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경매

by 시느

2012년 초여름, 고등학교 3학년을 한창 바쁘게 보내고 있을 때, 내게 시작의 감정을 알려준 우리집 영풍아파트 103동 103호는 누군가의 손에 넘어갔다. 부모님의 파산이 낳은 결과였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약 10년 동안 서점을 운영한 것도 기적이라고 말했다. 동인서관의 규모보다 약 6배는 더 큰 대형서점이 바로 맞은편에 있고 그 서점을 비롯한 다른 온라인 서점들과 최소 15%, 최대 30%까지 넘나드는 할인율 경쟁을 벌였다. 참고서와 문제집을 제외한 나머지 책은 잘 팔리지도 않았다. 동네서점에 불과했던 동인서관의 적립금 제도와 할인율은 손님의 눈에 차지 않았다.


매달 말, 만기일이 돌아오는 어음을 갚아야 했지만, 갚을 돈이 마련되지 않아 부모님은 사채시장과 리드코프 같은 이자율이 높은 대출 방법에 손을 댔고, 지인들에게까지 돈을 빌려달라 연락을 돌렸다. 점점 불어만 가는 이자와 돈을 갚지 못하니 부모님의 친구들은 더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매주 돈을 갚으라는 독촉 전화가 쏟아졌다.


부모님은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기 전 파산 신청을 하고, 서점을 접으려고 매물을 등록하려고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인천시에서 개발을 계획한 구역이라 매매를 할 수 없는 상태라는 말뿐이었다. 개발이 완료되고 광장이 생기면 인천시가 그에 따른 보상을 해주겠다고 해 부모님은 기다렸다. 장사가 안돼 서점이 망했다는 이야기보다는 개발되는 바람에 없어졌다는 이야기가 더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도록 서점이 있는 곳은 개발되지 않았다. 기약 없는 기다림 끝에 돌아온 소식은 서점이 포함된 구역이 더는 개발제한구역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부모님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보상이 아닌, 빚이었다. 빚이 불어난 것도 억울한데 이번에는 건물주가 서점이 있는 자리에 스포츠용품점을 입점하는 게 좋겠다며 건물을 비우라고 했다. 나가지 않을 거라면 월세를 올려서 받겠다는 엄포가 내려졌다. 그것이 2011년 말에서 2012년 초의 일이었다.


빚을 갚을 만한 돈도, 월세를 더 내면서까지 서점을 운영할 돈도, 부모님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부모님은 처음 생각했던 대로 파산을 신청했고, 동인서관은 부도를 선고받았다. 그 후 우리 가족은 도망치듯이 동인천을 떠났다. 집에 있던 가구도, 책도, 귀중품까지 돈이 될만한 것들은 경매를 통해 전부 팔고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 데 썼다. 집과 서점을 모두 정리하고 우리 가족은 서울의 작은 원룸형 고시원에 방을 얻어 다섯 식구가 모여 살기 시작했다. 꼭 필요한 것만 챙긴 세간살이와 옷들을 방 한쪽에 내려놓고 아버지, 어머니, 언니, 나, 동생이 테트리스 하듯이 누우면 잠은 잘 수 있던 크기의 방이었다.


고시원에서 약 두 달(2012년 4월 말~6월 중순) 정도 지냈으나, 사실 그때의 기억은 누군가 도려낸 것처럼 단편적인 장면만 기억날 뿐, 고시원이 정확히 서울 어디에 있었는지, 그때 나는 학교를 어떻게 다녔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방의 크기와 어수선하게 놓인 물건들만 기억할 뿐이다. 대학 입시철이기도 해 자취하는 친구 몇몇의 집을 돌아다니며 며칠 동안 신세를 진 기억도 있다. 그때의 내게 집이란 끔찍한 공간일 뿐이었다.


그 후로 우리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평범한’ 삶을 만들어가고자 끊임없이 노력해야만 했다. 아침이면 다같이 둘러앉아 밥을 먹고, 주말에 영화를 보거나 소소하게나마 당일치기 여행도 가는 그런 일상을.


10년 전에는 시작의 설렘을, 10년 뒤에는 시작의 막막함을 알게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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