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마더 & 젠틀맨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진부한 속설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모두 첫사랑이 아닌 커플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일 것이다.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정의가 연애인지 결혼인지 그렇다면 결혼이 사랑의 산물인지 아니면 사회학적 발명품인지를 논쟁하자는 게 아니다.
그 속설을 경험할 시간이 우리에게도 다가오고 있다는 거다. 수천만의 부모가 승화시킨 법칙을 자녀들이 가업처럼 이어나가는 거지. 물론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가능성도 공존하긴 하나 내 경우(안녕, 갈라테이아)만 보더라도 첫사랑이 이루어질 확률이 희박한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 부모님은 어떠냐고? 안타깝지만 예외일 리 없지.
일단 아버지에 관해서는 크게 관심 없으므로 패스. 스무 살에 나를 낳아 나와는 나이차가 겨우 스무 살밖에 나지 않는, 서른일곱의 요조숙녀 같은 엄마에게도 한때는 첫사랑이라는 게 있었나 보다.
엄마와 첫사랑이라니. 솔직히 잘 와 닿지 않는 조합이다. 엄마는 태어났을 때부터 그저 엄마였으니까. 대부분의 자식들처럼 나도 그런 걸 생각하면 손발부터 오그라드는 거지. 엄마는 보이면서 여자는 보이지 않는 거다. 실제로 엄마는 한편으로는 여자이기도 한데 말이다. 그것은 어떻게 비치는지에 따라 모양이 다르게 보이는 달과도 같다.
평소라면 안중에도 없던 그 조합을 억지로 끼워 맞추게 된 계기는 6월의 첫째 주 금요일이었다. 어디든 그늘의 경계선을 벗어날라치면 뜨거운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초여름의 첫 공휴일. 나와 썬은 아침부터 오목교역 부근 백화점에 있었다.
“형이랑 서점에 오는 건 고역이야. 벌써 점심시간이잖아. 다음에는 아예 원터치 텐트라도 챙겨 오지 그래.”
독서를 싫어하는 썬이었다. 지하 2층에 입점한 대형서점을 벗어나자마자 또 시작이다.
“네 녀석이 하도 보채서 제대로 읽은 책이 없어.”
내가 하소연했다.
“형. 적당히 좀 하지? 거의 두 시간 동안 있었거든.”
참고로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집에서는 소설 구독이 금지(당연히 아버지가 금지시켰고 엄마가 몰래 나를 구제했다)되어 있다. 이따금씩 서점에 들러 종이 냄새라도 맘껏 맡는 것이 유일한 낙인데 그걸 뻔히 아는 녀석이 터진 입이라고 떠들어대는 꼴이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다. 내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잔소리할 거면 왜 따라왔어? 그냥 집에 있지.”
그러자 썬은 어깨부터 으쓱하고 이내 딴청이다. 하긴. 귀차니스트인 이 녀석이 뭐 하러 아침부터 나를 따라 서점에 오겠는가. 아버지는 공휴일 및 주말마다 우리 방의 청소상태와 운동화 빨래 및 용모복장 등을 철저하게 검사한다. 군대의 저녁 점호를 상상하면 되겠다.
우리는 LED 전광판이 번쩍이는 멀티플렉스 극장을 지나쳐 대리석 기둥을 돌아들었다. 어디나 샤넬, 구찌 로고가 찍힌 가방을 든 아줌마들로 득실거린다. 썬이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며 말했다.
“반디 앤 루니스는 별로야. 우리 같은 애들은 홀대하잖아. 어른들한테는 친절하기만 하면서. 이중적인 놈들.”
사실이 그랬다. 동네에 대형 서점이라고는 이곳 하나뿐이라 공휴일이면 사방에서 우리 같은 애들이 몰려들었는데 서점 입장에서 보면 마진도 안 남는 청소년 따위가 달가울 리 있겠는가.
나는 녀석을 추스르며 1층 출입구로 향했다. 매끈한 철제 프레임의 강화유리문을 힘껏 밀자 온습한 바람이 빨려 들어온다. 우리는 언제 초록으로 변할지 모르는 신호등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단 몇 걸음뿐인데도 에어컨 금단현상 탓인지 목덜미부터 땀이 배기 시작한다.
백화점 위로는 얼마 전 완공된 69층의 초호화 주상복합 아파트가 기세 좋게 하늘을 받치고 서 있다. 헬기가 착륙할 수 있는 꼭대기 층까지 보려면 림보 하듯 몸을 뒤로 더 젖혀야만 한다. 신호를 기다리던 썬이 탄성을 내질렀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엘리베이터만 타고 내리면 백화점이고 영화관이네. 와 부럽다.”
나는 괜스레 샘이 나서 악담을 해버렸다.
“뭐가 부럽냐! 너무 높아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데.”
