을 누르자 청소를 마친 썬이 현관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눅눅한 바람이 들이치면서 현관바닥의 빨간 타일도 금세 젖어버린다. 아아. 축축한 건 이제 신물이 난다. 이 세계를 탈수기에 넣고 통째로 돌려버릴 수는 없는 건가.
“문 열어두고 뭐하니? 비 들이치는데.”
어느새 퇴근한 아버지가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우리는 식탁에서 급히 일어나 고개를 조아렸다.
“환기 좀 시키느라고요. 일찍 끝나셨네요?”
내가 말했다. 아버지는 고개만 끄덕이고 발레리노처럼 발끝을 편 채 욕실로 걸어간다.
“도서관 간다더니 왜 둘 다 아직까지 집에 있누?”
그 질문에 썬과 나는 자연스레 서로를 쳐다보게 되었다.
“취소됐어요.”
썬이 대답했다.
“그러니까 휴관이죠.”
나는 곧바로 정정했다. 그랬더니 뜬금없는 지령이 하달된다.
“그럼 외식하러 갈 거니까 둘 다 준비해라.”
칙칙폭폭 소리를 내는 전기밥솥은 증기기관 열차마냥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다. 내가 이의를 제기했다.
“지금 밥 하고 있는데요?”
아버지는 세탁물을 벗어던지며 묵살해버린다.
“그건 그거고. 아무튼 준비해라.”
욕실 문이 닫히고 썬은 어깨부터 으쓱했다. 종잡을 수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나 우선은 베란다로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비 냄새가 진동하는 세탁물을 털어 넣었다. 폭삭 젖은 옷가지가 무거운지 세탁기가 휘청거린다.
장맛비는 그쳐있었다. 나와 썬이 아버지를 따라 도착한 외식장소는 목동중앙본로 7길 대로변에 위치한 대폿집이었다. 가게 이름은 서커스. 그러면 그렇지. 역시 패밀리 레스토랑 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니까.
초저녁이라 가게 안은 아직 한적했다. 천장의 15와트 알전구가 어스름한 주황빛을 내뿜는 실내는 허름하긴 해도 아늑한 분위기였다. 우리는 홀 중앙의 네모난 철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후, 은발의 할머니가 두 팔 벌려 반색하고 다가왔다.
“자네 왔는가. 안 그래도 아들들하고 같이 온다길래 기다렸더구먼 어제 갑자기 못 온다고 했지 않은가?”
아버지는 할머니의 고목 같은 손을 맞잡는다.
“그럴 줄 알았는데요, 어쩌다 보니 시간이 맞아서 같이 왔어요.”
그러자 할머니가 나와 썬을 보고 방긋 웃었다. 크게 지는 눈가 주름이 마치 가뭄 든 땅처럼 패여 있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어깨가 든든하겠어. 아들들이 이렇게 다 커서.”
할머니가 말했다. 아버지는 머쓱한 듯 머리만 긁적인다.
“선생님. 애들은 소고기로 주시고 저는 돼지 삼겹살. 비계 많은 걸로요.”
할머니는 지겹다는 얼굴이다.
“그놈의 비계 타령! 소주도 늘 먹던 거지?”
“네. 그럼요.”
아버지는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장면을 포착한 나와 썬은 휘둥그레진 눈을 슴벅거렸다. 볼드모트+사우론의 미소는 슈퍼문만큼이나 희귀하니까.
“아저씨. 오랜만에 오셨네요?”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청년이 밑반찬과 고기를 서빙하며 말을 꺼냈다.
“그래. 할머니 도와드리고 있구나? 기특하네.”
아버지가 나름대로 격려했다.
“뭘요. 등록금 버는 셈 치고 아르바이트하는 거죠.”
청년은 그렇게 대답하고 마지막으로 유리잔을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아버지가 기다렸다는 듯 주문한다.
“잔 두 개 더 갖고 오너라.”
청년이 어리둥절해했다.
“누구 더 오세요?”
“아니. 애들 꺼.”
그 말에 청년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벌써 술 가르쳐 주시게요?”
아버지는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네 놈도 내가 열일곱에 가르쳐줬다. 얘들도 이제 나이가 찼으니 엉뚱한 데서 배우기 전에 내가 가르쳐야지.”
이게 웬 떡이람. 그 말에 입가로 번지려는 미소를 꾹 눌러 담았다. 옆자리에 썬도 광대가 하늘 높이 솟아있다. 곧이어 유리잔 두 개를 손에 든 청년이 되돌아온다.
