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년으로 머무는 노스탤지어
가산디지털단지의 IT 기업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인원이 열 명 남짓인 그 회사의 기본 방침은 사내에서 인사하지 말 것이었다. 회사는 오로지 일만 하는 장소이며 인사가 업무효율을 떨어트린다는 이유에서였다. 능력만 있으면 인성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회사가 내세우는 가치관은 나의 그것과는 대척점에 있어서 적응하는데 제법 애를 먹었더랬다.
어느 날 점심시간 직후 팀장 두 명이 회사에서 자취를 감췄다. 방금 전만 해도 함께 식사하고 카페에 들렀던 터라 회사 측에서도 당황해할 수밖에 없었는데 알고 보니 몰래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간 것이었다. 황당한 일이었으나 요약하자면 대충 이러하다.
회사의 간부들은 모두 같은 교회의 형제·자매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소속된 인천의 모 교회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고 그 소식을 뉴스로 접한 팀장 둘은 자신들이 접촉자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들은 괜한 불안감을 조성하지 말라는 교회 장로 겸 사내 전무의 지시에 따라 그 사실을 은폐했다.
내막이 밝혀졌을 때 책임자인, 두꺼비를 닮은, 사내 이사는 단순한 판단 착오라며 그들을 감싸기 바빴다. 물론 그 회사에서 겪은 비상식적인 일들이 하루 이틀은 아니었으나 이번에는 좀 심하다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구상권 청구까지도 고려하였으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코로나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고 회사는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갔다.
인사성 밝던 나는 그날부터 회사 방침에 따라 인사 없이 출퇴근했다.
한밤중에 느닷없이 잠에서 깼다. 나는 홀로 다락방이었고 기척은 벽장 안에서 새어 나왔다. 나는 고양이 발로 다가가 목재로 된 벽장문을 확 열어젖혔다.
“거기 누구야?!”
“진정하세요.”
어디서 들어본 듯한 남자아이의 목소리다.
“너는 누구야? 여기엔 왜 들어왔어?!”
“진정하세요. 오르골 태엽을 찾았어요. 그래서 여기로 올 수 있었어요.”
도통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나는 전등 스위치를 찾아 손을 더듬거렸다. 그러자 소년이 다급하게 입을 연다.
“불을 켜지 말아 주세요. 내 모습을 봐서는 안돼요. 부탁할게요.”
나도 모르게 소년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소년의 그림자는 감사하다며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저는 고등학생이에요. 아저씨는 삼십대죠?”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지금 내게는 우정이 가장 중요해요. 아저씨에게도 그런가요?”
뭐야, 이 녀석. 그러면서도 순순히 대답했다.
“글쎄다. 아닐걸.”
“그럼 아저씨는 역시 변한 걸까요? 지금도 친구가 있기는 해요?”
왠지 실망한 듯한 말투다. 나는 이유도 없이 미안해져서 아무렇게나 둘러댔다.
“카톡에는 많지.”
“카톡이 뭐죠?”
“카카오톡. 메신저 말이야.”
“아아. 버디버디 같은 거군요?”
나는 헛웃음이 났다.
“그건 아주 옛날 거잖아. 나 학창 시절 때나 쓰던 거라고.”
“그건 나도 알아요. 나는 당신의 과거니까요. 나는 과거에서 왔어요.”
“뭐라고?”
그러거나 말거나 소년은 신나게 떠들어댄다.
“점심시간에는 축구를 해요. 사·탐 시간에는 땡땡이치고 매점에 가죠. 야·자는 담탱이가 있는 날만 해서 석식도 신청 안 해요. 집에 가면 네이트온부터 켜요. 오프라인으로 접속하는 건 관심 있는 여자애 때문이에요. 얼짱 소리 듣는 애인데 캠빨일지도 모르죠. 하여간에 하두리는 믿을 수가 없다니까요. 그렇다고 깔을 만들고 싶다는 건 아니에요. 정말 좋아하는 애는 따로 있어요. 그 친구가 마왕을 좋아해서 매일 고·스를 듣지만 사실 제 취향은 정지영의 스위트 뮤직박스죠. 어차피 소리바다에서...”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년의 말을 막아 세웠다.
“잠깐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니?”
그러자 소년은 시들어가는 꽃처럼 고개를 숙인다.
“준환이가 죽었어요. 갑자기 자살해버렸다고요. 가장 친한 친구잖아요. 나는 어떻게 해야 해요?”
그 이름을 듣자마자 나는 무너져 내렸다. 나는 가까스로 벽에 몸을 기대어 버티고 서 있다.
“나에게 편지도 남겼대요. 하지만 차마 못 읽겠어요. 그저 무섭고 도망치고 싶어요.”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나도 그래, 라며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본 소년이 내게로 다가온다.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점점 눈꺼풀이 따끔거린다.
“내가 괜한 짓을 했군요. 미안해요. 어른이 되면 다 괜찮아 질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걱정마요. 당신은 잠이 들 거고 그럼 내가 다녀간 일이 전부 꿈처럼 느껴지겠죠...”
