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삶이란 건.
사는 건, 의미가 없다.
서른 해 동안, 만 번쯤의 일몰을 보고 내린 결론이다.
나는 노을을 좋아했다. 하루가 천천히 죽어가는 그 시간, 오렌지빛으로 하늘을 물들이는 그 찰나의 풍경은 너무도 아름다워서—어떤 날은 하루 전체가 그 노을의 색으로 기억되기도 했다.
어쩌면 내 인생도, 저 노을처럼 짧은 순간만큼은 아름다운 빛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랬었다. 그땐 인생에 뭔가 의미가 있을 거라 믿었으니까.
하지만 그간 내가 내린 결론은, ‘전혀’다.
내 삶에 대해 말해보자, 6평 남짓한 원룸에 살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며 인생의 절반을 보낸다. 그렇게 벌어들인 돈은 대부분이 집세로 나가고, 식비와 공과금 그리고 정부에서 가져가는 이런저런 세금들을 떼고 나면 남는 게 ‘전혀’ 없다.
나의 삶은 그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전부라는 걸 깨닫고 나선 더 이상 노을을 보지 않게 되었다.
이런 내 삶을 더욱 외롭게 만드는 건, 이런 생각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다.
2045년, 서울의 인구는 2,000만 명을 넘었지만 그 많은 사람들 사이의 인간관계는 어느 때보다도 얕아졌다.
이제 대부분의 새로운 만남은 온라인에서만 이뤄진다. 예전엔 길에서 만난 모르는 사람과도 말을 섞고,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게 자연스러웠다고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사람들은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스마트폰으로 눈을 가린 채 걷는다. 눈앞에 있는 사람보다 화면 속 사람의 말에 더 집중한다.
요즘 시대에 혹여 길 가다 누군가에게 말을 걸기라도 하면, 벌레라도 본 듯한 시선을 마주치게 된다.
대중교통 안,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어도 그들은 아무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건 참 고독한 느낌이다.
그렇다면 ‘친구’라는 작자들은 어떤가. 만나면 하는 이야기는 늘 시시콜콜한 가벼운 이야기들 뿐이다. 어제 본 스트리밍 이야기, 먹었던 음식 이야기, 온라인에서 만난 여자 이야기…
가끔 인생이란 뭘까?, 행복은 어디 있을까? 하고 운을 떼면 친구들은 어색하게 웃고는 얼른 다른 주제로 화제를 돌린다. 마치 건드려선 안 될 무언가를 들춰낸 것처럼, 그들이 정해놓은 대화의 룰을 어긴 것처럼,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다.
그런 대화의 가벼움은 오히려 나를 더 지치게 만들었고, 결국 나를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고립시켜 버렸다.
내 직업은 일러스트레이터다. 정확히 말하면 스케치만 하는 사람이다. 그림을 잘 그리냐고?
아니 그것도 ‘전혀’다.
AI가 인간의 스킬을 능가하면서 스케치만 해놓으면 완벽한 그림을 구현해 주는 시대가 왔다. 어떤 이들은 이제 스케치조차 그리지 않고 글로써 그림을 만든다고 한다.
웃기지 않나? 그림을 그리지 않는 일러스트레이터라니, 참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대충 구도만 잡아두고 AI가 좋은 그림을 뽑아주길 바라며 AI렌더링 작업을 수십 번씩 반복한다. 마치 빠칭코 기계 앞에서 행운을 기대하며 레버를 계속 돌리는 사람과 다를 게 없다.
어쩌면 내 직업이야말로, 나의 무의미한 인생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어제는 새벽에 잠에서 깨어 한참을 울었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서늘한 무언가가 올라와 목을 꽉 조르는 듯했다. 그렇게 베개에 파묻혀 한참을 울고 나니 뭔가 개운해진 느낌을 받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눈물을 슥슥 훔치곤 조그마한 창문을 열었다.
