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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도 원정 오는 암장에서 클라이밍을!

#31

by 시느

- 유럽 암장 후기 (3) KI - Kletterzentrum Innsbruck


퇴사 후 힐링하러 떠나는 여행이고, 예술의 나라 오스트리아를 방문하는 만큼 사실 운동을 열심히 할 계획은 없었다. 도시마다 갈 명소와 봐야 할 공연이 수두룩한데 하루를 할애해 암장을 가는 것도 많은 편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알프스산맥을 보고 싶어 고른 도시 인스브루크에서 훗날 그리움에 목 놓아 부를 '이 암장'을 만나게 될 줄이야.



클라이밍 월드컵이 열릴 정도, 세계 최대 규모의 암장


'클레터젠트룸 인스부르크(Kletterzentrum Innsbruck, 이하 KI)'를 알게 된 건 센터장님의 지시(?) 때문이었다. 인스브루크를 둘러볼 예정이라고 하자마자 눈을 반짝 빛내며 "시느 님, 저 대신 거기 좀 가주세요!"라며 간곡히 청하는 사람의 말을 어찌 가볍게 흘려들을까.


무엇보다 암장에서 월드컵을 진행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고 해 호기심이 생겼다. 실제로 구글 지도로 찾아보니 인근에 있는 공원과 맞먹을 정도로 컸다. 경험 삼아 한 번 다녀오자고 일행과 얘기를 나누며 여행 일정을 짰다. 그리고 우린 암장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후회했다. 인스브루크에 머무는 기간을 짧게 정한 것을. 3박 4일이 아니라 일주일로 늘려야 했다면서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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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장의 실외·내 전경 (리드 클라이밍 구역)


70739_1712840407.jpg 암장의 실내 전경 (볼더링 구역)


KI의 구조는 크게 실외 볼더링/리드 존과 실내 볼더링/리드 존으로 나눌 수 있다. 한 문장으로 써서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하나하나씩 뜯어보면 그 규모에 저절로 혀를 내두르게 된다.


실외 볼더링 존은 총 4섹터로 벽이 이뤄져 있고, 실외 리드 존은 슬랩 벽이 4곳 정도(심지어 양면으로 이뤄진 벽) 있다. 여기에 월드컵 경기가 이뤄지는 대규모 외벽까지. 실내로 들어가면 더욱 어마어마하다. 월간 산 2023년 4월 호 기사에 따르면, "실내 선등용 벽이 3,000㎡, 볼더링 공간은 1,200㎡이다. 속도등반 루트가 4개, 등반벽 높이는 17m다. 루트 개수는 600개, 볼더링 문제는 250개다. 20개 업체에서 제작한 총 5만 개의 홀드가 사용됐다."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탈의실, 따로 마련된 지구력 벽과 스프레이 월, 스트레칭 존까지 있는 것은 물론이다.


70739_1712840814.png 다양한 트레이닝을 할 수 있는 실내 구역



고소 공포증 극복하는 법 = KI에서 운동하기


볼더링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리드를 좋아하지만, 자주 하진 못했다. 높이 올라가는 게 무섭거니와 추락 경험이 없어 힘을 잔뜩 주는 탓에 다음 날이면 몸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을 방문하기 전에도 볼더링보다는 리드 클라이밍을 주력으로 한 암장이라고 들어 무척 걱정했다. 이용료를 내고 제대로 즐기지 못할까 봐. 하지만 아주 크나큰 기우였다. 완등 후 내려올 때면 어느새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리치 이슈가 생기지 않도록 적절한 거리에 있는 홀드들, 밸런스가 조금이라도 미묘한 구석이 있다면 더욱 위로 올라갈 수 없는 문제 구성, 아웃사이드나 힐훅/토훅 등을 익힐 수 있도록 배치한 홀드 위치까지. 이걸 리드를 하면서 느낀다고? 지구력, 힘, 발기술 등 모두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그만큼 퀄리티를 신경 쓰며 문제를 만드는 암장임을 체감했다. (우리가 문제를 잘 고른 걸 수도 있겠지만) 함께 운동한 빌레이 파트너 역시 "한국의 외벽 문제가 다 이랬으면 리드도 열심히 했지"라고 말할 정도로 즐겁게 운동했다.


70739_1712840906.jpg 무서워도 재밌어서 안 오를 수가 없어요.



5.15d급 클라이머의 무브를 본 영광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암장에서 운동한 것도 뜻깊은 추억으로 남을 텐데, 방문할 때마다 유럽권 국가대표단을 본 신기한 경험도 했다. 오스트리아 선수는 물론, 독일 선수단도 목격했다. 특히 프랑스의 '비블리오그라피(Bibliographie)'라는 5.15d급 루트를 초등해 유명한 독일의 알렉스 메고스(Alex Megos), 그를 갈 때마다 마주쳤다. 암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벙벙한 파타고니아 반소매 티, 반바지, 하네스 차림이어서 처음엔 못 알아봤다. 뒤따르는 카메라맨과 그가 등반할 때면 일순 조용해지는 분위기에 그제야 눈치챘다. 무시무시한 각도의 벽에서 때로는 거침없이 올라가고, 때로는 여유롭게 쉬어가는 움직임을 보면서 차원이 다른 무브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떠올렸다.


70739_1712841078.jpg 먼발치에서나마 담아본 알렉스 메고스 선수. 용기 내 말 걸어볼 걸…


운동의 마무리는 역시 맛있는 음식과 함께하는 맥주이지 않겠는가. 가는 곳마다 왜 식당이 있는지 신기했는데 하고 알고 보니 유럽의 암장은 모두 펍 또는 식당을 함께 운영한다고. 그동안의 암장 후기에서 숱하게 운동 후의 즐거움을 말했으니 이번에는 넘어가겠다. 하지만 규모가 큰 곳인 만큼, 음식과 맥주의 라인업 또한 그야말로 화려하다는 것을 기억해 주길! (꼭 알아주고, 방문하고, 먹어주고, 안 다치고 행클하시고…)


70739_1712841137.jpg 문제가 맛있고 음식이 재밌어요.



총평

리드 존을 경험하려면 빌레이어를 꼭 동반해야 하니 참고할 것.

볼더링보다 리드 클라이밍을 더 좋아하는 클라이머라면 강력 추천!

알프스산맥이 어디서든 보여 암장을 오갈 때, 운동할 때 모두 기분이 좋다, 행복하다!


Kletterzentrum Innsbruck 암장 정보

주소 | Matthias-Schmid-Straße 12c, 6020 Innsbruck, Austria

운영 시간 | 오전 9시 ~ 오후 10시 (연중무휴)

가격 | 일일 이용료 16유로, 리드 풀세트(자일, 하네스, 하강기&카라비너 등) 10유로

홈페이지 | https://www.kletterzentrum-innsbruck.at/

인스타그램 | @kletterzentruminnsbr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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