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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느 May 12. 2024

국가대표도 원정 오는 암장에서 클라이밍을!

#31

- 유럽 암장 후기 (3) KI - Kletterzentrum Innsbruck


퇴사 후 힐링하러 떠나는 여행이고, 예술의 나라 오스트리아를 방문하는 만큼 사실 운동을 열심히 할 계획은 없었다. 도시마다 갈 명소와 봐야 할 공연이 수두룩한데 하루를 할애해 암장을 가는 것도 많은 편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알프스산맥을 보고 싶어 고른 도시 인스브루크에서 훗날 그리움에 목 놓아 부를 '이 암장'을 만나게 될 줄이야.



클라이밍 월드컵이 열릴 정도, 세계 최대 규모의 암장


'클레터젠트룸 인스부르크(Kletterzentrum Innsbruck, 이하 KI)'를 알게 된 건 센터장님의 지시(?) 때문이었다. 인스브루크를 둘러볼 예정이라고 하자마자 눈을 반짝 빛내며 "시느 님, 저 대신 거기 좀 가주세요!"라며 간곡히 청하는 사람의 말을 어찌 가볍게 흘려들을까.


무엇보다 암장에서 월드컵을 진행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고 해 호기심이 생겼다. 실제로 구글 지도로 찾아보니 인근에 있는 공원과 맞먹을 정도로 컸다. 경험 삼아 한 번 다녀오자고 일행과 얘기를 나누며 여행 일정을 짰다. 그리고 우린 암장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후회했다. 인스브루크에 머무는 기간을 짧게 정한 것을. 3박 4일이 아니라 일주일로 늘려야 했다면서 안으로 들어섰다.


암장의 실외·내 전경 (리드 클라이밍 구역)


암장의 실내 전경 (볼더링 구역)


KI의 구조는 크게 실외 볼더링/리드 존과 실내 볼더링/리드 존으로 나눌 수 있다. 한 문장으로 써서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하나하나씩 뜯어보면 그 규모에 저절로 혀를 내두르게 된다.


실외 볼더링 존은 총 4섹터로 벽이 이뤄져 있고, 실외 리드 존은 슬랩 벽이 4곳 정도(심지어 양면으로 이뤄진 벽) 있다. 여기에 월드컵 경기가 이뤄지는 대규모 외벽까지. 실내로 들어가면 더욱 어마어마하다. 월간 산 2023년 4월 호 기사에 따르면, "실내 선등용 벽이 3,000㎡, 볼더링 공간은 1,200㎡이다. 속도등반 루트가 4개, 등반벽 높이는 17m다. 루트 개수는 600개, 볼더링 문제는 250개다. 20개 업체에서 제작한 총 5만 개의 홀드가 사용됐다."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탈의실, 따로 마련된 지구력 벽과 스프레이 월, 스트레칭 존까지 있는 것은 물론이다.


다양한 트레이닝을 할 수 있는 실내 구역



고소 공포증 극복하는 법 = KI에서 운동하기


볼더링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리드를 좋아하지만, 자주 하진 못했다. 높이 올라가는 게 무섭거니와 추락 경험이 없어 힘을 잔뜩 주는 탓에 다음 날이면 몸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을 방문하기 전에도 볼더링보다는 리드 클라이밍을 주력으로 한 암장이라고 들어 무척 걱정했다. 이용료를 내고 제대로 즐기지 못할까 봐. 하지만 아주 크나큰 기우였다. 완등 후 내려올 때면 어느새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리치 이슈가 생기지 않도록 적절한 거리에 있는 홀드들, 밸런스가 조금이라도 미묘한 구석이 있다면 더욱 위로 올라갈 수 없는 문제 구성, 아웃사이드나 힐훅/토훅 등을 익힐 수 있도록 배치한 홀드 위치까지. 이걸 리드를 하면서 느낀다고? 지구력, 힘, 발기술 등 모두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그만큼 퀄리티를 신경 쓰며 문제를 만드는 암장임을 체감했다. (우리가 문제를 잘 고른 걸 수도 있겠지만) 함께 운동한 빌레이 파트너 역시 "한국의 외벽 문제가 다 이랬으면 리드도 열심히 했지"라고 말할 정도로 즐겁게 운동했다.


무서워도 재밌어서 안 오를 수가 없어요.



5.15d급 클라이머의 무브를 본 영광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암장에서 운동한 것도 뜻깊은 추억으로 남을 텐데, 방문할 때마다 유럽권 국가대표단을 본 신기한 경험도 했다. 오스트리아 선수는 물론, 독일 선수단도 목격했다. 특히 프랑스의 '비블리오그라피(Bibliographie)'라는 5.15d급 루트를 초등해 유명한 독일의 알렉스 메고스(Alex Megos), 그를 갈 때마다 마주쳤다. 암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벙벙한 파타고니아 반소매 티, 반바지, 하네스 차림이어서 처음엔 못 알아봤다. 뒤따르는 카메라맨과 그가 등반할 때면 일순 조용해지는 분위기에 그제야 눈치챘다. 무시무시한 각도의 벽에서 때로는 거침없이 올라가고, 때로는 여유롭게 쉬어가는 움직임을 보면서 차원이 다른 무브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떠올렸다.


먼발치에서나마 담아본 알렉스 메고스 선수. 용기 내 말 걸어볼 걸…


운동의 마무리는 역시 맛있는 음식과 함께하는 맥주이지 않겠는가. 가는 곳마다 왜 식당이 있는지 신기했는데 하고 알고 보니 유럽의 암장은 모두 펍 또는 식당을 함께 운영한다고. 그동안의 암장 후기에서 숱하게 운동 후의 즐거움을 말했으니 이번에는 넘어가겠다. 하지만 규모가 큰 곳인 만큼, 음식과 맥주의 라인업 또한 그야말로 화려하다는 것을 기억해 주길! (꼭 알아주고, 방문하고, 먹어주고, 안 다치고 행클하시고…)


문제가 맛있고 음식이 재밌어요.



총평

리드 존을 경험하려면 빌레이어를 꼭 동반해야 하니 참고할 것.

볼더링보다 리드 클라이밍을 더 좋아하는 클라이머라면 강력 추천!

알프스산맥이 어디서든 보여 암장을 오갈 때, 운동할 때 모두 기분이 좋다, 행복하다!


Kletterzentrum Innsbruck 암장 정보

주소 | Matthias-Schmid-Straße 12c, 6020 Innsbruck, Austria

운영 시간 | 오전 9시 ~ 오후 10시 (연중무휴)

가격 | 일일 이용료 16유로, 리드 풀세트(자일, 하네스, 하강기&카라비너 등) 10유로

홈페이지 | https://www.kletterzentrum-innsbruck.at/

인스타그램 | @kletterzentruminnsbr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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