“유림이랑 유선이는 좋겠네. 아버지가 술도 가르쳐주고. 어릴 때 봐서 너희는 나 누군지 기억도 못하지?”
응. 아무래도 초면이다. 우리가 우물쭈물해하자 아버지가 닦달했다.
“당연히 기억 못 하지. 빨리 가서 숯불이나 가져와. 고기 굽게.”
그랬더니 남자는 능청스럽게, 예 예, 하며 사라졌다. 아버지가 우리를 번갈아본다.
“자고로 첫 술은 어른한테 배워야 실수가 없는 법이란다. 어른한테 술을 받을 때는 이렇게 두 손으로 받는 거야. 한잔씩 받아 봐. 장남 먼저.”
나는 아버지의 손 모양을 따라 하며 유리잔을 쥐었고 이어서 썬도 나를 따라 했다. 아버지는 두 잔에 차례로 술을 채우고는 소주병을 내게 건넨다.
“이번에는 따라봐. 어른께 술을 올릴 때는 오른손으로는 이렇게 상표를 가리고 왼손으로 가볍게 술병을 받치는 거야. 술은 칠 할만 따르렴.”
나는 손을 덜덜 떨며 아버지의 빈 잔에 술을 채웠다.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건배할 때는 항상 어른보다 잔을 낮게 부딪치고 마실 때는 고개를 돌려서 입을 가리고 마셔야 한다. 그게 주도라는 거지.”
그러면서 소주잔을 앞으로 내민다. 우리도 손을 뻗어 조심스레 건배하고 차가운 소주를 목으로 넘겼다. 아버지가 묻는다.
“처음으로 맛 본 술맛이 어떠냐?”
내가 물로 입을 헹구고 말했다.
“소독용 에탄올 같아요.”
썬은 연신 기침을 해댄다.
“쓴데요.”
그러자 아버지는 껄껄대며 웃는다.
“어디 나가서 술을 마시더라도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 그리고 유선이 너는 형 덕분에 이년이나 술을 일찍 배운 거니까 특히 조심하고.”
그 말을 들은 썬은 아버지와 나에게 굽실거렸다. 그리하여 그때부터는 본격적인 술판이 벌어지게 된 거다. 차가운 알코올이 가슴에서 뜨겁게 달궈진다. 알딸딸하다는 기분을 처음으로 배우고 나니 실내가 동굴처럼 느껴졌다. 세 남자가 소주 일곱 병을 비워낼 즈음, 할머니가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아니. 애들한테 뭔 술을 이렇게 많이 먹여! 처음 배우는 건데 적당히 해.”
아버지는 흐뭇한 얼굴로 대꾸한다.
“처음 배울 때 제대로, 아주 확실히 배워야죠. 제 핏줄인데 잘 마시지 않겠습니까?”
할머니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자식 자랑 한번 유별나네. 하다못해 이제는 술 잘 마시는 걸로다가 자랑 질을 하려고?”
그 말에 나와 썬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아버지는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다. 혼나지만 않으면 그나마 본전. 아버지는 그런 우리에게 고개를 돌렸다.
“얘들아, 이 분이 아빠 은사님이셔. 선생님께도 술 한잔 올려드리렴.”
할머니는 손 사레를 쳤다.
“난 됐네. 오늘은 괜찮아.”
아버지는 아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 수 없죠. 그럼 화장실 좀 다녀올 테니까 그동안 잠깐만 애들 좀 봐주세요.”
그렇게 부탁하고는 정면에 보이는 카우보이 도어를 향해 지그재그로 걸어간다. 할머니는 플라스틱 원형의자를 가져와 나와 썬 사이에 앉았다.
“많이 먹으렴. 모자라면 더 말하고.”
나와 썬은 약간 비틀거리긴 했지만 이마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머리를 숙여 보였다.
“그나저나 강아지는 찾았니? 쿠키인지 뭔지.”
할머니가 우리에게 귀를 가까이 대고서 물었다.
“럭키요? 벌써 몇 달 전에 다시 돌아왔는데요.”
썬이 얼른 대답했다.
“아아 그랬구나. 다행이네. 너희 아빠가 그 강아지를 찾느라고 밤에 혼자서 돌아다니고 그랬는데.”
그 말에 내가 몇 번이나 고개를 흔들었다.
“아버지가요? 확실한가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에 그 강아지를 찾으러 요 근처까지 왔다가 나랑 마주쳤었는걸. 아무튼 정말 다행이야. 걱정 많이 하는 것 같았거든.”
나와 썬은 발그레해진 얼굴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할머니는 기름이 딱딱하게 눌어붙은 불판을 보며 입을 열었다.
