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코끼리 다리'라는 말을 들은 이유

후회되는 선택을 했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by 시느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운동하지 않은 것’을 10년 동안 했던 선택 중, 가장 후회되는 선택이라고 오래전에 쓴 적이 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왜 나는 운동을 안 좋아한다고 생각하며 자랐을까. 어린 시절의 내 모습까지 떠올리면서 생각해보니 깨달은 게 있다. 초등학교 4학년까지만 해도 나는 꽤 활동적인 아이였다. 신나는 일이 있으면 콩콩 뛰면서 거실을 돌아다녀 엄마가 제발 얌전히 좀 있으라고 할 정도로 말괄량이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장화를 신고 우산을 쓴 뒤 물웅덩이만 보면 그렇게 덤벼들어 우비와 옷을 잔뜩 적셨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차림으로 집에 돌아오면 엄마에게 늘 혼나곤 했다. 하지만 애정이 깃든 잔소리에 불과했기에 잘못을 알기는커녕 비가 올 때마다 밖으로 나가자고 엄마를 졸라댔다. 학교에서 단체 체조 대회나 단체 줄넘기 대회를 하면 꼭 참여했고, 남녀가 뒤섞여 축구 경기를 하는 체육 시간에도(학생 수가 적었고, 체력이 그 나이대는 남자나 여자나 비등비등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거리낌 없이 공을 뺏고 다녔다.


이렇게 지치지도 않고 빨빨거리며 쏘다닐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부모님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다. 아빠는 고등학생 때 육상부로 활동했고, 심심한 걸 못 견뎌하신다. 엄마도 원체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다. 두 분이 함께 있으면 지치는 줄도 모르고 산으로 바다로 놀러 다니는데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내가 활동적이지 않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운동을 싫어하고 움직이기 싫어한다고 ‘믿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어린 시절을 생각하기 시작하니 오래된 기억의 파편이 여러 개 떠올랐고, 개중에선 파편이 아니라 짧은 영상이라고 부를 만한 기억들도 떠올랐다. 영상이 될 만큼 기억의 길이가 길다는 뜻이고, 그 말은 그만큼 내게 강렬한 영향을 주었다는 얘기다.


“쟤 다리 봤냐? 완전 코끼리 다리야.”


초등학교 5학년 때, 소풍으로 수영장에 갔을 때였다. 이차 성징이 시작돼 가슴이 나오고 몸무게가 급격하게 늘어났던 나는 추리닝 바지나 품이 큰 바지만 입고 다녔다. 그래서 수영장에 간다고 했을 때 무척 가기 싫었다. 그렇다고 소풍을 안 가면 결석이니(개근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치마 수영복을 입고 물에만 있었다. 그러던 중 귀에 꽂히듯이 들려온 말이 그것이었다. 혹시라도 내가 듣지 못할까 봐 뒤통수에 대고, 큰소리로. 나를 겨냥한 말이 아닐 수가 없었다. 나는 수영을 하지 못해 혼자 서 있었고, 수영을 잘하는 내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논다며 어디론가 가버린 상황이었다. 주변에 같은 학교 아이들이 없었다. 남자아이들뿐이었다. 같은 반 몇몇 남자아이들이 내 주변에서 잠수를 오래 한다 싶더니,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서 있는 내 다리를 보기 위해서였다.


지금 그때의 사진을 보면 코끼리 다리도 아니었다. 140cm 후반대의 키, 몸무게는 40kg 초반 정도였을 것이다. 코끼리만큼 키나 체구가 크지 않은데 코끼리 다리가 될 수가 있나. 하지만 몸의 변화를 처음 겪는 과정에 놓인지라 나를 향한 주변의 모든 말과 행동 하나하나 예민하게 받아들이던 때였다. 내가 코끼리 다리가 아니라, 체구가 큰 게 아니라, 니들이 작은 거야,라고 쏘아붙이지 못하고 그 자리를 피했다. 친구들과 떨어져 있고, 몸에 콤플렉스를 느끼는 상황에서 그런 소리를 들었는데 혼자서 남자아이들과 맞붙을 수 있을 리가. 자리를 회피해버렸으니 화나고 수치스러운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들의 말은 내 몸에 들러붙어 나와 함께 자랐다. 나는 코끼리 다리구나, 하체 비만이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다리에 살이 몰려있으니 어떻게든 살을 빼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운동해야 살 빠진다는 건 모르고 -운동하기를 포기했으므로, 운동이 다이어트에 도움 되는지 어떤지 몰랐지. 그 이유는 아래에 쓰겠다- 안 먹어야 살 빠진다는 것만 알았으니 어떤 다이어트를 해도 실패했을 수밖에.


아무튼, 소풍을 다녀오고 나서도 남자아이들은 끈질겼다. 내가 반바지나 치마를 입고 등교할 때도 체육 시간에 뛸 때도 수영장에서 받은 눈빛과 말들이 다시금 등장하는 듯했다(물론 그런 시선을 받은 건 나뿐만은 아니었을 테지만). 그래서 눈에 띄지 않는 쪽을 택했다. 아무리 더워도 긴 바지를 입었고, 체육 활동도 시키는 선에서만 해냈다. 못된 말을 한 건 남자아이들인데 왜 피하기만 했냐고 물을 수 있겠다. 당시에 그 남자아이들을 짝사랑하는 여자 친구들이 있었다. 괜히 따진다고 말이라도 붙였다가는 친구도 잃게 되고, 힘의 차이도 나기 시작하는 남자아이들과 싸울 수도 없었다. 나 하나만 불편함을 감수하면 학교생활은 그래도 편해지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체육 시간에 뛰지 않기 시작했고, 점점 활동량이 줄었다. 반에서 운동장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공을 차고 뛰어다니는 남자아이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나는 더욱 가만히 있었다. 움직이지 않으니 편해졌다. 시선이 따라붙는 일이 줄었다. 의자나 벤치에 앉아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게 즐거웠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해야 코끼리 다리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다이어트’라는 단어를 몰랐던 초등학생 때였는데 예뻐지는 법, 날씬해지는 법, 초등학생 화장법 등을 인터넷에 검색하고 찾은 정보를 친구들과 나누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이전에는 읽었던 책이나 드라마 따위의 이야기를 했는데.


갈 곳 잃은 분노와 수치는 결국 나를 갉아먹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다이어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마른 몸매여야 사랑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더욱 깊어진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지만, 활동적인 아이로 자라기를 포기한 계기는 초등학생 때이므로 여기까지만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