신호가 바뀐다. 우리는 횡단보도를 지나 물청소된 석회암 질감의 보도블록을 걷는다. 초고층 오피스텔과 방송국의 신사옥, 백화점과 주얼리 상점들이 밀집해 있는 이곳이 바로 목동의 중심가다.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높은 건물에 둘러싸여 요란한 건물풍이 몰아치는 이 거리도 햇빛으로 가득했던 때가 있었다. 요 몇 년 사이, 이 동네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투성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썬이 예고도 없이 멈춰 섰다. 덩달아 나도 급정거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래?라고 물으려던 찰나 썬이 입을 연다.
“형. 저기 엄마 아니야? 옆에 웬 남자지?”
그 말에 눈에 잔뜩 힘을 주고 포커스를 세밀하게 조절했다. 흐릿하지만, 익숙한 실루엣 옆으로 정체모를 남자가 나란히 걷고 있다. 나는 조급해졌다.
“어떻게 하지? 숨을까?”
이제 엄마와의 거리는 백 미터 정도로 좁혀져 있다.
“숨긴 왜 숨어? 죄 진 것도 없는데.”
도리어 썬은 엄마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도 재빨리 따라붙는다. 오십, 사십, 삼십, 이십. 십 미터 앞에서 녀석이 외친다.
“엄마. 여기서 뭐해?”
엄마는 그대로 뚝 멈췄고 썬은 팔짱에다 짝 다리까지 아무튼 최고로 불량스럽게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다. 광장은 시끌벅적했지만 마치 네 사람만 투명한 결계 안에 갇혀 있는 듯했다.
“안녕하세요. 유나 씨의 자제분들이군요. 반가워요.”
엄마 옆에 선 남자의 인사말에 긴장상태가 더욱 견고해졌다. 나는 남자를 빠르게 스캔했다. 진한 눈과 오뚝한 콧날의 미남형 외모, 진회색 핀 스트라이프 슈트에 와인색 로열 크레스트 타이를 하고 가슴에는 실크 소재의 포켓치프, 마지막으로 적당한 근육질 몸매까지 흠잡을 데 없는 클래식한 슈트의 신사다. 남자는 엄마에게 고개를 돌렸다.
“유나 씨.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그럼 저는 이만.”
그리고는 갈색 폴리오 케이스를 흔들며 사라져 버렸다. 우리 셋은 각자 다른 표정으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스토랑의 실내는 가족단위의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벨벳 소재의 의자에 앉자마자 썬과 내가 익숙하게 런치메뉴를 주문한다. 엄마와는 자주 방문하는 터라 메뉴 정도는 꿰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아버지와는 잠깐 들려본 적도 없다. 패밀리 레스토랑에 정작 패밀리로는 온 적이 없는 셈이지. 싸고 양 많은 걸 좋아하는 아버지는 낭만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니까.
“엄마 화장했네?”
썬이 무심한 척 물었다. 나는 엄마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평소보다 뽀얀 피부 톤에 양 볼도 핑크빛이고 버건디색 입술까지 반짝인다.
“그러게. 옷도 예쁘게 입고.”
내가 발목까지 내려오는 시폰 재질의 원피스를 가리키며 거들었다. 엄마는 워낙 어린 나이에 결혼한 터라 일부러 꾸미지 않아도 늘 생기가 넘쳐 보이지만 이렇게 꾸미니 또 다른 사람 같아 보였다.
“엄마도 가끔은 꾸며.”
엄마는 약간 수줍은 듯 입을 열었다. 화이트 베이스의 라인스톤 귀걸이에는 수술이 달려있어서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화려하게 찰랑거린다.
“그나저나 둘 다 집에서 자고 있는 줄 알았더니 여기엔 무슨 일로 온 거니?”
엄마가 그렇게 묻길래 내가 시큰둥하게 답했다.
“딱히 볼일은 없어. 그냥 뭐…”
“아까 그 남자는 누구야?”
썬이 중간에서 말을 가로챘다. 나는 민망해진 입술을 닫았는데 어쩌다 보니 은근히 함께 답변을 기다리는 꼴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대화는 소강상태에 빠진다. 여직원이 트레이에 싣고 온 메뉴를 테이블 위에 늘어놓고 간 다음에도 분위기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어릴 적 친구야.”
엄마가 간단히 말했다.
“단순히, 그냥 친구?”
썬이 수상쩍은 눈초리로 묻는다. 내가 중재하려는데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딘지 모르게 아득해 보이는 미소를 머금고 말이다.
“지금은 그래.”
나는, 그럼 옛날에는 어땠는데? 하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그 질문이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그건 썬도 피차일반인 듯했다.
그때부터는 녀석이나 나나 그저 치킨 샐러드만 우적우적 입안으로 쑤셔 넣었을 뿐이다. 그때, 저기… 하고 운을 뗀 엄마가 망설이며 말을 꺼냈다.