나는 소년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잠이 들어버렸다.
다음날 새벽, 나는 침실에서 눈을 떴다. 꿈이었을까. 몸을 일으키자마자 다락방으로 올라가 조심스레 벽장문을 열어본다. 역시나 소년은 없다.
대신 하늘색 수납박스가 있다. 산처럼 쌓인 잡동사니의 틈바구니에 분명 일그러져있다. 나도 알아. 그 상자 속에 준환이의 편지가 들러붙어있다는 걸. 지금껏 애써 외면해온, 녀석의 편지 말이야. 나는 추억함을 열고 편지를 꺼냈다. 그리고 비로소 그의 죽음과 마주한다.
어이. 베·프.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게 될까? 수능을 보고, 대학에 가고, 군대에 끌려가고, 제대하고, 졸업하고, 취직하고, 나이가 됐으니 결혼을 빙자한 거래를 준비하고. 결혼해서 종족 번식을 위해 생각 없이 애를 낳고, 정신없이 기르다 보면 다 늙어 있을 거야.
사람들은 자신의 발달에 맞는 과업이 있다며 그것을 완수하지 않는 인간을 미성숙하다 비난하지만 그런 인간들이야말로 왜?라고 묻지 않지. 그것이 빠져나올 수 없는 쳇바퀴인데도 좀처럼 호기심을 갖지 않는단 말이야. 너에게 한 가지만 물을게. 지금이라도 네 의지로 수능을 거부할 수 있겠어?
너를 비난하는 게 아냐. 누구에게나 흐름을 거스르는 일은 어려워. 그래서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기게 되지. 그게 편하니까. 그러면 안주하게 돼. 나는 그렇게 살 바에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어.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니까 교회 다니는 애가 그러더라. 자살하면 천국에 못 간다고. 지랄하고 자빠졌네.
세상을 둘러봐. 지나칠 정도로 살아가는 것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있어. 매일 쏟아져 나오는 광고와 상품들에 시선을 빼앗기다 보면 죽음은 먼 얘기 같고 막연하게 두려워져.
결국엔 어떻게든 살아가는 것만이 정답이 돼지. 그렇다고 죽음을 오답 취급해선 곤란해. 삶은 분명 가치 있는 것이지만 네 선택지에 죽음이 없다면 너는 늘 착취당하게 될 테니까.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굶어 죽을까 두려워서 무언가를 하고 있을 거라고.
사랑하는 내 친구 유림아. 나는 이제 네버랜드로 떠나려 해. 그곳에서 잃어버린 아이들을 이끌게 될 거야. 이별은 언제나 슬픈 법이지. 내 선택을 이해해달라고 하지 않을게. 다만 늘 너를 기다릴 거야. 언젠가 좋은 글을 쓰고 싶다고 했지? 네가 해낼 거라 믿어. 나는 법을 잊지 않도록 해.
나는 벽에 몸을 기댔다, 어젯밤 꿈에서처럼. 그러면 그렇지. 이 피터팬 녀석은 언제든 내게 해답을 준다니까.
탄력을 받은 나는 심심한 애도를 표하며 상자를 아주 뒤엎었다. 굵은 회색 먼지가 일렁이며 케케묵은 내용물들이 쏟아져내린다.
초등학교 알림장, 스쿠비두 매듭 열쇠고리, 다마고치, 꾸러기 수비대 지우개(똘기, 호치, 새촘이), 사과 삐삐, 엽기토끼 인형, 미니카 블랙 모터, 마이마이, 포켓몬스터 띠부띠부 씰, 게임용 플로피 디스켓, 중학교 일기장, 보아 2집 카세트테이프, 신촌 녹색극장 영화표, 128메가짜리 MP3, Be The Reds 티셔츠, 히딩크 브로마이드, 고등학교 급식증, 한 짝밖에 없는 힐리스, 가로본능, 뚜껑 없는 꽃을 든 남자 컬러로션, 귀여니 소설, 민들레영토 쿠폰 3장.
내 보물들이 몽땅 그곳에 있었다, 제자리에, 빗나간 건 나였다. 고삐가 풀려 어른을 흉내 내다보니 죽은 물고기가 돼버린 소년. 대체 어디서 흘러온 걸까.
나는 보물상자를 벽장 밖으로 끌고 나왔다. 휩쓸릴 뿐 멈출 수 없는 어른과는 작별을 고할 시간이다. 나는 햇빛 쏟아지는 2층 창틀에 보물상자를 올려놓고 다락방 계단을 내려왔다. 노스탤지어를 붙들고 망각의 강에서 헤어 나오겠어, 나는 그렇게 결심했다. 더 이상 두꺼비 같은 어른으로 부패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말이다.
모두들 만류했지만, 피터팬의 편지를 읽은 날 오전에 나는 사표를 냈다. 단 한 사람, 아내만은 집으로 돌아온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내 짐을 받아주며 수고했다고 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