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텔레비전

by 시느

2000년부터 2012년까지, 아버지가 서점을 운영했을 때 딱 한 번 저녁마다 손님으로 꽉 찼던 적이 있다. 바로 2002년 월드컵 때다. 동인서관의 영업시간은 매일 아침 7시부터 자정까지여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남들이 그때 그 시절 다 했다는 거리응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경기를 꼬박꼬박 챙겨보는 것도 힘들었다. 지금처럼 문자 생중계나 인터넷 중계가 있는 시절이 아니라 어머니와 아버지는 늘 뉴스로만 월드컵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러다 우리나라가 16강 진출을 위한 경기를 앞둔 날, 아버지는 큰 결심을 한다. 바로 집에 있는 텔레비전을 서점으로 옮긴 것이다. 계산대에서 축구 경기를 잘 볼 수 있도록 서점 문 바로 맞은편의 매대에 있던 책을 치우고, 그 위에 텔레비전을 설치했다. 문을 열면 곧바로 텔레비전이 보이니 퇴근하는 직장인, 학교가 끝난 학생들이 많이 찾아왔다. 서점 문이 통유리여서 밖에서도 텔레비전을 볼 수 있었는데, 텔레비전을 처음 설치했을 때는 서점에 들어오면 책을 반드시 사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지 다들 찻길에서 위험하게 경기를 지켜봤다. 그러면서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한두 명씩 가게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그 결과 서점에 손님들(?)이 북적거리게 됐다. 맞은편에 있던 대형서점 직원 몇몇도 우리 서점으로 건너와 경기를 본 뒤 가기도 했다.


서점에서 거리응원 아닌 응원이 펼쳐지기도 했다. 당시 나는 8살, 언니는 14살이었는데, 우리 자매도 길거리 응원을 가고 싶었다. 하지만 저녁에 광장에 가 응원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밤이 깊은 시간인지라 엄두도 못 냈다. 언니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고, 텔레비전이 있는 서점에서 응원하자며 내 얼굴에 태극기 스티커를 붙여준 뒤 자신은 태극기를 몸에 휘감고 서점에 갔다. 이 모습을 본 다른 응원하던 사람들도 덩달아 우리 서점에 들어왔다. 그리고 우리 가족과 우렁차게 ‘대~ 한민국!’을 외치며 다 같이 경기를 관람했다. 서점 계산대에 앉아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웃으면서 나와 언니, 사람들과 텔레비전이 다 나오도록 사진을 찍었다. 그때의 사진들은 인천에서 서울로 이사하며 전부 사라져 버렸다. 아쉽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때의 행복했던 감정은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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