“비계만 다 골라 먹었네. 하여튼 식성은 여전해.”
내가 질문했다.
“혹시 아버지가 어릴 때부터 비계만 드셨나요?”
할머니가 답했다.
“그 시절에는 다 그렇게 먹었지. 살코기는 귀해서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으니까.”
썬이 흥분해서 꼬부라진 발음으로 말을 꺼낸다.
“특이한 게요. 아버지는 라면도 퉁퉁 불려서 먹어요.”
할머니는 자기 무릎을 탁 쳤다.
“라면도 귀했어. 한 번은 너무 불리다가 국물이 다 졸아버렸지 뭐니. 그때 얼마나 서럽게 울던지.”
너무 취해서 잘못 들은 건가. 내가 재차 확인했다.
“울기도 했다고요? 저희 아버지 가요?”
할머니는 부연설명에 들어간다.
“아주 울보였지. 마음이 여렸거든.”
나와 썬은 흔들거리는 눈동자로 서로를 지켜본다. 아버지의 우는 모습이라. 어쩐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물론 딱 한번 본 적은 있다. 아마 내가 열 살 때, 이사 가는 차 안에서였을 거다. 우리 집이야 평소에도 이사를 밥 먹듯이 했으니 그게 별일은 아니었지만 그날만큼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서울을 벗어나게 되었다.(물론 정확한 사정이야 어렸던 내가 알리도 없고 지금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아무튼 오늘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에, 4인 가족과 이삿짐을 한가득 실은 일 톤 트럭 한 대가 쫓기듯 서울을 빠져나갈 무렵, 운전석에 앉은 아버지는 말없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뒷좌석에 웅크리고 있던 나는 일부러 그 장면을 못 본체 했다.
“나는 제자 중에 너희 아빠가 제일 기특하단다. 자기 집 마련하겠다고 열심히 살더니 목표도 이루고 자식들도 잘 키우고. 단지 자기 직업에 자부심만 좀 가졌으면 좋겠구먼.”
할머니는 안타깝다는 듯 말을 건넸다.
“자부심이라뇨?”
내가 되물었다.
“자기 자식들은 절대 자기처럼 살면 안 된다고, 그렇게 안 만들 거라며 입버릇처럼 말하거든. 특히 직업에 관해서 말이야. 물론 힘든 일이니까 이해는 간다만 그 직업으로 이만큼 가정을 꾸려온 만큼 이제는 자부심을 가져도 되지 않겠니?”
제 말에 호랑이, 아니 아버지가 돌아와 끼어들었다.
“선생님. 애들한테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세요. 혹시 저 없는 동안 제 흉보신 거 아니에요?”
할머니는 아버지의 두툼한 등짝을 찰싹 때린 다음 사라져 버렸다. 실내는 더욱 시끌벅적해져 있었다. 그로부터 세 남자는 소주 여덟 병을 더 비우게 된다.
대폿집 문을 나선 건 자정을 넘긴 새벽이었다. 술 먹고 실수하지 말라던 아버지는 골목을 마구 휘젓고 다녔다.
“얘들아. 택시 잡아라. 택시!”
잔뜩 취한 목소리로 소리친다.
“여기 골목이라 택시 없어요. 그래서 아까 대로변에서 택시 잡자고 했잖아요.”
내가 해롱대며 대꾸했다. 뒤따라오는 썬은 아예 맛이 간 것 같았다. 눈앞에 출현한 언덕길을 보고 이렇게 중얼거린다.
“여기부터는 슬로프인데. 곤돌라가 어디 있지?”
아버지는 우렁차게 외쳤다.
“언덕 따위야 별 거 아니지! 전 씨 집안 남자들에게 불가능이란 없어! 다 같이 어깨동무!”
그러자 썬이 멀찍이 떨어져서 분위기를 깬다.
“저는 힘들겠는데요. 여기부터는 따로 갈까요?”
아버지는 호안을 지그시 치켜떴다. 썬이 즉각 제자리로 돌아와 너스레를 떤다.
“제가 경솔했군요. 아버님. 끝까지 부축해드리겠습니다.”
우리 셋은 어깨동무를 한 채로 가파른 언덕길을 올랐다. 안 그래도 습한 더위에, 찐득거리는 열기 덩어리들마저 양옆으로 딱 붙어 있으니 온몸이 금방 땀으로 흥건해질 수밖에 없었다. 비틀거리는 아스팔트에 가로등 불빛이 흘러내린다.
