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구출작전의 결말
우리는 파크 빌라의 왼쪽으로 돌아들었다.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종합사회복지회관이다. 프랑스 자수나 컵받침 만들기 강좌에 관한 프로그램 표로 도배된 이 건물의 음지가 바로 줌머의 은신처인 셈이다. 스쿠터의 시동을 끄고 내가 캐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그 할아버지는?”
“없던데. 공원에 들어갔더니 럭키만 있었어. 벤치 다리에 목줄이 묶인 채로.”
썬은 그렇게 말하고 나와 핸들을 바통 터치했다.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편의점이라도 간 건가?”
녀석은, 알게 뭐야, 라며 시선을 자기 품 안으로 돌린다. 그 안에 혀를 내민 강아지 한 마리가 푹 잠겨있었다. 썬이 강아지를 부둥켜안다가 높이 헹가래 친다. 덩달아 목줄도 공중에서 춤춘다.
“잠깐만!”
나는 점프해서 목줄을 잡아챘다. 그리고 D링에서 P후크를 분리한 다음 리드 줄만 들어 보였다.
“목줄이 약간 다르지 않아?”
썬은 요리조리 훑어보다 대답했다.
“난 잘 모르겠는데. 원래 이런 색깔 아니었나?”
“아니. 색이 문제가 아니고… 이런 나일론 소재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나는 강아지를 면밀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짧은 꼬리와 눈 주변의 갈색 털 그리고 바둑돌처럼 까만 코까지. 외형만 놓고 보면 럭키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지만 좀처럼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진위여부를 판가름하려면 애 좀 먹겠군. 그때 썬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형. 이 강아지… 럭키가 아닌 것 같아.”
녀석은 부들거리는 손을 강아지의 까만 귀로 가져간다. 참고로 럭키의 귀는 선명한 갈색이다. 나는 고개를 떨궜다. 깜빡 잊고 있었지만 준비성과 더불어 녀석의 안목 또한 수치화하자면 제로에 가깝다.
“고마워. 덕분에 우리는 강아지 유괴범이 됐어. 이제 전화로 몸값만 요구하면 되겠네.”
내가 대놓고 비아냥거렸다.
“이제 어쩌지?”
썬은 아연실색해서 강아지를 내려놓았다.
“어쩌긴. 도로 갖다 놔야지.”
내가 넋이 나간 듯 읊조렸다. 그러자 녀석이 작게 주절거린다. 이미 주인하고 엇갈렸으면 어쩌지, 라나 뭐라나. 이 대책 없는 녀석은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나는 짜증이 가득 담긴 눈으로 레이저빔을 발사했다.
“아니… 이 녀석을 보니까 럭키가 생각나서. 아무래도 주인을 찾아주는 게…”
변명처럼 그렇게 늘어놓다 이내 몸을 돌린다. 나는 썬의 등을 꽉 움켜잡았다.
“근처 파출소로 가자. 주인을 찾아줄지도 몰라.”
녀석은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자수하자는 뜻은 아니었어. 그 할아버지가 벌써 신고했을 테고…”
“어차피 공원 감시카메라에 전부 찍혔을 거야. 무작정 내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가서 해명하고 용서를 구해보자.”
우리는 낙담한 채로 서로에게 몸을 기댔다. 승리의 함성은 잊혀진 지 오래였다.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납치된 강아지는 바람개비 돌리듯 꼬리를 신나게 흔들어대고 있었다.
“형. 진짜 괜찮을까?”
대로변에 스쿠터를 주차한 썬이 머리를 박박 긁어댔다. 그러나 내적 갈등이 심한 건 나 또한 다르지 않다.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넌 옆에만 있어.”
나는 넘겨받은 강아지를 품속에 넣고 파출소 건물로 걸어갔다. 썬은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있다. 하여튼 이럴 때만 말을 아주 잘 듣는다니까.
나는 속으로 카운트 다운하고 김 서린 유리문을 힘껏 밀었다. 천장의 매립형 온풍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바람이 머리카락을 거칠게 빗어 넘긴다.
“실례합니다.”
우리의 등장에 안내 데스크에 숨어있던 경찰관의 휑한 머리통이 부레옥잠처럼 둥둥 떠올랐다. 하지만 대꾸 없이 빤히 쳐다볼 뿐이라 내가 다시 입을 열 수밖에 없다.
“강아지를 데려 왔는데요. 길을 잃은 것 같아서요.”
경찰관은 일어서서 양 손을 허리춤에 얹었다.
“한두 공원에서 발견한 거지? 벤치에 묶여있었니?”
그 추궁에 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벌써 수배라도 내려진 걸까. 내가 대표로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발견했니?”
경찰관이 취조하듯 물었다.
“제가요. 얘는 제 동생이라 따라왔어요.”
대답에는 간발의 틈도 없다.
“무슨 일이야?”
그 목소리는 직원 휴게실 쪽에서 들렸는데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경찰관이 플래시 도어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선배님. 한두 공원에서 길 잃은 강아지를 데려왔답니다.”
그 말에 선배 경찰관은 내 품에 담긴 강아지를 마뜩잖게 흘겨보았다.
“또 거기서? 아니, 이번 달만 해도 벌써 몇 번째야!”
후배 경찰관은 이때다 싶었는지 맞장구부터 쳤다.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러다가 그 공원, 유기견 천지가 되는 거 아닙니까?”
“이거 원. 앞으로는 방순대 애들한테 그 공원 부근을 철저히 순찰하라고 해! 유기하는 놈들 싹 다 잡아오라고.”
“네, 알겠습니다.”
