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언제나 둥글다

II. 썬의 사고

by 데미안

다마스크 문양의 엘리베이터가 단 몇 초 만에 우리를 40층 스카이라운지로 올려다 주었다. 남자는 ‘스카이 뷰’라는 네온사인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나와 썬을 에스코트했다. 실내 전체가 통유리로 되어 있어 전망은 더할 나위가 없었다.


홀 한가운데에 커다란 나무 장식을 지나 창가 쪽 테이블에 앉자마자 동그란 티타늄 안경을 쓴 웨이터가 다가왔다. 그러고는 예약해주신 코스로 준비하겠습니다, 라며 흰색 냅킨 위로 나이프, 포크, 스푼을 차례대로 세팅한다.


“엄마는 친구라고 하던데. 실례가 안 된다면 두 분이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 여쭤 봐도 될까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남자는 한참을 뜸 들이다 입을 연다.


“친구라고 해두죠. 하지만 관계를 명확히 구분하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때론 무의미하기도 하고.”


“혹시 첫사랑이에요?”


썬이 거두절미하고 화두를 던졌다.


“그랬을 수도 있겠군요. 첫사랑이라…”


그렇게 독백하던 남자는 이내 생각에 잠긴다.


“그럼 엄마의 연인이었다는 말씀이신가요?”


내가 묻자 남자는 손사래를 쳤다.


“오해는 하지 말아요. 연애를 하거나 데이트를 하던 시대는 아니었으니까. 그저 서로 대화를 나눠 본 것이 전부랍니다.”


그러자 썬이 내 귀에 대고 비아냥거렸다.


“옛날에는 그런 것도 첫사랑이라고 했나 보지?”


남자가 빙그레 웃었다.


“요즘 하고는 문화가 많이 다르니까요. 나름 순수의 시대였죠.”


그 말에 썬이 슬쩍 나를 바라본다. 저 사람 귀도 밝네, 하는 표정으로. 그러는 사이 디너 메뉴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테이블은 금세 플레이팅 된 접시로 가득 찬다. 나는 머뭇거리다 매쉬포테이토부터 깨작거렸다. 썬은 무조건 티 본 스테이크부터 뜯고 본다.


“아무튼 얼마 전에 어렵게 연락이 닿아 만나게 됐고 그게 이십 년 만에 첫 재회였어요.”


남자는 크리스털 잔에 담긴 와인을 음미했다.


“먼저 연락을 한 건 당연히 아저씨겠죠?”


썬이 다그쳤다. 남자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캐물었다.


“그 이유를 여쭤 봐도 될까요?”


“저는 곧 한국을 떠나게 됩니다. 그전에 유나 씨를 꼭 만나고 싶었어요.”


남자는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왜요? 만나서 뭘 하려고요?”


썬이 또다시 심문한다. 반드시 피의자의 자백을 받아내겠다는 각오다. 남자는 시선을 창밖으로 던졌다. 울창한 아파트 숲으로 둘러싸인 시가지에 회색빛 어둠이 가라앉아 있었다. 오로지 가로등과 헤드램프의, 데이글로 컬러로 가득 찬 일방통행 도로만이 공항의 활주로처럼 빛나고 있다.


도회적인 이미지가 넘쳐나는 이 지역은 불과 30년 전만 해도 판자촌과 부랑자가 득실대던 깡패 동네였다고 한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추진된 한강 개발사업 덕분에 대규모 주택단지와 각종 편의시설 그리고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현재는 '강남 8 학군'과 맞먹는 교육특구로 급부상하기에 이르렀다. 상전벽해가 바로 이 동네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약간 구불거리는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남자가 입을 연다.


“나와 어머님과의 만남에 대해 꽤나 부정적이군요.”


썬은 나를 쓱 쳐다본 다음 일축해버렸다.


“솔직히 좋게 보이지는 않네요.”


그러나 남자는 충분히 예상했다는 반응이다.


“그래서 이 자리를 마련한 거랍니다. 두 분만 허락한다면 유나 씨를 한번 더 뵙고 싶어서요.”


“엄마를 또 만나야 할 사정이라도 있으신가요?”


내가 틈 없이 물었다.


“작별인사랄까요. 그날은 갑작스럽게 두 분을 마주하는 바람에 그럴 경황이 없었죠. 그전에 나눈 대화라고는 서로의 자식 자랑을 늘어놓는 정도였고요.”


썬이 빈정거리는 투로 대꾸했다.


“굳이 우리의 허락이 필요할까요? 이미 따로 연락하고 잘도 만났으면서.”


남자는 대답 대신 명함 두 장을 테이블 위로 꺼냈다. 명함에는 ‘Daniel’이라는 영문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메일 주소가 프린팅 되어있다.


