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그 여자가 나를 따라오고 있어.
어느 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영문 모를 전화를 받았다. ‘그 여자’가 누구냐고 묻자, 아버지는 대형서점 사장이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회색 봉고차로 거래처를 돌아다닐 때 벌어진 일이었다.
어머니가 새벽에 먼저 문을 열고 서점을 지키고 있으면, 아버지는 점심쯤 출근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점에서 늘 함께 밥을 먹었다. 점심을 먹은 아버지는 이후 인천―파주 사이에 있는 거래처들을 돌며 주문한 책을 받으러 가거나, 책을 배달해주거나, 상품권을 가지러(혹은 또 다른 사업자에게 납품하거나) 갔다. 거래처를 돌고 나면 저녁쯤 동인서관에 도착했다. 이후 저녁부터 자정까지 어머니와 함께 카운터를 지켰다. 어머니가 온종일 서점을 지키며 손님을 응대한다면, 책을 거래처에서 받아오고 손님(혹은 학교)이 주문한 책을 배달해주는 건 아버지의 역할이었다.
아무튼, 다시 아버지가 전화를 건 상황으로 돌아가자면, 거래처의 수와 책을 주문한 손님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 싶었던 걸까? 대형서점 사장의 의중은 아버지도 그걸 듣는 나도 알 수는 없었지만, 그 일로 아버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찰서를 들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경찰서를 들른 그날,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책을 찾고, 배달하기 위해 자신이 모는 봉고차에 올라탔다. 그날엔 한국은행 연수원에 상품권을 납품까지 해야 했으므로 서둘렀다고 한다. 거래처에 들르기 전, 연수원에 먼저 가려고 운전하고 있는데, 차의 뒤를 바짝 쫓는 하얀 소형차를 발견했다. 대형서점 사장은 항상 자신의 서점 앞에 주차했기에 아버지는 사장의 차의 기종과 번호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보자마자 사장의 차라는 것을 알았다고. 처음에는 단순히 같은 국도를 달리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둘 다 서점을 운영 중이니, 거래처로 향하는 길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연수원으로 가는 아버지를 계속 쫓아왔다.
결국 한국은행 연수원 주차장까지 따라와 참다못한 아버지가 사장한테 차에서 내리라고 한 뒤 물었다.
“왜 자꾸 쫓아와요?”
그러자 사장이 “어떤 책을 받으러 다니는지 궁금해서 그랬다”라고 말했다. 기가 찬 아버지는 봉고차의 트렁크를 벌컥 열고 외쳤다고 한다.
“트렁크 보여줄까요? 와서 봐요!”
미행당한 사실이 불쾌했던 나머지 아버지가 대형서점 사장에게 반말을 했는지, 존댓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쨌거나 사장은 아버지의 기세에 트렁크 안을 대충 훑어보는 시늉을 했고, 아버지는 이제 됐냐며, 갈 길 가시라고 말했다.
그런데 연수원에 상품권을 납품하고 왔는데도 그는 그 자리에 여전히 있었다. 아버지는 무시하고 거래처로 가려고 했으나, 자신의 차를 타고 계속 쫓아왔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던 아버지는 그제야 어머니에게 전화한 것이다.
어머니는 거래처로 가는 척하면서 경찰서로 가서 신고하라고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말대로 거래처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경찰서에 가서 차를 댄 다음, 안에 있던 아무 경찰에게 가서 “어떤 여자가 자꾸 쫓아와요!”라고 소리쳤다. 경찰과 대동해 밖으로 나오니 그걸 본 사장이 더는 쫓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는 내내,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 정도로 업계 사정이 좋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하 생략. (개인을 책망하거나 비난하는 말은 이 글에선 최대한 하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겪고 서점을 정리한 아버지는 지금, 내가 책 사러 서점에 간다고 할 때마다 ‘번거롭게 뭐하러 거기까지 가냐! 인터넷에서 사라!’하고 호통을 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