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중독자의 수면 집착 일지

마지막_나의 반려 질병에게..

by 신나

8월 16일

거의 한 달 가까이 수면일지를 쓰지 않았다. 긴 휴가기간이라 입면 시간이 미뤄져도 한두 시간 늦게 자고 그만큼 늦게 일어나면 되기에 그냥 내 몸의 신체사이클에 맡겼다.

약으로 그동안 수면리듬이 맞춰진 것인지 의외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날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 새벽 1-2시 사이에 약 없이 잠이 들었고 아침 8시-9시 사이면 일어났다. 피로가 누적된 날만 주 1회 정도 11시까지 잔 것 같다.

오늘 재출근을 앞두고는 망설임 없이 약을 복용했다. 약으로도 쉽게 잠들지는 않았고 적당히 잔 것 같다. 중간에 깨는 일이 있어서 몸은 피곤했다.

이제 다시 12시 전에 약 없이 잠들 수 있으면 자고 12시를 넘기면 약을 먹는 패턴을 유지해야 한다. 유튜브나 인터넷 서치를 할 때 수면, 불면, 멜라토닌 등의 단어를 보면 습관적으로 클릭하게 된다. 알고리즘으로 인해 불필요하게 정보가 계속 보이는데 제목이 대부분 자극적이다 보니 별다른 내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또 눌러본다. 역시나 넘치는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

요즘엔 항정신성 물질에 대한 내용까지 추가되었다. 내가 복용하는 약이 항정신성에 분류된다는 것을 안 이후로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멜라토닌과 항정신성 약물의 부작용을 접할 때마다 걱정이 된다. 지금도 기억력 감퇴가 심각한데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더 심해져 있을까 걱정스럽다. 잠은 자야 하는데 나이와 그로 인한 호르몬 저하로 앞으로 더 악화될 일 밖에 없을 텐데 과연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돈만 많다면 직장을 다니지 않아도 될 것이고 수면위상 증후군인 나는 정상인이 될 것인데 말이다. 돈이 많이 없으니 수면을 조절할 수밖에 없고 안 되는 것을 조절하려고 하니 괴롭고 피곤해진다.


8월 22일

요즘은 약 없이 잘 잔다. 중간에 깨지 않는 것도, 입면 시간이 줄어든 것도, 수면 시간이 긴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약 복용 없이 새벽 1시 이전에 잠이 든다. 중간중간 깨더라도 자는 시간 동안은 그럭저럭 푹 자는 것 같다. 이 상태로 계속 이어져 가끔 못 자는 날이나 일요일만 제외하고 같은 패턴을 이어가면 수면에 대한 신경을 덜 쓰고 살 것 같다.

병원 재방문 이후 길다면 긴 시간이었는데 병원에 다시 간 것은 잘한 일인 것 같다. 약 덕분에 잠이 안 오는 날도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다. 수면 때문에 의식적으로 노력해서인지 예전보다 잡념도 많이 사라진 것 같다. 딴생각이 나려고 하면 그 즉시 마치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듯이 생각도 미루고 자려면 그만! 하고 주문을 외우며 최대한 보류하는 것이 효과가 있었다. 안 하려고 하는 것은 잘 안되니까 어차피 내일 할 생각이다 하는 마음에 편하게 잠이 드는 것 같다. 모처럼 찾아온 수면 안정기라고나 할까?

이 말이 또 초치기가 되어 다시 힘든 나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예전보다 나의 증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편해졌다. 덕분에 빠른 대처가 되도록 루틴이 만들어진 것 같다.

먼저, 약은 절대로 떨어지지 않도록 여분을 세 개 정도는 둔다.

둘째,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는 과감히 내일로 보류한다.

셋째, 시간이 새벽 한 시를 넘어가면 바로 약을 복용한다.

이 세 가지 원칙을 정해두고 약은 어디를 가든 꼭 들고 다닐 예정이다. 물론 생활 속에서 햇빛 보기와 운동이나 가벼운 산책, 마그네슘 섭취는 필수다!

흐르는 시간과 노화는 내 통제영역이 아니며 그에 따른 수면의 양적 질적 저하 역시 그러하다.

그러니 피곤에 적응해 가며 나이에 맞는 수면생활을 할 수밖에,,,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가 등장해 혼신을 다해 안전한 약을 개발하는 그날이 오길 바란다.

이제 수면일지도 중단하려고 한다. 너무 수면에 집착해서 수면만 생각하고, 낮부터 오늘은 잘 잘 수 있을지 걱정하며 모든 행동을 잠과 연결시키려고 하는 것 자체가 불안증이자 수면에 방해가 된다. 한 가지 생각에 매몰되어 다른 일이 소홀해지고 집착이 되지 않도록 관찰을 멈추려 한다. 잘 자기 위해 멈추고 멈추기 위해 일지도 중단한다. 나는 분명 앞으로도 못 자는 날이 더 많을 사람이다. 내 나이가 그렇고 내 몸이 그렇게 변화할 수밖에 없으니 불면중독과 공생하며 살아가야 한다. 나의 반려 질병 불면중독이 삐지거나 심술을 부리지 않도록 눈치 봐가며 살살 비위를 맞춰가며 살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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