“22일 저녁에 출국하는 비행기예요. 다음 주 일요일이죠. 그전까지 연락이 없다면 그냥 떠날 겁니다. 작별인사 없이 말이죠. 더불어 오늘 이 자리는 비밀로 했으면 하는데, 그래 줄 거죠?”




어색한 만찬은 그렇게 끝이 났다. 다니엘 씨는 스카이라운지에 좀 더 머물다 가겠다고 해서 썬과 나 먼저 지상으로 내려왔다. 마구잡이식 계발의 광풍이 텅 빈 ‘축제의 거리’를 휘감고 있었다.


“썬. 너도 나처럼 다니엘 씨한테 갑자기 끌려온 거야?”


썬은 기막히다는 표정이다.


“언제 봤다고 다니엘 씨냐. 그리고 아까 보니까 명함도 챙기던데. 설마 그 아저씨랑 연락이라도 하려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형은 두 사람이 만나는 거 허락해 주고 싶어?”


“작별인사라잖아. 나쁠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러나 그 대답이 썬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 모양이다. 심경이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얼굴을 확인하고 내가 말을 이었다.


“어차피 지금은 그냥 친구잖아. 과거에도 별일 없었고.”


“그건 그렇지.”


녀석도 마지못해 수긍한다.


“아버지가 마음에 걸려서 그래?”


“그럴 리가 있냐!”


썬은 펄쩍 뛰며 역정부터 낸다.


"근데 왜 그렇게 오버야."


우리는 광장으로부터 뻗어 나온 보도블록을 말없이 걸었다.


“그나저나 정말 첫사랑이 맞았네. 맙소사.”


썬이 한탄한다.


“그래도 첫사랑 치고는 꽤 순수하지 않아?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말이야.”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교복 바지 주머니에 쟁여둔 명함을 지갑 속으로 옮겨 넣었다. 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나기? 그게 뭐야. 옛날 노래야?”


나는 도리질을 하다 플라타너스가 아케이드를 이룬 가로수 길을 잔 달음 했다. 썬이, 쳇, 하며 그 뒤를 따른다.




공교롭게도 그 후로, 교내 기말고사 시즌인 관계로, 다니엘 씨에 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리게 되었다. 그러던 중 사건이 터졌다. 기말고사가 끝난 금요일 밤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은 영화 <로마의 휴일>의 그레고리 펙이 죽은 날이기도 했다.


온종일 친구들과 시험 스트레스를 풀다 자정이 넘어서야 고양이 발로 옥탑방에 들어섰다. 곧바로 라디오를 켜고 침대에 누우려는데 느닷없이 40화음의 핸드폰 벨소리가 울린다. 액정화면에 표시되는 발신자는 썬. 통화버튼을 누르고 성가신 듯한 어조로 말했다.


“이 시간에 웬 전화야?”


그러나 대꾸한 건 썬이 아니었다.


“혹시 전유선 군 보호자 되시나요?”


웬 여자 목소리여서 나는 말투를 고치고 대답했다.


“네. 제가 형인데요.”


그러자 여자가 신속하게 설명한다.


“여기는 스카이병원입니다. 전유선 군이 사고로 응급실에 있거든요. 그래서 핸드폰에 저장되어있는 번호로 연락드렸습니다.”


나는 오디오 컴포넌트의 전원을 끄고 물었다.


“괜찮은 건가요?”


“의식이 없는 상태라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빨리 오셔야 할 것 같은데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열일곱인데요.”


그랬더니 여자가 약간 난처한 듯 말했다.


“미성년자군요. 그럼 혹시 부모님 계신가요?”


나는 약간 화가 났다. 이 상황에 성인 타령이나 하는 꼴이라니. 그래서 뾰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같이 갈게요. 그럼 되죠?”


“네. 그럼 부모님 모시고 지금 바로 응급실로 오세요.”


툭, 하고 통화가 끊긴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책상 모서리에 놓인 플립 시계를 바라보았다. 부모님은 벌써 잠자리에 들었을 테니 이 소식을 아버지 모르게 엄마에게만 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작년에 썬이 식중독에 걸린 적이 있다. 아버지는 링거까지 맞고 있던 썬을 집으로 데려와 때리려고 했다. 아파서 병원비가 들었다는 이유로.(물론 그게 진심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 뒤로 썬과 나는 물질적 비용이 발생하는 일이라면 아버지에게만큼은 절대로 알리지 않는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파자마 위에 오버핏 항공점퍼를 대충 걸친 다음 홀로 집을 나섰다.




등촌로로 이어지는 큰길에 도착해서 대로변을 정신없이 두리번거렸다. 늘 진을 치던 택시들이 오늘따라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허리를 숙여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쉬지도 않고 달려온 터라 등줄기에 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렇게 발을 동동 구르는데 문득 다니엘 씨가 떠올랐다. 이유는 모르겠다. 곧바로 지갑에서 다니엘 씨의 명함을 꺼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전화를 걸었다. 단조로운 통화 연결 음이 이어지던 스피커 홀에서 곧 중후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여보세요.”


