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 유리의 데뷔
개찰구 앞에서 역광을 받는 기타 케이스가 몸을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우리는 제자리에 뚝 멈춰 섰다. 그다음에는 썬이 당연하다는 듯 나에게 눈짓을 한다. 이 건방진 동생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형을 부려먹는다니까. 나는 산만한 케이스로 다가가 맨 아래 버클을 노크하듯 세 번 두드렸다. 유리가 회전목마처럼 빙글거리며 몸을 돌린다.
“자. 그럼 결과는?”
내가 발표했다.
“같이 가자. 대신 돈은 사양할게.”
그러자 유리가, 흐음, 하고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나는 느릿느릿 걸어오는 썬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정말 괜찮을까? 오늘 처음 본 사이인데.”
“뭐 어때. 그래도 꽤 예쁘잖아.”
천진난만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썬이 어쩐지 거미줄에 걸려 파닥거리는 나비나 다름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도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긴 했으니 애초부터 비토는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어느새 우리 형제에게는 새해 첫 일출여행의 그림자조차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출구 쪽 광장은 허공에 성에라도 낀 듯 부옜다. 다방과 취업 소개소 그리고 성인용품 전문점이 난잡하게 늘어선 광장 외곽에 십 대 세명이 모습을 드러내자 타원형의 잔디를 따라 늘어선 택시들이 일제히 빈차 표시등을 번쩍거린다. 우리는 택시 머플러에서 피어나는 은회색의 연기처럼 기차역 주변을 이리저리 배회했다. 그러나 도저히 문을 연 식당을 찾을 수가 없었다.
“유리. 벌써 새벽 두 시인데 어쩌지?”
유리는 동요하는 법이 없다. 금세 해결방안을 모색해낸다.
“편의점에 들러서 먹을 걸 좀 사자. 그런 다음 노래방으로 가는 거야.”
"웬 노래방?”
"오는 길에 보니까 영업 중인 곳이 있길래. 거기서 따뜻하게 만찬을 즐기는 거지. 내 생각이 어때?"
하지만 썬이 즉시 푸념한다.
“맘 편히 한두 시간은 때울 수 있겠네. 이 시간에 들어갈 수 만 있다면 말이야.”
그렇다. 애석하게도 신데렐라보다 가엾은 십 대 청소년의 데드라인은 밤 열시다. 하지만 유리는 의기양양했다. 우리 형제를 이끌고 미니스톱에 들러 오픈 냉장 쇼케이스부터 싹쓸이했다. 그런 다음 밖으로 나와 환호성을 내지르며 육 차선 도로를 무단 횡단한다. 나와 썬은 불안한 눈빛을 주고받으면서도 보도블록에 곧추서 있는 '가라오케'라는 입간판까지 마구 달렸다.
“안녕하세요. 방 하나 주세요.”
어스레한 실내에 유리가 출현하자 카운터의 남자가 눈을 가늘게 뜬다.
“학생들 아니야?”
남자는 그렇게 추궁하며 가운뎃손가락으로 금테 안경을 밀어 올렸다. 나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 들었다. 썬도 바닥의 데코타일로 시선을 떨어트리고 만다.
“제가 보호자인데 어떻게 안 될까요? 겨울방학이라 사촌 동생들이 놀러 왔거든요.”
그러나 유리는 관록이 묻어나는 연기자 같았다. 그 태연함 때문인지 남자도 우리를 다시 한번 뜯어본다.
“그럼 아가씨 신분증 한번 봅시다.”
“그럼요. 확인해 보세요.”
유리는 그렇게 말하고 장지갑을 건넨다. 남자는 잠시 그 안쪽을 살피더니, 만 오천 원입니다, 라며 지갑을 되돌려주었다. 계산을 마치고 안내받은 연습실로 들어서자마자 내가 흥분해 소리쳤다.
“유리! 좀 전에 민증 보여준 거지? 어떻게 된 거야?”
유리는 낮게 소곤거렸다.
“언니 거야. 혹시 몰라서 갖고 다녀.”
“아 뭐야. 그것도 모르고 괜히 졸았잖아.”
