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대졸 신입 사원이 아니라 고졸 출신으로
현장 라인에서 똘똘하게 일하는 사람을 골라
기계를 관리하는 부서로 이동 해놓은 오퍼레이터 출신이었다.
그녀는 일도 야무지고, 업무의 정리도 꼼꼼하고 배울 점이 많았지만 기계를 다루는 주요 업무들은 모두 남자 들이 하고 있었고 부품을 구매하거나 자재를 관리한다던지 등의 부수적인 일을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
나는 여자라는 이유로 같은 시기에 입사한 남자 동기들과 비교 당하고 싶지 않았다.
상사에게 모른다고 무시당하거나, 업무의 태도로 지적 받고 싶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업무를 배우지 않으면,
이래서 여자애는 안된다니까 혹은 남자 직원을 달라니까 여자를 받아 가지고...... 라는 구시대적인 소리가 현시대를 살고 있는 내 뒤통수에서 들릴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부지런해져야만 했다.
30분 일찍 출근해서 업무를 미리미리 확인하는 습관을 들였고 다른 사람들이 다 퇴근하고 난 이후 1시간은 남아, 남은 업무들을 정리했다.
공장 현장을 돌아다니며 궂은일에도 손을 들었다.
업무 처리 속도가 빨라졌고, 업무에 대한 자신감은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내 마음속 선명하게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그렇게 업무를 익히고 업무의 1인분을 할 때 쯤,
입사한 지 1.5년 정도 되었을 때였다.
그녀가 조용히 나를 비상구 계단으로 불렀다.
“윤아, 나 이번 주가 회사 마지막이야...... 놀랐지? 사실 일이 너무 하고 싶은데,
남편이 육아를 했으면 하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나 기다리느냐고
저녁을 늦게 먹거나 인스턴트만 먹게 하는 게
아이도 싫고, 남편도 싫고,
모두 다 내 탓인 것만 같아......
이제 진짜 엄마가 되려고......”
‘일이 너무 하고 싶은데…’
‘일이 너무 하고 싶은데…’
‘일이 너무 하고 싶은데…’
그녀의 이야기 중 한 문장이
퇴근길 내 귀에 계속 맴돌았다.
“일하면서 육아 하는 건 쉽지 않나 봐요.”
주변 선배에게 이야기했더니 돌아오는 이야기도 비슷했다.
“우리 와이프도 대기업 인사팀에서 잘나갔지,
근데 애 엄마가 일을 하니까 첫째가 유치원에 적응을 못하더라고, 결국은 담임 쌤한테 전화가 왔어. ‘소민 어머니 지금 일하실 때가 아니신 것 같아요, 소민이가 아이들이랑 잘 못 어울리네요. 소민이 성격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어두워요. 어머니의 집중이 많이 필요 한 것 같아요. 신경 많이 써주세요~’ 이 한 통화로 바로 퇴사했지, 애가 잘못 될 것 같다고 하는데 일을 계속하는 엄마가 세상에 어디 있겠냐......”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무거워 졌다.
얼굴도 모르는 그녀였지만, 아이를 위해 퇴사한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내 미래의 퇴사 이야기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회사에서 그만 나오래”
원래 그런 성격처럼 담담하고 무심하게 이야기했다. 같은 과를 졸업한 그녀, 나보다 3년 더 빨리 입사해서 이미 승진까지 한 그녀였다.
“건설업계가 안 좋아서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간부 놈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둘째 가진걸 알고 부르더라고......
‘회사 상황이 안 좋은데 오빠가 (같은 회사 김책임) 나가는 게 낫겠냐? 이주임이 나가는 게 낫겠냐?’하길래 내가 나간다고 했지”
담배를 필 줄 알았다면 담배를 연거푸 피웠을까?
술을 마실 줄 알았다면 부어라, 마셔라 들여 부었을까? 내 마음도, 그녀의 마음도 답답한 마음을 달래 줄 방법이 없었다.
“너 괜찮냐?”
“응 괜찮아, 첫째가 안 그래도 출근할 때마다
울고 짜고 매달리고 난리 쳤는데 이렇게 된 거,
둘째 낳으면서 첫째 보지 뭐, 퇴직서 쓰면서 김책임은 사우디 사업장 장기 프로젝트로 보내달라고 해야겠어, 꼴도 보기 싫거든.”
아이를 키우는 것은 우산 없이 비를 맞는 것처럼 온전히 엄마 혼자 감당,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그런 그릇도, 깜냥도 되지 않으며 자신이 없었다.
아이를 계획하고 키우는 것에 있어 남편의 지지와 응원이 없으면, 가족의 도움이 없다면 절대 하지 말아야지, 안 할 수 있다면, 안 해도 된다면, 그래도 된다고 생각 했다.
육아로 인해 더딘 진급을 하고, 퇴사를 망설이는 수없이 많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 마음은 돌멩이처럼 더 단단해졌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없는 모습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꼭 아이는 키워 보고 싶다고,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했던 남편의 이야기에 내 돌멩이는 모래알처럼 부서져 버렸다.
“대리 진급만 하고, 대리만 되고 나서 아이 가지자.
그땐 업무가 능숙해져서 눈치도 덜 볼 것 같아.”
그때의 나는 대리 진급만 하고 나서
아이를 가지면 임신한 배가 덜 나올 줄 알았나 보다. 대리 진급을 하고 임신을 했어도
배는 다른 산모들과 똑같이 불렀고,
회사에서의 눈치도 똑같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