드디어 삼분의 이지점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아버지가, 억! 하고 옆으로 크게 휘청거렸다. 하지만 썬이나 나나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리 없다. 결국 썬이 가장 먼저 쓰러졌고 그다음은 아버지, 마지막으로 내가 넘어졌다. 결과적으로 세 남자는 찰흙처럼 한데 뭉쳐 언덕 아래로 데굴데굴 굴러내려 갔다. 평지까지 우당탕탕 하더니 스트라이크.
“다들 괜찮으냐?”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왼쪽에 엎어져 있던 썬이 자신의 어깨부터 어루만진다.
“전혀 안 괜찮아요. 역시 따로 갈 걸 그랬네요.”
나는 팔다리를 쭉 폈다.
“잠깐 쉬었다 가요. 더는 못 움직이겠어요.”
아버지가 푸념조로 동의했다.
“그러자. 에이 씨. 옷도 다 버렸네.”
나와 썬은 그 모습을 보고 히죽거리기 시작했다. 웃음도 전염되는 건지 아버지도 따라 웃는다. 주취자 세 사람은 만취상태로 길바닥에 누워있으면서도 나사 하나 빠진 것 마냥 실실 대고 있었다. 나는 문득 빙글빙글 돌아가는 어슴푸레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계속 그러고 있다가는 티끌 한 점 없는 새벽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형! 민달팽이 또 있어. 지금 아버지 쪽으로 지나간다.”
아득한 썬의 외침에 고개를 드니 누리끼리한 민달팽이 한 마리가 아버지의 겨드랑이 근처를 기어가고 있었다. 역시나 등에 집은 없다. 아버지가 말했다.
“원래 민달팽이는 습기를 좋아해서 특히 장마철에 많이 볼 수 있단다. 저기 옆에 봐봐. 시체들도 많지?”
나와 썬은 그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아버지 말대로 민달팽이들이 죽은 흔적들이 아스팔트 도로 여기저기에 납작하게 달라붙어있었다.
“왜 이런 도로까지 나와서 죽었을까요? 그것도 떼로요.”
내가 물었다.
“아마 어딘가로 가고 있었겠지. 이 녀석들은 발도 없어. 겨우 1분에 1센티미터 이동하니까 이렇게 기어가다가 깔려 죽고 말라죽고 하는 거야.”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민달팽이는 이제 아버지의 팔꿈치 부근을 막 통과하고 있었다. 달팽이가 지나쳐간 자리는 마치 물풀을 발라놓은 듯 반짝인다. 생물시간에 배운 대로라면 점액을 내면서 썰매처럼 그 위를 미끄러져 기어가기 때문이다.
“자! 이제 가자. 계속 이렇게 있으면 경찰 온다.”
아버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나도 썬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그런 다음엔, 모두가 진흙범벅이지만, 다시 한번 서로가 서로를 부축한다. 그러기를 수차례, 기어코 가파른 언덕 정상에 올라선 아버지가 이마의 땀을 훔치고 말했다.
“그래도 돌아갈 곳이 있는 우리는 행복한 거란다. 민달팽이 봐봐라. 저렇게 집도 없이 돌아다니잖니. 안 그러냐?”
나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아버지의 등을 바라보았다. 십 년 전 맞닥뜨린, 투박한 눈물을 흘리던, 새파란 청년이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청년은 이렇게 입을 연다.
“집으로 출발!”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전, 나는 뒤를 돌아 세 남자가 함께 밟아온 비탈길을 내려다보았다. 거기에는 민달팽이가 머물다 간 자국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에메랄드처럼 빛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집으로 돌아온 엄마가 작은 소리로 비명을 내지른 건 충분히 납득할만한 일이었다. 엄마 말에 따르면 상처투성이의 세 남자가 엉망진창이 된 옷을 그대로 입고서 거실을 나뒹굴고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신발도 벗지 않은 채로 말이다. 그날 이후로 삼부자의 관계가 어떻게 됐느냐고?
물론 더욱 가까워졌지,라고 한다면 거짓부렁이겠지. 그 따위 가족 드라마를 기대한 독자가 있다면 EBS 교육방송이나 시청하도록.
어쨌든 초록하자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아버지는 여전했고 우리도 여전했으니까. 그나마 고무적인 부분은 엄마가 없는 날이면 나와 썬이 아버지의 식사를 대신 챙기게 된 것 정도랄까. 물론 그럴 때면 아버지는 늘 그렇듯 밥은 너무 질고 반찬은 너무 짜다며 타박을 주기는 하지만 남기지는 않고 전부 다 먹는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