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사라진 럭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일요일 밤이란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의 감정이 뒤섞이는 혼돈의 시간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아들이는 과정과 같다랄까. 아무튼 그러한 하이텐션과 더불어 주말 내내 흐트러진 생체리듬 때문에 새로운 한주를 앞둔 인간은 일요일 자정이 넘어가는 순간부터 산더미 같은 정신적·육체적 피로에 잠식될 수밖에 없는 거다. 흔히들 겪는 월요병(실제 치료가 필요한 질병은 아니지만)이라는 거지.
물론 고등학생이라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출근이나 등교나. 게다가 길고 길었던 겨울방학 뒤에 신입생으로서 맞는 등교라면 거의 중환자나 다름없다. 럭키가 행방불명된 건 개학하고 맞은 첫 일요일 밤, 그러니까 한창 내가 월요병과 사투를 벌이던 바로 그즈음이었다.
나는 피톤치드로 가공된 솜이불을 돌돌 말고 침대 위에 번데기마냥 누워있었다. 자연스레 한쪽 팔만 고치 밖으로 꺼내어 리모컨으로 컴포넌트 오디오의 전원을 켠다. 새벽의 라디오는 아날로그 감성의 백미다. 절대 놓칠 수 없다.
미리 세팅해 놓은 주파수에서 <스위트 뮤직 박스>의 시그널이 흘러나온다. 베른바르트 코흐의 Little Moritz. 눈을 감고 감상에 젖어드는데 벽면 노출 형 인터폰에서 따르릉 하는 호출음이 울린다. 이 시간이면 보나 마나 썬일 테지. 받을까 말까, 하는 고민 끝에 우화 하듯 창 쪽으로 날아갔다.
“형. 큰일 났어! 럭키가 사라졌어.”
수화기 너머로 긴박한 목소리가 들렸으나 크게 동요하지는 않았다. 럭키는 보통 강아지가 아니다. 리드 줄만 풀어주면 멋대로 돌아다니다가도 밥시간에 맞춰 알아서 귀가한다. 나는 침착하게 응답했다.
“가출한 거 아냐? 요새 너한테 불만이 많던데.”
“상황 파악을 못하는군. 아무튼 2층에서 봐.”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툭 하고 통화가 끊어진다. 나는 수화기를 제자리에 걸어두고 파자마 위에 스타디움 점퍼를 걸쳤다.
참고로 우리 집은 2층짜리 단독 주택인데 특이하게도 옥탑에는 내가, 2층에는 부모님이, 반지하층에는 썬이 각각 거주하고 있다. 우리 가족 외에도 층마다 한 가구씩 도합 세 가구가 세 들어 살지만 정작 건물주인 우리가 가장 큰 1층 집에 함께 살지 못하는 데에는 은행 대출 같은 어른들의 복잡한 사정이 얽혀있으므로 패스. 여하튼 이 인터폰은 나와 부모님 그리고 썬의 방에 설치된 핫라인인 셈이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니 엄마와 썬이 어두운 바깥 복도에서 속닥거리고 있었다. 내가 아무나 받으라는 식으로 질문을 던졌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엄마는 수색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려서 밖으로 나와 봤더니 럭키 집이 아래층에 떨어져 있었어.”
썬이 보호난간의 석조 장식에 등을 기댄 채 짤막하게 덧붙인다.
“정확히는 럭키 집만.”
나는 황망히 대리석 난간동자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1층 정원에 럭키의 집으로 추정되는 두꺼운 스티로폼 박스가 바닥을 나뒹굴고 있다.
“이번에는 아예 목줄채로 나간 것 같아.”
어깨너머로 엄마가 말했다.
“그건 조금 심각한데.”
나는 제자리로 돌아와 옥탑으로 이어지는 철제 계단 아래의 벽돌 벽으로 향했다. 아닌 게 아니라 리드 줄 손잡이를 걸어두던 원형 쇠고리는 온데간데없고 콧구멍 같은 나사 홀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나는 썬에게 손짓했다.
