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중독자의 수면 집착 일지

열 번째 주-2

by 신나

7월 8일

어차피 마약 검사도 끝났고, 항정신성 약이라도 어제처럼 힘든 날만 간헐적으로 복용하면 한숨도 못 자는 것보다 낫다는 판단에서 병원을 다시 방문했다.

선생님께 멜라토닌을 병원용으로 처방해서 먹는 것은 어떨지 문의했더니 처음 방문때와 같은 답을 주셨다. 그때는 멜라토닌 젤리를 물었기에 처방용이 아닌 식품용 멜라토닌만 해당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처방용 멜라토닌도 마찬가지였다.

시차적응, 교대근무자, 멜라토닌 분비가 많이 저하될 나이인 노인에게 해당되는 것이라며 환자분이 이 중 어디에 해당되느냐 물으셨다. 농담으로 노인이요?라고 웃어넘겼지만 왠지 항정신성보다 멜라토닌이 안전해 보이는 듯해서 조금 실망했다. 항정신성 물질에 대한 이 지독한 불신과 거부는 언제쯤 사라질 것인가..

자꾸 약에 의지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는 내 말에 신체적으로는 약을 간헐적으로 복용하고 정신적으로는 약과 멀어지려고 의지를 가지라는 말을 하셨다. 아직 약을 복용한 지 약 두 달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해주셨지만 내가 복용하는 약이 졸피뎀과 같은 항정신성 계열이라는 말을 안 해주신 전적이 있는지라 큰 위로가 되지 않았다.


7월 10일

약 일주일간 약을 먹지 않다가 먹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나의 기분 탓인지 복용 후 입면까지 시간이 많이 줄어든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장마로 인한 빗소리에 새벽에 잠이 자꾸 깼다.

거주 지역이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기도 하고 이번 장맛비가 새벽에 큰 천둥 번개를 동반해서인지 자꾸 깼다. 한 번 깨면 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때는 약을 복용할 수도 없었다. 적용시간이 길어져 아침에 못 일어날 것 같고 오전에도 몽롱한 상태일 것이 뻔하기 때문. 새벽에 깨면 꿈인지 너무 인지하고 있는 상태의 얕은 꿈을 꾸며 어설픈 잠이 들기는 했다. 그런 날은 안 잔 것보다는 나은 상태로 출근해서 버티는 날이다.


7월 11일

어제 낮엔 디카페인 커피를 한 잔 마셨다. 디카페인도 카페인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라 되도록이면 안 마시는 것이 좋다는 것은 알지만 가끔 디카페인을 마신 날 약을 복용하지 않고도 잘 잤기에 어제처럼 모처럼 커피가 당기는 날, 좋은 사람들과 재미있게 수다하는 날이라 기꺼이 선택했지만 이것은 재앙이 되고 말았다.

커피 탓인지 아니면 어떤 짓을 해도 잘 수 없는 알 수 없는 기운의 그분이 오신 건지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시간을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이러다가 정말 날을 꼴딱 샐 거 같은 기분에 중간에 약을 한 번 더 먹는, 내가 생각해도 조금 미친 짓을 감행하기까지 했다.

약에 의존하게 될까 그렇게 두려움에 떨면서도 하루에 몇 시간 간격으로 약을 두 번이나 먹을 생각을 하다니,,, 분명 이 시간에 복용을 하면 적용시간으로 오전 내내 반 수면 상태일 텐데..

핑계이지만 약 없이 잠이 오는 날은 안 먹고 정말 필요할 때만 먹기로 결심했기에 어제저녁은 정말 필요하구나 해서 먹은 것이긴 하다. 그래도 두 번이나 복용한 것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 충동적이었고 빠르게 중독 쪽으로 다가가는 행동이었다. 다시는 정말로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아예 한숨도 못 자는 것은 이제는 끔찍함을 넘어 공포스럽다. 비 소리에 새벽에 깨서 못 잔 날도 다음날 신경이 너무 날카롭고 체력적으로 기운이 하나도 없었기에 오늘처럼 아예 못 자고 온 다음날은 너무나 힘들 걸 알아서 잘 한 선택이라고 위로하며 먹었지만 불행히도 두 번의 복용을 하고도 잠을 자지 못했다.

황당하고도 화가 났다. 두 번이나 먹었는데 잠을 못 잔다고? 이제는 이 약마저 효과가 떨어지는 것인가? 지금 복용 중인 약은 알프람 0.125로 처음 방문 시 복용한 클로나제팜 0.5보다는 약한 약이긴 하지만 이 정도로 금세 효과가 미미해지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정말 오후 2시가 넘도록 요란한 놀이기구에서 방금 내린 것 같은 어지러움이 지속되고 있다. 오늘 저녁은 약 없이도 기절할 피곤함이지만 또 모르지,, 저녁이 되면 하루 종일 이어진 몽롱함이 사라지고 정신이 말똥해지는 각성이 찾아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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