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불러오던 어느 날,
불편한 말이 얼굴 앞으로 날아왔다.
“윤이 씨, 일은 계속할 수 있는 거야?
아이는누가 키워 주시는 거야?
나는 애의 미래와 가정교육을 위해서라도
집에서 엄마가 키워야 된다고 생각하거든 ”
“네? 엄마가 키워야 된다고요?
왜 아이를 엄마만 키워야 된다고 생각하세요?
아니, 그러면 여자는 어차피 엄마가 될 텐데,
고등 교육, 대학 교육은 왜 가르쳐요?
사회생활은 왜 해요?
나중에 당신이나 딸 낳으면 그렇게 키우세요,
그 딸은 커서 엄마가 될 거고,
애를 키워야 하니, 딸아이가 하고 싶은 교육 시키지 마시고 엄마로 성장 하도록 키우시지 그러세요?”라고 하고 싶었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프레임을 나에게 씌우려고 하자 쏘아 붙이지는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발끈 했었다.
맘고리즘(Momgorithm) 이란 단어가 있다. 맘(Mom)과 알고리즘(Algorithm)의 합성어로, 여성의 생애 주기 별로 육아가 반복되면서 평생 육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의 현실을 표현하여 만들어진 단어이다.
풀어서 이야기 하면, 한 여자가 있다.
그녀가 젊었을 땐 학교도 다니고 직업을 가진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자의, 타의로 인해 회사를 그만두고 경력 단절녀가 된다.
그녀는 아이를 열심히 키운다. 그 아이가 자라 학교를 다니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해서 아이(손자)를 낳는다. 그 아이(손자)는 누가 키우느냐? 딸, 며느리의 경력단절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그녀는 결국 황혼 육아가 시작 된다.
적어도 나는 이런 [아이는 엄마, 할머니가 키운다]는 프레임에 갇혀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내 친구를 프레임에 씌우려고 하다가 들킨 적이 있다.
“엄마가 집에서 노시면 애기 봐주시면 되겠다.”
“야, 우리 엄마는 평생 애만 보냐? 내 애는 내가 봐야지.”
본인의 아기는 본인이 키우겠다고 단칼에 나의 말을 자르는 그녀의 말에 아차 싶었다.
맞아, 우리 엄마는 나 키워 줬으니 그걸로 감사해야지, 내 아이 까지 키워 달라고 하면 도둑놈이지.
친구의 이야기에 정신을 다시 차리고 나의 육아의 현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의 양가 어머니는 모두 일을 하시는 상황이었다. 조금 더 솔직히 이야기 하자면 우리 부부보다 더 나은 경제생활을 하고 계셔서 그런 부모님께 우리가 낳은 아이를 돌봐달라고 말하기엔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가 우리의 사회적, 경제적 생활을 위해 부모님께 도움을 바랬다면, 우리 가족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셨을 것 같다.
그리고 난 내심 그렇게 하길 바랐다. 하지만 남편은 나와는 달랐다. 남편은 우리의 아이로 인해 부모님의 인생이 경제적, 사회적 활동이 중단 되는걸 원하지 않았고, 존중하고 싶어 했다.
나는 아이를 낳아도 일이 하고 싶었다.
배는 계속 불러왔다.
아이는 태어났고 아이를 돌볼 사람이 필요 했다.
회사를 다니고 싶은 나는 아이도 키우고 회사도 가야 했다. 내가 회사에 가면 그럼, 우리 봄이, 갓난아기는 누가 돌보느냐, 시터를 쓰느냐. 등하원 도우미를 고용하느냐.
해결은 없이 고민이 계속 쌓였다.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주변의 사례에 귀를 기울였다. 처음으로 동네 맘 카페에 가입 하여 일하면서 도움을 받지 않고 키우는 가족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없었다.
어떻게 하지? 육아 회로를 돌려 본다. 시터를 쓴다. 아이와 단 둘이 있다가 아이를 어디론가 데려가 버릴 것만 같다. 나의 걱정 병으로 도우미, 시터 보단 어린이집 기관에 맡기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 수많은 우려의 숲에서 인간은 어리든 늙든 병들든, 어쨌든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집 안에 일대일로 보육자와 있는 것 보다 여럿이서 생활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진화적으로 낫다는 사내 워킹맘 강의에서 들은 한 줄 내용에 갓난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다는 죄책감 반 덩이를 덜어 냈다.
결론적으로 남편과 나는 [봄이 키우기 프로젝트]의 팀원으로... 아니, 남편과 나 그리고 우리 봄이는 한 팀이 되어 ‘팀킬 금지’를 외치며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