“골든타임이 얼마나 남았지?”
녀석이 보고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기껏해야 한 시간? 당장 찾아봐야 해.”
“이 시간에?”
훼방을 놓은 건 엄마였다. 고방 유리로 된 현관문을 힐끔거리는 걸 보면 아마도 아버지의 눈치를 보는 거겠지. 갈수록 샌드위치처럼 사는 사람이라니까. 나도 모르게 볼멘소리가 흘러나온다.
“왜? 아버지가 뭐라고 할까 봐?”
“아, 아니… 그렇지만 내일 가야 하고… 학교도…”
엄마는 횡설수설했다. 워낙 거짓말을 못하는 타입이다. 보다 못한 썬이 내 옆구리를 찌른다.
“엄마. 형이랑 몰래 나갈 테니까 모른 척해줘요. 럭키가 걱정 되잖아. 그치?”
어찌할 바를 몰라하던 엄마는 조용히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암묵적인 오케이. 쌀쌀한 바람이 짧은 앞머리를 헝클어트린다. 나는 탄식했다. 아버지는 원래 무신경한 사람이다. 하지만 촌각을 다투는 이런 상황에서도 눈치를 봐야만 하다니. 내가 말했다.
“옷만 갈아입고 올게. 아줌마 데려와서 대기하고 있어.”
녀석은 발끈한다.
“아줌마가 아니라 줌머라니까! 몇 번을 말해.”
나는 피식 웃고 나서 루프탑으로 향하는 험준한 계단을 살금살금 오르기 시작했다.
인디아나 존스 같은 몸놀림으로 주물 대문을 통과하니 썬이 스쿠터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악착같이 축적해온 보유금으로 기어이 중고 구매에 성공한 녀석의 보물 1호, 혼다 줌머(발음 때문에 나는 아줌마라고 부른다)다. 시트 프레임과 업 카울이 개나리색에 가까운 노란색이라 3월의 추위와는 전혀 어울리지가 않는다.
“옷만 갈아입는다더니 엄청 오래 걸리네.”
쇼트 비니를 눌러쓴 썬이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 말했다.
“잔소리 그만하고 모자나 내놔. 가져왔지?”
“맡겨놨냐. 빌리는 주제에 태도까지 불량하구만.”
그러면서도 내게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야구 모자를 내민다. 나는 모자를 홱 낚아챈 다음 최대한 푹 눌러썼다. 어울리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폭탄머리가 되지 않으려면 어쩔 도리가 없다.
“이 장면을 아버지가 목격한다면 우린 어떻게 될까?”
내가 텐덤 시트에 올라타면서 그렇게 물었다. 원동기 면허증을 취득하려면 녀석은 두 살을 더 먹어야 한다.
썬이 스쿠터의 시동을 켰다. 그러자 그물망 형태의 플라스틱이 씌워진 쌍라이트가 눈을 희번덕거린다.
“뭘 어떻게 돼. 그날로 직립보행은 단념해야지. 꽉 잡아.”
썬이 스로틀을 살짝 잡아당긴다. 동시에 스쿠터도 시간을 잡아당기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나는 차원의 틈으로 빠지지 않으려는 듯 녀석의 허리를 꽉 붙잡았다.
50cc라 기껏해야 시속 60킬로 미터지만 조그만 동네를 돌아다니는 데에는 이만한 것도 없다. 골목을 왼쪽으로 돌아들어 목동중앙북로 8길로 접어들었을 때 썬이 소리쳤다.
“형. 눈으로만 찾지 말고 크게 불러! 럭키가 들어야지.”
나는 난색을 지었다.
“혼자서는 창피해.”
“싫으면 내리든가. 얻어 타면서 말이 많네.”
그 으름장에 하는 수없이 럭키를 목 놓아 불러댔다. 요란한 엔진 소리와 쩌렁쩌렁한 목청이 뒤범벅된 소음이 경사로를 따라 더디게 내려간다.
