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서관을 추억하는 책을 만들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던 중, 어머니가 서점을 운영하며 틈틈이 적은 두툼한 공책 여러 권을 발견했다. 공책의 주요 내용은 ‘말씀 묵상’이었다. 또 곳곳에 발주를 위한 책 목록과 어음을 메꾸기 위해 얼마가 필요한지 계산한 금액을 쓴 메모가 있었다. 그것들을 읽으면서 뒤늦게 그때 당시 어머니의 마음을 알았고, 철없이 굴었던 행동을 반성했다. 그만큼 어머니가 서점을 운영하며 얼마나 고통스러웠고, 고생했는지가 고스란히 나타나 있었다.
참고서와 문제집을 팔기 위해서는 서점 문을 일찍 열어야 했다. 이때는 고등학교에 ‘0교시’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침 7시부터 문을 열어 바닥을 쓸고, 책의 먼지들을 대충 털고 카운터에 앉아 손님을 기다렸다. 그동안 성경책을 읽거나 교회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예배 영상을 통해 말씀 묵상을 했다. 내가 발견한 공책의 내용이 어머니가 새벽에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적은 메모들인 것이다.
2008. 4. 25 (금)
기도문
아침 6시에 눈을 떠서 밥해서 먹고 건강한 몸으로 출근을 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대한서림보다 우리 집으로 학생들이 더 많이 오게 하심 또한 감사드립니다. 큰 서점 놔두고 동인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하신 능하신 주님의 손길에 감사드립니다.
이 생활에 감사드리면서도 긴장된 이 생활이 빨리 하루라도 빨리 정리되게 하시옵소서. 너무나 많이 배웠던 동인서관, 내 생애 잊지 못할 광야 수업이 되었던 곳입니다. 이제는 이 수업을 써먹을 제2의 인생이 있게 하시옵소서. 하나님께서 꼭 필요한 데가 있어서 훈련을 받게 하신 것 같습니다. (…) 온전한 주일 성수 할 수 있는 영광의 자리로 이전 시켜 주시옵소서.
어머니가 필사한 시도 발견했다. 신경림 시인의 「갈대」라는 시다. 어머니는 자신의 처지가 시의 화자와 같다고 느꼈던 것일까. 새벽에 누군가 하루를 준비하려고 일어날 때, 그는 이미 일어나 일과를 시작했다. 서점에서 홀로 어떤 외로움과 두려움까지 감내하고 있었다. 그때 어머니의 마음을 지금의 나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기도문을 읽은 페이지에서 몇 장 뒤로 더 넘기니 2008년 4월 마지막 날의 일기도 있었다.
日記
4月의 마지막 날이다. 죽을 사 자가 지나간 것 같아서 좋다. 희망의 5月이 올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들떠있다. 5천이라는 큰 어음을 메꾸며 한 달을 무사히 보냈다. 벌이는 시원찮았는데 그 거금을 메꾸게 하시니 이 또한 기적이다. 벌어서 갚아지기만 해도 큰 은혜이다. 요즘같이 불경기에 말이다. 나약한 인간,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도우시니 그리 나약할 것도 없다. 항상 겪는 일이지만 또 못 믿고 불신하고 사람의 방법을 동원하고 그러나 해결해주시고…….
어머니와는 종교 문제로 다툰 적이 많았다. 종교 속에 숨은 정치와 파벌 싸움, 여성이나 장애인, 즉 약자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사상에 회의를 느껴 무신론자가 되려고 했다. 그때마다 어머니와 갈등을 빚었다. 어머니의 맹목적인 신앙심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두툼한 공책들을 다 읽고 난 후 그녀가 신에 의지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음을, 서점을 운영하면서 그러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났기 때문임을,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