박력 있게 대답한 후배 경찰관은 모토로라 휴대용 무전기를 들고 밖으로 출동한다. 선배 경찰관이 우리를 향해 신신당부했다.
“학생들이지? 다음부터는 그 공원에서 버려진 강아지를 보더라도 여기에 데리고 오면 안 돼. 거기는 흔한 유기장소거든. 알겠니?”
우리는 머뭇거렸지만 경찰관은 개의치 않고 자리에 앉아버린다. 마찬가지로 휑한 머리통이 풀썩 가라앉았다. 나는 필름을 입힌 인조대리석 데스크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럼 이 강아지는… 곧 주인을 찾게 될까요?”
“글쎄다. 작정하고 버렸는데 별 수 있겠니? 기껏해야 유기견 보호소에 보내지겠지.”
경찰관은 따분하다는 듯 말했다. 어째서 공무원은 이런 심드렁한 사람들뿐일까.
“출입문 옆에 나 있는 손잡이 보이지? 강아지는 거기에 묶어두고 가면 돼.”
경찰관이 소시지 같은 손가락으로 스테인리스 손잡이를 가리켰다. 내가 순순히 자리를 옮기자 썬이 뒤따르며 속삭인다.
“괜히 여기로 데려왔어. 차라리 공원에 다시 묶어둘걸.”
녀석은 후회막급인 얼굴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살짝 돌아보니 경찰관은 서류뭉치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는 중이다. 나는 손잡이에 리드 줄을 묶는 체하며 썬에게 턱짓했다.
“썬! 문 좀 살짝 열어봐.”
썬은 금세 내 의도를 파악하고는 유리문을 툭 밀어버린다. 다행히 도어클로저가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그 틈으로 강아지를 내보낼 수 있었다. 버저비터 성공! 녀석은 잠시 우리를 돌아보는가 싶더니 이내 목줄채로 달리기 시작한다.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저기요. 문을 열었는데 강아지가 도망쳤어요.”
썬이 스스럼없이 경찰관에게 다가갔다.
“뭐라고? 줄을 묶으라고 했잖아!”
경찰관은 벌떡 일어나 눈을 부릅떴다.
“죄송합니다. 잘 묶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봐요. 전부 제 실수입니다.”
나는 경찰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최대한 예의 바르게 말했고 썬도 옆에서 고개를 조아렸다.
“참 나. 그거 하나를 제대로 못 묶어서! 알았으니까 이제 가봐.”
경찰관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우리는 간신히 웃음을 참고서 파출소를 빠져나왔다.
그 후로 스쿠터를 타고서 다녔던 길을 수도 없이 복기했다. 그러나 강아지의 행방은 묘연할 뿐이었다. 우리는 돌고 돌다 끝내는 사회복지회관 은신처로 돌아왔다. 어중간하게 포기할 마음은 없었으나 이미 새벽이었고 불의의 납치사건으로 심신도 지쳐있었기에 집 방향으로 핸들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 녀석 괜찮을까? 목줄 채로 돌아다니면 위험할 텐데 말이야.”
썬이 리어 타이어에 도난방지용 체인부터 채우고 입을 열었다.
“그래도 유기견 보호소로 가는 거 보다는 낫잖아. 거기서는 시간이 지나도 주인을 못 찾으면 강아지를 안락사시킨다던데.”
내 말에 녀석은 눈살을 찌푸린다.
“그거 정말이야?”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썬이 자조 섞인 말을 던진다.
“하긴. 지금 남의 강아지 걱정할 때가 아니군.”
그 순간, 난데없는 40화음의 벨소리가 정적을 깨트렸다. 곡목은 델리스파이스의 차우차우. 썬의 핸드폰 벨소리다.
“아마 엄마일 거야. 잠깐만.”
전신주에서 자라난 고압 전선들이 하늘을 받치고 있었다. 나는 그 전신주를 따라 먼저 걸음을 옮겼다. 썬이 뭐라 뭐라 통화하며 내 뒤를 따른다.
“형!"
등 뒤에서 썬이 큰소리로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쳤다.
"엄마가 그러는데 럭키가 돌아왔대!”
“뭐? 정말?!”
우리는 동시에 가로등 불빛이 우산처럼 활짝 펼쳐진 골목 안으로 달려갔다. 맞은편에서 강을 타고 온 포근한 바람이 불어온다. 겨울이 떠나고 있었다.
엄마의 말은 사실이었다. 럭키는 집을 나간 지 이틀 만에 거짓말처럼 돌아와 있었다. 게다가 갈색 털에는 윤기가 과하게 흐르고 있었으니 과연 럭키!(심지어는 잘 먹은 듯 배가 통통하게 불러 있고 오히려 외관도 전보다 말끔해져 있었다)
실종사건 이후 우리 가족은, 2층 바깥 복도가 아닌, 루프탑 원목 평상 아래에 럭키가 생활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목줄 채 무사귀환 한 럭키는 여전히 불가사의 한 존재로 회자된다. 그러니 이 사건을 두고 이름만큼이나 억세게 운 좋은 강아지가 벌인 가출소동쯤으로 치부한다 해도 크게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항상 녀석을 속박하던 리드 줄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족과의 연결고리가 됐다,라고 말이다.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이고 나면 집이나 가족은 쉽게 잊혀 지기 마련이다. 익숙함이란 한편으로는 올드패션 아니겠는가. 문제는 그렇게 잊어버리다 결국에는 잃어버린다는 거다. 자신의 뒤꽁무니를 질질 따라오는 갑갑하고 불편한 리드 줄을 볼 때마다, 어쩌면 럭키는 자신이 돌아가야 할 집과 가족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 미스터리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