썬이 허탈한 듯 상아색 소파로 몸을 던졌다. 나도 그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유리가 말했다.
“운이 좋았어. 이번에 처음 사용해 본 거니까.”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이파이브했다. 기차가 선로를 벗어난 셈이었다. 십 대에게 신분증이란 도라에몽의 ‘어디로든 문’이나 다름없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블랙카드가 부러울 소냐!
“오면서 세운 계획. 다들 기억하고 있지?”
유리가 눈을 번득이자 우리는 각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작전은 간단하다. 교대로 망을 보고 나머지는 먹는다. 나는 목재도어에 달린 네모난 창으로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댔다. 창에는 반투명한 안개 시트지가 붙어있어 밖을 살피는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썬이 재촉한다. 나는 뒤로 돌아 신호를 보냈다.
“이제 됐어. 아무도 없어.”
썬과 유리가 백 팩 안에 숨겨 온 내용물을 테이블 위로 쏟아내기 시작했다. 핫바, 야채호빵, 삼각김밥, 조각피자, 치즈버거, 레모네이드, 초콜릿 스낵, 스프라이트, 바나나우유, 계란 샌드위치 그리고도 기타 등등. 그중 몇 개는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것을 깜빡하기도 했으나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날 처음으로 깨닫는다. 축축한 불빛이 어슴푸레 내리는 좁고 습한 공간에서도 무언가를 그렇게 맛있게 삼킬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포만감 때문인지 유리는 푹 퍼진 채였다. 나도 따라 늘어져있었다. 썬이 웅크리고 있는 구석에는 핸드폰 액정화면의 라이트가 등대처럼 점멸하고 있다. 나는 멀티 컬러의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남은 이용시간은 오 분. 내가 정리하자며 운을 띄우자 썬이 백 팩의 메탈 지퍼를 잠근다. 그러나 유리는 아직 나갈 마음이 없어 보였다. 도리어 두꺼운 노래방 책자를 뒤적이더니 리모컨으로 번호를 입력하고 시작 버튼을 누른다.
“노래 한곡만 할래.”
모니터에서 뮤직비디오가 재생되고 천장의 미러볼이 지구본처럼 삐딱하게 돌아간다. 유리는 차갑게 식은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You're still my No.1 날 찾지 말아 줘 나의 슬픔 가려줘 저 구름 뒤에 너를 숨겨 빛을 닫아줘 그를 아는 이 길이 내 눈물 모르게
신기한 일이다. 안무를 섞어가며 노래하는데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다니. 삼분 가량의 퍼포먼스가 끝나자 썬은 휘파람부터 불어댔다.
“누나. 가수 해도 되겠는데?!”
참고로 누나라는 호칭은 호감도의 증가를 반증한다. 유리는 검지와 중지로 브이자를 만들어 승리의 포즈를 취했다.
“실은 데뷔 직전까진 갔었어. 나, 대형 연예 기획사의 연습생이었거든.”
“와! 사인해줘.”
썬이 감격한 눈으로 덤벼든다. 그러나 유리는 오히려 차분해져 있었다.
“고맙지만 사양할게. 얼마 전에 그만뒀거든.”
“왜 그만뒀어? 부모님의 반대?”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물론 처음엔 반대했었지. 나중에는 너무 유난스러워서 문제였지만 말이야.”
그렇게 대답한 유리는 흐물흐물한 소파 시트를 샌드백처럼 두들겼다. 다시 썬이 질문할 차례다.
“그럼 연예계 쪽으로는 더 이상 미련이 없는 거야?”
유리는 멈칫했지만 시선만큼은 이달의 신곡이 담긴 A2 크기 벽보에 머물러 있었다. 유광 처리된 아트지가 습기 찬 벽에 붙어 비포장도로처럼 울퉁불퉁하다.
“거의 그렇지만… 단 한 번도 무대에 오르지 못한 건 정말 아쉬워. 이 악물고 삼 년이나 버텼는데 말이야.”
