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비선형성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우리 형제가 답례로 도래한 곳은 광장에서 서쪽으로 십오 분 거리의 한산한 골목 입구였다. 좁다란 길 안쪽에 덜 포장된 아스팔트 위로 러브호텔의 네온사인이 폭죽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썬은 벨라지오 분수쇼 같은 그 장관을 우두커니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백 팩의 체스트 버클을 채우고 스트랩도 최대한 짧게 했다. 그러자 유리가 내 어깨를 톡 톡 두드렸다.
“긴장 풀어. 터프한 척하지 말고.”
나는 겸연쩍게 웃었다. 유리는 살짝 윙크하고 혼자서 러브호텔로 다가갔다. 자동 감지센서가 달린 출입구의 차임벨이 골목을 요란하게 울린다. 유리가 건물 안쪽으로 사라지자 우리는 투수의 사인을 기다리는 포수처럼 몸을 둥글게 말기 시작했다.
초조한 시간은 더디게 흐르는 법이다. 드디어 ‘S' 자리만 이울어진 네온사인 아래로 유리가 등판하더니 길쭉한 아크릴 고리가 달린 호텔 키를 빙빙 돌린다.
“계산은 다 했어. 이쪽으로.”
731호. 객실 문이 열린다. 나와 썬은 경계태세를 유지하며 안으로 진입했다. 빈방은 냉동 창고 같았다. 맨 마지막에 들어온 유리가 거침없이 조명스위치를 켠 다음 벽면에 설치된 라디에이터의 온도조절기를 만지작거렸다.
“내가 먼저 씻어도 되지?”
그 말에 나도 썬도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는 기타 케이스만 내려놓고는 곧장 샤워실로 들어가 버린다. 썬은 이미 침대에 드러누워 있었다. 천장에 달린 캐노피 커튼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새해 첫날부터 형이랑 러브호텔에 오다니. 아마 오늘을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이하동문. 그러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남자 형제 사이라도 섹스와 관련된 것은 왠지 민망하다. 나는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실내를 둘러보았다. 내부 인테리어는 모던한데 래커 칠 된 옷장이나 주석 손잡이 달린 협탁은 앤티크 하군. 트렌드는 있는데 정체성은 없다, 이런 게 러브호텔인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조명스위치가 전부 꺼진 객실은 초저녁 분위기였다. 내부 간접조명이 천장면의 브론즈경에 반사되어 은은한 빛을 이리저리 굴절시키는 탓이다. 나는 숨죽인 채로 철제 침대에 몸을 누였다. 창가 쪽 바닥에는 유리가 이불을 펴고 누워있었는데 그건 유리 고집이었다. 너희가 둘이니까 침대에서 자. 나는 바닥이 편해, 라며 우리에게 침대를 양보했던 거다.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보기도 하고 사양의 미덕을 부려보기도 했으나 유리는 막무가내였다. 결국 포기하고 받아들이니 모두가 편해졌다.
“자니?”
그때, 들릴 듯 말 듯 한 음량으로 유리가 말했다. 썬은 아무 기척도 없어서 결국엔 내가 입을 열었다.
“아직. 너는 왜 안자?”
“실은 말이야…”
한참을 뜸 들이던 유리가 말을 이었다.
“나… 스폰 제의받았어.”
나는 입안으로 들숨을 가득 삼켰다. 스폰서, 영어로 후원자라는 뜻이지만 후원에는 으레 그만한 대가가 따른다. 쏟아지는 연예기사를 통해 그 대가가 뭔지 정도는 고등학생인 나도 충분히 알고 있다. 내가 추측했다.
“연습생… 그래서 그만둔 거구나?”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실내는 셔터 내린 가게처럼 조용했다.
“부모님은 아시니?”
나는 깨진 유리조각을 피하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응. 알고 뭐라고 했는지도 알려줄까?”
나는, 뭔데?라고 되물으려던 걸 다시 기도로 밀어 넣었다.
“스타가 되는 급행열차래.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나 뭐라나. 그게 부모라는 사람들이 나한테 해준 충고야. 웃기지?”
유리는 정말 웃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섬뜩한 느낌이 스쳐간 건 왜였을까. 나는 급히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유리. 손목에 붕대 말인데, 설마… 너…?”
그러자 아스팔트에 아무렇게나 굽어있는 들 풀 같은 작은 등이 미묘하게 산들거렸다. 흐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리는 목소리를 꾹 누르며 이렇게 털어놓았다.
“맞아. 나 죽으려고 했었어. 근데 그러고 나니까 무서워져서 혼자 있고 싶지 않았어. 오늘 기차에서부터 귀찮게 해서 미안해.”
거의 접혀있다시피 한 등이 이제는 크게 요동치고 있었다. 역시 우는 걸까. 머릿속이 필라멘트가 타버린 전구처럼 새카매진다.