내가 살고 있는 목동은 대부분이 주거단지라 심야에는 어디든 일시정지화면처럼 고요하다. 이러다 고성방가로 신고라도 당하는 건 아닌지 슬슬 염려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줌머 50은 목동중앙본로 27길까지 늘어선 가로등의 예도를 지나 22길로 커브를 그리며 입장한다. 별안간 우리 옆으로 그늘진 달마을 공원이 뚝 멈춰 섰다. 썬이 브레이크 레버를 확 잡아당긴 탓이었다.
“없네. 어디로 간 걸까?”
녀석은 초조해 보였다.
“더 이상은 못하겠어. 이러다 동네 사람들 전부 깨고 말 거야.”
내가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
“엄살은. 알겠으니까 그럼 이제부터는 조금 작게 불러.”
스쿠터는 다시 움직였다. 맞바람은 또다시 거칠게 저항한다. 수색작업은 계속되었고 나는 전보다 작은 목소리로 럭키를 불렀다.
가파른 비탈길에 다다르자 엔진이 거의 우는 소리를 낸다. 클라이밍 하듯 오르는 이 지역은 목동 내에서도 제법 높은 축에 속한다. 주인 잘못 만나서 고생하는군. 나는 속으로만 그렇게 조잘거렸다. 안간힘을 쓰던 스쿠터도 경사진 샛길로 경로를 수정할 수밖에 없다.
“형. 여기부터는 걸어서 찾아보자.”
썬은 뾰족한 광고물 부착방지시트가 붙은 전봇대 뒤편으로 스쿠터를 세웠다. 줌머의 엔진이 장작 타는 소리를 내며 꺼져간다. 나는 텐덤 시트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건설현장을 가리고 있는 EGI펜스 주변으로 다 쓰러져 가는 다가구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이곳, 바로 다운타운의 최전방이다.
보통 목동 하면 강남 다음으로 부유하고 학군이 좋은 동네로 인식되지만 그건 어디까지 80년대에 신시가지로 개발된 목동중앙로의 건너편 업타운에 한해서다. 우리 집을 포함한 그 반대편은 말하자면 다운타운인 셈이다. 물론 요즘은 다운타운에도 재개발 붐이 불어 고층 아파트와 신축 빌딩이 간간히 완공되고 있다지만 아직까지는 그 갭이 뚜렷해 보인다. 나는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야 처음으로 그 묘한 이질감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내려가 볼게. 형이 올라가면서 찾아봐.”
썬이 미끄럼틀 같은 회색 언덕을 내려가며 말했다.
“오케이. 삼십 분 뒤에 여기서 다시 만나.”
나도 오르막의 왼쪽 길로 이어진 휑뎅그렁한 아파트 단지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폐가 같은 경비실 안, 황록색 이끼가 가득한 야외 돌층계, 화단에 삼각대형 버팀목 사이사이, 붉게 부식된 자전거들로 젠가 탑을 쌓은 보관소, 허옇게 녹이 슨 컨테이너 박스와 철망으로 둘러 쳐진 변압기 주변까지. 강아지가 들어갈 만한 구멍이라면 어디든 들여다봤으나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조금 늦었네. 뭐 좀 찾았어?”
터덜터덜 언덕을 솟아오르는 실루엣을 향해 내가 시무룩하게 물었다.
“아니. 아무것도.”
썬은 풀 죽은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이게 뭔 개고생이람. 금방이라도 발견할 줄 알았는데.”
나는 가파른 돌계단에 걸터앉았다. 녀석도 허리가 굽은 가로등에 몸을 기대고 앉는다.
“형. 설마 낯선 사람이 끌고 간 건 아니겠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마취 총이라도 쏘지 않는 한 불가능할걸?”
“그럼 목줄 때문에 사고라도 당했을 가능성은?”
나는 일부러 톤을 높였다.