“오늘 일은 우리끼리만 알고 있었으면 해. 괜한 오해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해줄 거지?”
나는 썬과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썩 맘에 드는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사이에 공공의 적은 따로 있었으니까.
“둘이 단순한 친구사이가 아니라니까.”
썬은 해가 진 한강 호안 블록에 팔베개를 한 채로 말했다. 콘크리트에는 아직 초여름의 열기가 남아있어서 나는 손으로 연신 부채질을 해야만 했다.
“그럼 엄마가 바람이라도 피우고 있다는 거야?”
녀석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이런 추측을 내놓았다.
“복수인지도 모르지. 아버지는 옛날에 몇 번 소소하게 피우다 걸렸잖아?”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엄마 같은 사람이 복수를 한다니 상상이 안 가.”
녀석도 속으로는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아스콘으로 포장된 자전거 전용도로만 빤히 바라볼 뿐이다.
2차선 도로에는 개인용 스피커로 트로트를 크게 틀고 경주용 자전거를 타는 쫄쫄이 족의 행진이 한창이었다. 나도 나중에 저런 아저씨가 되는 걸까. 그건 너무 끔찍하다. 그러면서 왜 불현듯 그 남자가 떠올랐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근데 그 남자 진짜 멋있긴 했어. 혹시 탤런트 아닐까?”
그러자 썬이 탐탁지 않은 표정부터 꺼내길래 재차 물었다.
“넌 엄마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게 싫은 가봐?”
“좋을 건 또 뭐야.”
녀석의 모난 소리를 내가 은근히 비꼬았다.
“언제는 돈 많은 새아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더니?”
“형은 엄마가 바람을 피워도 상관없어? 그건 불륜이잖아.”
나는 호안 바닥을 뒹구는 돌멩이 하나를 집어서 흐르는 강물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증거도 없이 그렇게 몰아가면 안 되지. 여하튼 지금은 친구라잖아.”
"아 씨. 모르겠다. 집에나 가자."
썬은 화풀이하듯 격하게 몸을 일으키더니 먼저 걸음을 옮겼다.
개나리색 줌머가 터널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4행정 수랭식 엔진에 네이키드 프레임. 전후륜 모두 드럼 브레이크. 프런트 서스펜션은 텔레스코픽, 리어 서스펜션은 유니트 스윙이며 시트 중앙에는 혼다사의 로고가 새겨져 있다.
“지금은 아니라지만 옛날에 서로 좋아했다면?”
썬이 스쿠터에 시동을 켜고 말했다. 나는 말뚝박기 하듯 녀석의 등 뒤로 가볍게 올라탄다.
“첫사랑 같은 거 말이야?”
그러자 녀석은 리드미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와 첫사랑이라. 잠시였으나 박하사탕을 깨문 것 같은 씁쓸한 청량감이 느껴졌다. 나는 썬의 다부진 등을 세게 두드렸다. 남쪽 멀리로 엷은 상현달이 손으로 문지른 것처럼 번져있었다. 줌머는 심란한 소음을 내며 초여름 밤을 가로지른다.
습하고 무더운 수요일이었다. 교실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툭 툭 건드렸다. 돌아보니 죽도를 든 감독교사가 내 곁에 바짝 다가와 있다.
“교문에서 삼촌이 기다리신다니까, 그만 가 봐.”
그렇게 속삭이고는 유유히 사라져서 순간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삼촌? 설마 무덤에서 십 년 만에 부활한 건가.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 부리나케 가방을 챙겼다. 그야말로 럭키!
수용소 같은 교실을 탈출한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문 앞에 다다라 좀비일지도 모를 삼촌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유림 군.”
네이비색의 더블 브레스티드 슈트를 말쑥하게 차려입은 신사가 나를 불러 세웠다. 엄마 옆에 서있던 바로 그 남자다.
“안녕하세요. 혹시 저를 기다리신다는 삼촌이…”
나는 엉겁결에 인사했다.
“네, 맞아요. 마땅한 핑계가 없어서 그렇게 둘러댔어요. 시간 되면 함께 식사라도 하고 싶은데.”
그러면서 밝은 표정으로 교문 앞에 주차된 벤츠의 뒷문을 열었다.
“유선 군도 이미 기다리고 있어요.”
그 말에 안을 들여다보았다. 촌스러운 자주색 교복 재킷을 걸친 중학생 하나가 뒷좌석에 시니컬하게 앉아있었다. 내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썬. 어떻게 된 거야?”
녀석은 양 손바닥을 펼쳐 보인다.
“나도 몰라. 일단 타.”
나는 쭈뼛거리다 썬의 옆에 앉았다. 녀석은 눈을 감고 자는 척(정말 잔 걸지도 모르지만)하고 있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푹신한 나파 가죽 시트에 몸을 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