"분명 꿈은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질문이 혼잣말인지 나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기어코 진심이 튀어나와버렸다.
"포기하지 마. 뭐가 됐든..."
“잠깐. 뭐가 됐든, 이라니? 그 말은 왠지 제의를 받아들이라는 뜻으로 들리는데?"
“아, 아니야. 오해하지 마! 그, 그런 뜻이 아니야…”
내가 허둥지둥 대는 모습을 본 유리가 느닷없이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조크야. 긴장 풀어. 터프한 척하지 말고.”
그러더니 원래의 유리로 돌아와 노래라도 하듯 말을 잇는다.
“세상에는 말이야. 남에 대해서는 쉽게 평가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돌아볼 여유가 없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가 되묻자 유리는 이렇게 다짐했다.
“그런 시선들에 상처 받지 않을래. 더 이상은.”
활짝 갠 새해의 첫날. 광장 여기저기에서 새하얀 입김이 굴뚝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채도가 높은 선명한 감청색 하늘에는 체펠린 비행선 같은 뭉게구름이 빛나고 있다. 나와 썬은 기차역 입구에서 허름한 광장에게 기약 없는 작별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올곧게 개찰구를 통과했다.
이른 아침 눈을 떴을 때 객실에는 나와 썬 둘 뿐이었다. 미소녀는 이미 증발해버린 뒤였는데 그녀가 남겨둔 쪽지를 읽고 나서야 우리는 존재와 부재를 동시에 실감하게 되었다. 후르츠 바스켓 다이어리 속지를 수놓은 오렌지색 글자들. 아마 그 쪽지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날 밤을 미소녀와 지새운 꿈 정도로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 유림이와 유선이에게
예상과 달리 화창한 새해 첫날이야. 일기예보가 다 그렇지 뭐. 나비의 날개 짓 하나까지 전부 조사할 수는 없는 거니까. 폐를 많이 끼쳤어. 평생 오늘을 잊지 않을 게
- 비선형성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싱어송라이터 유리가
꼬리칸 객실로 익숙한 안내방송의 시그널이 터져 나온다. 나는 미소녀의 흔적을 세로로 접어 펼친 다음 중심선에 맞추어 고이 접었다. 그리고 마지못해 헤드폰을 벗고 썬을 흔들어댄다.
“썬, 일어나. 거의 다 왔어.”
녀석은 반쯤 떠진 눈으로, 벌써?라고 묻는다. 내가 언짢은 어조로 대꾸했다.
“어제 그렇게 자고도 또 딥슬립이냐?”
그러자 썬이 실토했다.
“거의 못 잤어. 그냥 눈만 감고 있었던 거야.”
“그럼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내가 혼자서 얼마나 진땀을 뺐는지 알아?”
나는 녀석의 볼을 집게손가락으로 가볍게 퉁겼다. 페널티인 셈이다. 썬은 항복의 표시로 양손을 들어 보인다.
“이봐. 중간에 끼어들기에는 너무 심각한 대화였잖아. 듣고 나니까 잠도 잘 안 오더라.”
하긴. 나에게도 충격이었으니 녀석에게는 더 했을지도 모르지. 아무리 친구 같은 관계라 해도 십 대 시절의 두 살 터울에는 엄청난 갭이 있다.
나는 어제와 반대방향으로 달리는 기차의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코발트블루의 하늘이 책장을 넘기듯 휙휙 넘어간다. 그 책이 완전히 덮일 때쯤 수직으로 솟아오른 높다란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썬. 혹시 해돋이 못 봐서 후회 해?”
나는 후드 달린 네이비색 롱 패딩 지퍼를 끝까지 올린다.
“전혀. 형은?”
녀석도 나를 따라 카키색 패딩의 지퍼를 잠근다. 내 것은 구스다운인데 썬의 것은 오리털이다. 그것 역시 작년에 내게서 물려받았다.
“나야 뭐…”
내가 막 대답하려는 순간, 무심코 바라본 객실의 자동문이 커튼처럼 열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뒤편에서 소개를 마친 똑 단발의 싱어송라이터가 무대로 걸어 나온다.
“형. 왜 그래?”
썬은 이상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응? 뭐가?”
나는 건성으로 대꾸한다.
“말하다 말고 어딜 보는 거야. 괜히 딴짓하는 거 보니까 형은 역시 후회하는 모양이네?”
그 말에 내가 가볍게 미소를 머금었다. 벚꽃색 어쿠스틱 기타는 여전히 눈부시다.
“그럴 리가. 후회 안 해, 절대로.”
그렇게 대답하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희미하게 아른거리는 그녀를 마음껏 응원하기 시작했다.
힘을 내요! 싱어송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