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7월 15일
약을 두 번이나 먹고도 잠을 자지 못한 충격과 피로로 다음 날은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주말 동안 연이어 약속을 만들고 저녁 늦게까지 농구를 하고 걷고 몸을 움직였더니 너무 늦지 않은 시각에 잘 자고 역시 너무 늦지 않게 잘 일어났다.
내가 평상시 몸을 너무 덜 피곤하게 한 것이라는 친구들의 핀잔 아닌 핀잔이 있었는데 물론 몸이 피곤하면 더 잘 자겠지만 그것은 나한테는 해당되지 않은 날도 많기에 그저 한 귀로 듣고 흘린다. 요즘같이 늦은 시간까지 환하고 날씨가 좋은 날에 몸을 많이 써서 단약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혼자 걷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내 취향도 아니라는 것은 이제는 핑계다. 동네를 걷던지 아니면 혼자라도 호수공원을 걷겠다.
7월 16일
오후 7시부터 갑자기 급격하게 피곤해지면서 눈이 아프고 수면욕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 시간에 자는 것은 분명 11시에 깨게 되고 그런 날은 다시 잠들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던 경험이 있기에 10시까지 책을 읽으며 버텼다. 읽던 책이 너무 재미있어 조금 더 읽었지만 시간은 확인하지 않았다. 단약을 결심한 이후 나는 시간을 절대 보지 않는다. 하지만 체감 상 이미 11시는 훌쩍 넘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저녁의 피곤은 그대로인데 수면욕만 어디로 증발을 해버렸는지 잠이 들지 않았다. 뒤척거리는 시간을 꽤나 보낸 뒤 망설임 없이 약을 먹었다. 늘 그렇지만 못 자는 것보단 약을 먹는 게 낫다. 약을 먹고도 쉽게 입면 하지 못하는 것은 이제 일상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어설프게 잠이 들긴 했고 아침부터 몸은 준비운동 없이 격렬한 운동하고 난 다음날처럼 묵직하고 아프다. 비가 오는 탓이다 생각하고 넘긴다.
진짜 지독히도 운빨이 없는 나는 꼭 중요한 약속이 있는 전날이면 알 수 없는 악마 같은 그분이 등장해 나를 도통 재우 지를 않는다. 약을 먹어도 운동을 해도 그냥 소용이 없다. 이 정도면 일부러 조물주가 나를 약 올리려고 작정했다고 밖에 볼 수가 없다. 늘 중요한 약속이면 단 한 숨을 자지 못하고 집에 우환이 있거나 젊은 나이에 몹쓸 병에 걸려 온갖 동정을 받아 마땅한 얼굴로 약속을 가게 한다. 얼굴에서만 3킬로 빠진 듯, 세월을 10년을 앞서간 듯 푹 주저앉다 못해 동굴이 생긴 볼과 눈두덩을 보면 다들 매우 피곤해 보인다고 한 마디를 얹기 때문에 나는 늘 그들을 보자마자 어제 잠을 못 잤다고 푸념부터 늘어놔야 한다. 진짜 중요한 날만큼은 졸피뎀을 상비해 두고 싶은 정도인 내 맘을 누가 알까…
7월 18일
탄수화물이 과한 저녁식사를 하고 역시나 탄수화물인 디저트를 먹고 과일화채까지 먹고 나자 과한 배부름에 산책을 다녀왔다. 연속으로 쉬지 않고 음식을 밀어 넣으며 동시에 수다와 운동을 겸하고 끝없는 수다를 하다 보니 피곤함에 자연스레 곯아떨어졌다. 역시 나는 너무나 정적인 활동만을 하고 너무 적게 먹었나 보다.
호르몬이 딱 배란 전이라 잠이 잘 오는 탓도 있다. 나의 호르몬 주기는 어느 때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이제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동안 못 자는 날에만 먹던 약도 떨어져 이제 다시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방학마저 바쁘고 빡빡하게 보내고 나면 내 수면이 좀 정상화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지만 그것은 신만이 아실 일이다.
7월 19일
어제 그제 약 이틀 동안 12시 넘어서 잠을 잤기에 오늘은 피로 누적으로 이른 시간부터 잠이 올 것을 기대했지만 역시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호르몬 주기상 지금은 수면에 영향이 별로 없고 근육마저 잘 붙고 체중감량도 잘 된다는 황금시기 인 데다가 집 안에서 이것저것 처리할 일이 많았어서 가벼운 체온 상승으로 누우면 체온이 저하되며 쉽게 잠들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는데 말이다.
오늘 약속이 있어 얼굴이 퀭해지는 것이 싫어 약을 먹고 바로 잠이 든 것 같다. 안 먹었어도 조금만 대기하면 잠들 수 있었을지도.
의사 선생님은 수면 생활이 정상화될 때까지 약을 그냥 먹으라고 하셨다. 내가 스스로 잘 수 있는 날엔 안 먹고 못 자는 날에만 먹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안 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지난번 상담 때 접촉사고가 난 것을 이야기하는 대신 그저 작은 문제가 있었다고만 언급했는데 이것을 빌미로 또다시 내가 못 자는 성격적 이유가 분명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자꾸 은근슬쩍 요즘 직장생활은 어떤 지 등등 질문을 하셨다. 나는 정말이지 우울한 감정이나 불안증은 전혀 없다고, 있다고 한들 내 나이의 현대인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정도의 그것도 경미한 정도인데 은연중에 이 말을 믿지 않고 있다고 느껴졌다.
알프람 0.125로 바꾼 후 다음 날 많이 힘들었던 적은 별로 없었는데도 조금 늦은 시간에 약을 먹어서 인지 오전 내내 어지럽고 멍했다.
아마도 지금 시기가 호르몬 주기상 잘 잘 수 있는 시기인데 내가 약속에 대한 강박에 약을 너무 늦게 먹어서 다르게 보면 안 먹어도 되는데 너무 빨리 먹어서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