“운도 실력이라면 우주 최강인 녀석이야! 괜히 녀석의 이름을 럭키라고 지었겠어?”
썬은 웃지도 않고 대꾸한다.
“뭘 그리 거창해? 만화책 보고 정한 것뿐이면서. 아무튼 이름 때문에 해피고 럭키고 사라지면 찝찝하다니까.”
괜히 뜨끔했다. 초등학생 시절 열광하던 애니메이션 <떴다! 럭키맨>을 보고서 호기롭게(또는 거의 우기다시피) 작명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스쳐간다. 나는 실없이 웃었다.
“그럼 잃어버릴 걸 대비해서 언럭키로 할 걸 그랬나?”
그러나 갈 곳 잃은 농담은 허망하게 허공으로 스며든다. 나는 아이스브레이킹을 포기한 채 입을 다물었다. 썬도 공항대로를 굽이치는 헤드라이트의 물결로 시선을 던질 뿐이다.
“이만 돌아가자. 내일은 찾을 수 있을 거야.”
나는 그렇게 말하고 얼음장 같은 계단에서 일어났다. 어둠이 섞인 뿌연 스카이라인은 전보다 더 들쭉날쭉했다. 하긴, 하루가 멀다 하고 부수고 다시 짓는데 성할 틈이 있을 리 없지.
썬도 따라 일어서더니 까만 진 바지의 엉덩이를 세게 때린다. 나도 베이지색 면바지의 엉덩이를 흠씬 두들겼다. 우리가 털어낸 부연 흙먼지가 희끄무레한 도시의 어둠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다음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는데 교복 재킷의 호주머니에서 40화음의 핸드폰 벨소리가 흘러나왔다. 곡목은 부활의 네버엔딩 스토리. 폴더를 열고 마이크 홀에 입을 갖다 댄다.
“여보세요?”
“형. 중요한 정보를 입수했어!”
썬이었다. 내가, 뭔데?라고 묻기도 전에 득달같이 말을 퍼붓는다.
“내 친구가 목줄을 매고 돌아다니는 강아지를 목격했대. 어제 한두 공원에서! 어쩌면 럭키일지도 몰라.”
이런, 이런. 등잔 밑이 어두웠군. 한두 어린이공원이라면 집에서 불과 700미터 거리다. 이따금씩 럭키와 거닐던 산책로이기도 해서 충분히 신빙성 있는 제보였다. 그야말로 럭키.
줌머는 어제와 반대방향으로 이륙했다. 목동중앙북로 5길과 7길이 교차하는 사거리까지는 오 분도 채 걸리지가 않는다. 통조림 속 정어리마냥 빽빽한 주택가를 지나쳐 썬은 공원 외곽에 그어진 황색 도로표시선 바깥쪽에 스쿠터를 세웠다. 내가 먼저 내려서 입을 열었다.
“안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
썬이 메인스탠드로 주차하고 말했다.
“일단 들어가 보지 뭐.”
역시나 장방형의 작은 공원은 텅 비어있었다. 우리는 공원의 중심에서 미어캣처럼 사방을 예의 주시했다.
“여기서 기다리자. 곧 올지도 모르잖아?”
내가 벤치에 앉으며 말했다.
“하긴. 범인은 범행 장소로 다시 돌아오는 법이지.”
녀석의 근거는 이렇게 늘 터무니없다. 아무튼 그때부터는 선약이라도 되어있는 것 마냥 럭키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형. 우리는 강아지를 키우면 안 되는 걸까?”
의표를 찌르는 발언에 나는 조금 의아해졌다.
“왜 그렇게 생각해?”
“그야 모두 우리를 떠났으니까. 해피고 럭키고.”
“하지만 그게 우리 탓은 아니잖아.”
그러자 녀석은 긴 한숨을 내쉰다.
“좀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어. 잃기 전에 말이야.”
등받이 없는 벤치에서 흘러내린 붉은 그림자 두 개가 점점 길어져간다.
