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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느 Jun 19. 2022

클라이밍과 처음 만난 날, 인연이 찾아왔다 4

선생님에게 내적 친밀감이 생긴 계기는?

간간이 대화를 주고받는 날이 이어졌다,라고 2편을 마무리하고,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를 주제로 4편을 쓰려고 했다. 했다,라고 과거형을 사용한 것은 결심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 자판에 손을 올렸지만, 그때마다 문장을 쓸 수 없었다. 대화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공개해야 할지 고민됐다. 아무래도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상대가 혹시라도 곤란해질까 봐. 오래도록 글을 쓰기 주저했다.


그러다가 문득, 사적인 이야기를 어디까지 말할지, 글을 어떻게 구성할지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생각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를 이어가는 일은 내가 타인과 연결되기를 바라며 상대를 생각하고, 대화하며 함께 뚜벅뚜벅 나아가는 것이니까. 여기에 요즘 왜 연재 안 하느냐, 글 안 쓰느냐는 선생님의 핀잔 또한 오래도록 이어지는 바람에 일단은 써야겠다, 고 결심.


우리의 일을 쓰기로 한 이유는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닌 내가 그를, 우리가 쌓은 순간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으므로, 그 마음이 휘발되지 않도록 잘 지키며 써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2021년 9월 초, 좋아하는 작가의 전시가 홍대 ‘오브젝트’라는 소품샵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전시가 열린 첫 주의 토요일, 시간을 내어 그곳을 찾았다. 그림을 실컷 보고, 그가 어떤 마음으로 전시를 기획했는지 적은 글까지 꼼꼼히 읽었다. (글도 그림만큼이나 어찌나 좋던지!) 좋아하는 작가가 솔직하고 담백하게 적어 내려 간 그 마음을 간직하고자 사진을 찍고 리플릿을 챙겼다. 방문의 두 번째 목적(이라고 쓰고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읽는다)인 굿즈들도 왕창 샀다. 그립톡, 스티커, 포스터, 책 등등. 다 둘러본 뒤, 지금 이 행복한 마음을 공유하고자 인스타그램 스토리로도 올렸다.


좋아하는 소품샵에서 열린 좋아하는 작가님의 전시


두근거리는 마음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고, 이참에 9월 첫 번째 주말 저녁이나 즐기고 가자 싶어 카페에 들렀다. 주문한 에이드가 예쁜 유리잔에 담겨 나왔다. 그를 본 순간 사진을 못 찍는 나도 잘 찍을 수 있을 것 같아 굿즈들을 늘어놓고 여러 장을 찍었다. 꽤 흡족한 결과물에 만족한 마음이 들었고, 기분이 좋았다. 행복한 마음으로 챙겨 온 책도 읽어나갔다. 글도 그날따라 술술 읽혔다. 여유롭고 즐거운 주말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사진을 들여다보며 하루를 정리하고 있을 때,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인스타그램 모양의 아이콘이 눈에 보였다. 낮에 올린 스토리를 보고 누군가 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짐작이 되시는지?


그렇다. 선생님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오브젝트 다녀오셨어요? 저도 지금 전시하는 작가님과 친분이 있어서 평일에 다녀왔어요!”


좋아하는 작가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니. 선생님, 정말 뭐하는 분인가요. 부러운 마음과 전시를 다녀온 적이 있다고 하니 반가운 마음에 카페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내며, 대화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혼자서 선생님을 향한 내적 친밀감이 형성된 순간이었다. 그 바람에 평소라면 물어보지 않았을 책의 감상까지 물어보게 됐다. (안 친한 사람에게 책을 추천했을 경우, 이후의 대화를 이어갈 필요를 느끼지 않아 잘 묻지 않는다.)


전시를 보고 잔뜩 산 굿즈들과 에이드


“저 이렇게 잔뜩 샀다구… 작가님 사는 동안 많이 버시라고 전해주세요! 정세랑 작가님 에세이는 취향에 맞으셨나요? 추천인으로써 두근두근하네요."


다음날 오후, 선생님에게 메시지가 왔다. 에세이가 정말 재밌어서 오늘 중으로 다 읽을 것 같다고, 저녁에 연희동 가서 마저 읽으려고 한다고. 특정한 동네 이름이 나온 데다가 그 동네가 집 근처라면? 이미 내적 친밀감도 있겠다, 연희동의 좋은 곳을 알고 있는 듯한 선생님의 뉘앙스에 호기심이 일었다. 그쪽 일대를 좋아하냐고 묻자, 단번에 책 읽기 좋은 공간을 추천하는 선생님의 답장이 돌아왔다. 다음에 한번 가겠노라고 하며 내가 좋아하는 칵테일바를 추천하는 메시지도 남겼다. 그렇게 주말의 대화가 끝났다.


그로부터 이틀 후, 또다시 인스타그램을 통해 선생님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받았다.



후일담. 선생님이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 친분이 있는 것은 맞지만, 전시는 가보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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