어른 목소리에 난데없이 코끝이 찡해졌다. 아무 대답도 없자 다니엘 씨가 다시 한번 말했다.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나는 보도블록의 낡은 턱에 털썩 주저앉았다.


“안녕하세요. 전유림입니다.”


“아아. 유림 군. 이 시간에 어쩐 일이에요?”


다행히 반기는 목소리라 나는 살짝 안도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를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다니엘 씨는 흔쾌히 답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거 라면요. 무슨 일 있어요?”


그 말에 나는 아 잠시 만요, 하고서 핸드폰의 마이크 홀을 막았다. 그리고 자꾸만 삐져나오려는 눈물 콧물을 점퍼 소매로 툭 툭 털어냈다. 다시 바짝 마른 내가 입을 연다.


“사고가 나서 지금 동생이 응급실에 있는데… 보호자가 되어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고 나서 자초지종을 늘어놓으니 다니엘 씨가 병원 이름과 주소를 묻는다.


“알았어요. 내가 그 병원으로 가볼 테니 너무 걱정마요.”


때마침 서행하는 택시를 발견하고 내가 말했다.


“저도 지금 갈게요. 택시 타면 금방이에요.”


“알겠어요. 병원 응급실 앞에서 봅시다.”




내가 탄 택시가 스카이병원의 별관에 도착했을 때는 돈벌이에 환장한 주차료 정산소의 불조차 꺼진 상태였다. 택시비를 지불하고 열려있는 출입통제 차단기를 통과해 응급실 병동으로 달려갔다.


로비에는 다니엘 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급하게 나왔는지 복숭아뼈까지 내려오는 슬랙스에 아이보리색 트렌치코트 차림이다. 나는 고개 숙여 인사하고 물었다.


“제 동생은…?”


다니엘 씨가 땀으로 질척해진 내 어깨를 토닥였다.


“방금 다른 검사를 받으러 들어갔어요. 큰 부상은 없는 것 같으니 안심해요.”


나는 적갈색 풀업 가죽 의자에 쓰러져버렸다.


“왜 부모님께 알리지 않은 거죠?”


다니엘 씨가 내 앞에 쭈그려 앉아 그렇게 물었다. 나는 우물쭈물할 수밖에 없었다.


“형.”


그때 썬이 절뚝이며 검사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반 깁스를 한 오른쪽 다리에 흰색 붕대가 감겨있다. 내가 헐레벌떡 다가가 녀석을 부축했다.


“괜찮아?”


썬은 어두운 낯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다니엘 씨가 물었다.


“뭐라던가요?”


썬이 대답했다.


“다리에 실금 간 거 말곤 별 다른 이상은 없대요. 저기… 그런데 혹시 스쿠터는…?”


“방금 업체와 통화해봤는데 폐차 처리하기로 했어요. 가드레일 아래로 굴러 떨어졌으니 그럴 만도 하죠. 사실 유선 군이 이 정도만 다친 것도 기적에 가까워요.”


썬은 끝내 고개를 떨궜다. 십 년 노력의 결과물인 녀석의 보물 1호가 방금 허무하게 사라진 셈이다. 그것은 나에게도 충격이었고 그래서 어떠한 위로도 건넬 수가 없었다. 다니엘 씨는 우리 둘의 눈치를 살피다 말을 꺼냈다.


“참고로 폐차 처리로 인해 수령하는 금액은 견인비용으로 처리됐어요.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했으니 신경 쓸 필요 없고요.”


썬은 가까스로 입을 연다.


“감사합니다.…”


잠시 후에 핑크색 유니폼을 입은 여자가 썬을 어두운 반대편 복도로 데려갔다. 혹시 몰라서 여러 검사를 받는 것뿐이니까 걱정 말아요, 라며 다니엘 씨는 거듭 나를 안심시켰다.


“그나저나 그 스쿠터, 부모님은 모르고 계시죠?”


그 말에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자 다니엘 씨가 씩 웃는다.


“비밀이 많은 형제군요.”


나는 애써 화제를 돌렸다.


"저… 작별 인사말인데요…"


그러자 다니엘 씨 주변의 공기가 삽시간에 무거워진다. 나는 말을 이었다.


"만약 사정이 여의치 않게 된다면 제가 대신 엄마한테 전해드려도 될까요?"


똑딱거리는 초침 소리가 복도를 끊임없이 메아리친다. 다니엘 씨는 입을 꾹 다문채 중앙현관에 우뚝 선 대형 괘종시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남자의 얼굴에서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