“오버하지 마. 럭키는 곧 찾을 거고, 해피는 사고였을 뿐이야. 게다가 우리 둘이 힘을 합쳐 복수에도 성공했으니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복수는 무슨. 버스에 돌멩이를 던졌을 뿐이잖아. 그마저도 형 거는 빗나갔다고.”
3년 전 죽은 해피는 럭키보다도 먼저 기르던 강아지였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녀석을 자유롭게 풀어주었고 해피는 우리 가까이에 있었다. 그런데 파란 나라 유치원 통학버스가 해피를 밟고 지나갔다. 풍선처럼 부풀던 행복도 눈앞에서 펑하고 터져버린다
“아냐. 내가 괜한 말을 했네. 애초에 럭키를 지하에 둘걸 그랬나 봐.”
썬은 벤치 옆 가로등에 붙은 광고물을 떼서 구겨버렸다. 나는 녀석의 등을 토닥였다.
“아니야. 옥탑에 둘걸 그랬지 뭐.”
어느덧 하늘이 돔 구장의 천장처럼 닫혀있었다. 그 아래로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지면서 차가운 공기가 주황색으로 물든다.
“근데 형. 엄마한테 전화 안 와? 나는 계속 오는데.”
썬이 야구점퍼의 소매를 걷고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나는 무음 모드로 설정해 놓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액정화면에 엄마의 부재중 전화가 7통이나 표시되어있다.
“나도 마찬가지군. 가서 얼굴만 비치고 다시 나오자.”
우리는 벤치에서 일어나 줌머가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내일은 전단지라도 만들어서 붙여볼래?”
그렇게 제안하며 막 공원을 빠져나오려는데 썬이 내 팔을 붙잡는다. 뭔 일인가 싶어 녀석을 쳐다보니 눈길을 멀리로 던지고 있었다.
반대편 출입구였다. 통이 큰 작업복 바지에 다운재킷 차림의 노인이 목줄을 맨 강아지를 안고 공원으로 들어오고 있다. 썬이 자세를 낮추고 입을 열었다.
“형. 저 강아지 럭키야.”
“뭐? 확실해?!”
내가 가까이 다가가려 하자 녀석이 만류한다.
“들키면 어쩌려고?”
“소심하긴. 상대는 할아버지 한 명이라고. 그러니까…”
마지막 구절을 내뱉기도 전에 썬이 나를 짓눌렀다. 내 몸은 여지없이 빈 깡통처럼 찌그러진다.
“방금 우리 쪽을 봤어. 분명 수상하다고 생각할 거야.”
녀석은 첩보요원이라도 된 것 같다.
“너무 과민반응 아냐?”
나는 평소처럼 말했다.
“감도 없고 센스도 없고 이젠 눈썰미까지 없을 줄이야.”
그렇게 질책하던 녀석이 스쿠터 키를 내 손에 쥐어준다. 전무후무한 일이라 나는 얼떨떨해졌다.
“언제든 출발할 수 있도록 엔진을 켜 둬. 내가 럭키를 구해올게.”
썬은 엄지를 척하고 세우더니 민첩한 동작으로 철제 펜스를 훌쩍 뛰어넘는다. 설마 할아버지를 때려눕히는 건 아니겠지? 그런 걱정을 하며 스쿠터로 다가서는데 준비할 틈도 없이 야단법석이 났다.
“형! 빨리 시동 켜! 빨리!”
강아지를 목줄 채 품에 안고서 썬이 우당탕탕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사이드 스탠드부터 올리고 후다닥 시동을 켰다. 줌머가 경쾌하게 몸을 떠는 순간 녀석이 텐덤 시트에 쿵 하고 떨어졌고 내가 완벽한 타이밍으로 스로틀을 끝까지 잡아당겼다. 줌머의 앞바퀴가 살짝 들리더니 빠른 속도로 소로를 가로지른다.
“성공이야! 사회복지회관으로!”
썬이 매서운 공기에 대고 환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