마지막 답변이 나에게는 굉장한 쇼크였다. 삼 년 전이면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다. 내가 포켓몬스터 띠부띠부씰을 수집한답시고 동네 마트를 비둘기처럼 전전하던 바로 그 시절. 그렇게 생각하니, 돌연 유리가 성당 천장에 높이 매달린 샹들리에처럼 빛나 보였다.
기차역 입구에 대각선으로 엉겨 붙은 플래카드가 너울거렸다. 우리는 어둑한 광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유리의 등에 고단하게 업힌 케이스만이 듬성듬성 떠 있는 가로등 불빛에 닿아 빛을 낼뿐이다.
“혹시 그 기타 말인데. 연주할 수 있어?”
내가 물었다.
“그럼 설마 폼으로 가지고 다니는 걸까 봐?”
유리는 피식 웃는다. 그러자 썬이 넉살을 떨었다.
“난 또, 그 안에 침낭이라도 넣고 다니는 줄 알았네.”
"아하. 그러셔?"
유리는 거리를 나뒹구는 트리 장식용 전선들을 썬을 향해 걷어찼다.
“그럼 노래해주지 않을래?”
내가 말했다. 그러자 유리는 질겁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본다.
“뭐? 지금? 여기서 말이야?”
그렇게 되묻는데도 일부러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는 아이보리색 터틀넥을 콧등까지 올리고 코를 훌쩍거렸다. 썬은 나와 유리를 번갈아보며 사태 파악 중이다. 이내 기차역 돌계단에 비스듬히 걸터앉는 미소녀. 과연 그녀의 결정은?
“좋아. 대신 조금만 기다려줘. 튜닝할 시간이 필요해.”
그리고는 두꺼운 하드 케이스를 열어 어쿠스틱 기타를 정성스레 꺼내 든다. 벚꽃색 바디에 매끄럽게 인레이된 흰 눈 색 퍼플링이 눈부시다. 나는 계단 아래 보도블록에서 유리의 데뷔를 기다리는 중이다.
“자, 됐어. 내 쪽으로 가까이 와.”
현을 만지작거리던 유리가 왼손으로 프렛을 잡고 말했다. 관객이 된 나와 썬은 급조된 콘크리트 무대로 다가선다.
“막상 하려니 쑥스럽네. 사실 이건 내 자작곡이야.”
광장은 해미가 낀 밤바다처럼 고요했다. 곧 뮤트 스트로크로 커팅 한 리듬이 유리의 청아한 보컬에 잉크처럼 스며든다. 나는 그 음악을 들으며 극장의 대형 스크린 같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잔별들이 영화의 첫 장면처럼 부드럽게 페이드인 하고 있었다. 물론 화려한 광경은 아니다. 이름 없는 잔별들은 별빛도 희미한 법이니까.
하지만 과연 덜 반짝인다고 해서 보잘것없는 별인 걸까? 중학교 과학시간에 배운 대로라면 별의 겉보기 밝기는 별까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그렇다면 흐릿한 별은 단지 우리 눈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어느새 텅 빈 나무의 진동이 가라앉아 있었다.
“어때? 괜찮았어?”
한껏 상기된 얼굴로 그렇게 묻는 유리의 눈동자 속에도 이름 없는 잔별이 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그래! 이 우주를 통틀어 결코 보잘것없는 별은 없어! 우리에게는 이름도 없는 한낱 잔별이지만 화성의 외계인들에게는 북극성으로 보일지도 모를 일이잖아. 나는 박수갈채를 보냈고 썬은 앙코르를 연호했다.
“사실 조금 긴장했어. 자작곡을 들려주는 건 처음이라.”
유리는 소감을 말하면서 일으켜달라는 듯 나와 썬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덥석 그 손을 잡았는데 기타를 치던 손가락 끝이 전부 골무라도 낀 것처럼 딱딱했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어. 곡도 좋았고. 정말 대단해.”
나는 잔뜩 치켜세웠다.
“고마워. 그럼 이번에는 너희가 답례할 차례군.”
유리는 기타를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설마 우리 보고 답가라도 하라는 건 아니겠지?”
썬은 곤혹스러워했으나 유리는 쾌활하게 대답한다.
“나와 같이 가줬으면 하는 곳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