도시의 찬바람은 상쾌했고 까맣게 색칠되어 있는 하늘 위엔 붉은빛을 내는 무언가가 떠있었다
한참을 울어서 눈이 이상해졌나란 생각에 사진을 찍어 AI에게 물어보았다. AI는 사진을 확대해 다시 업스케일링을 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화성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해주자면 저기 화성에도 사람이 산다. 저기서도 오늘 같은 날에는 지구를 볼 수 있겠지…
어쩌면 저 먼 붉은 행성 어딘가 있는 사람과 서로를 마주 보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자 무언가 애틋한 감정이 느껴졌다.
책상 위에 있던 스케치북과 연필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림을 그렸다. 붉은색으로 물든 저 행성, 그 위에서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림이었다. 스케치를 마치고, 습관처럼 AI로 완성을 하려다 멈칫했다.
어설프게 그린 이 그림이 마치 나 같았다. 의미 없이, 투박하고, 어딘가 엉성한.
그래서 그냥, 그대로 사진을 찍어 아무도 보지 않는 내 SNS에 올렸다. 마치 이런 어설프고 불완전한 이런 내 모습도 사랑받고 싶다는 듯이. 공허한 하늘을 향해 조용히 외친 셈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누군가가 내 조용한 외침에 응답해 왔다.
[모에카 : 멋진 그림이에요, 저도 어제 지구를 보고 있었어요.]
댓글을 보니 평소에는 듣지 못했던 생소한 문장이 적혀있었다. 지구를 보고 있었다고?
나는 모에카란 이름의 SNS의 계정에 들어가 보았다. 몇 개 없는 게시물에는 우주복 사진과 우주장비로 추측되는 기계들, 그리곤 창문밖으로 펼쳐진 붉은색 배경들의 사진들이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모에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시눈이라고 합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호기심에 게시물을 몇 개 봤는데 혹시 화성에 살고 계신가요?]
30분쯤 지나 답장이 도착했다.
[와~ 지구인이랑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처음이에요! 네, 저는 화성에 살고 있어요. (웃음) 어제는 여기서도 지구가 아주 작게 보였답니다.]
지구인이라니… 곱씹어볼수록 생소한 단어였다. 동시에 그녀에 대한 흥미는 더욱 샘솟았다.
[화성인과 이야기하는 건 저도 처음이에요. 거기에서의 삶은… 어떤가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창밖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저기 까만 우주, 아주 멀리에 떠있는 행성의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또다시 30분쯤 지나 답장이 왔다.
[음… 어떻다고 해야 할까요? 화성에서의 삶은, 많이 규칙적이에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정해진 음식을 먹고, 정해진 작업을 해요. 아직도 개척해야 하는 부분이 많아서 다들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죠! 지구의 삶은 어때요…?]
그녀의 질문에 한참을 망설였다. 나는 지구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지구의 삶은—선택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우린 그걸 자유라고 부르며 대단한 것 마냥 포장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차라리 언제나 두 가지 중 하나만 고르며 살았더라면, 나는 단순하지만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구의 삶은 내게, 수십, 수백 개의 선택지를 줄줄이 늘어놓는다. 식사 한 끼, 커피 한 잔, 직업, 인간관계, 삶의 방향까지. 뭐든 선택하라고 한다.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사람은 더 현명해질까?
아니면, 더 우유부단해질까?
나는 늘 후자였다.
지구의 삶이란 건 그러했다. 수많은 선택지를 읽어보다가, 결국 미루게 되는 것.
[지구는… 자유롭죠. 사실 너무 자유로워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날이 많아요. 뭐든 할 수 있지만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되기도 해요.]
메시지를 보낸 후. 혼자 너무 진지하게 말한 건 아닐까 싶어 민망해졌다. 그래서 분위기를 전환할 겸 낮에 작업하면서 시켜 먹었던 파르페 사진을 첨부해 보냈다.
[하지만 맛있는 것들이 많아요. 하하.]
30분 후, 다시 메시지가 왔다.
[그렇군요, 시눈의 그 말… 어딘가 씁쓸하게 느껴졌어요. 왠지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은… 저는 지구의 삶은 항상 멋진 일들만 가득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녀의 말에 따듯함이 느껴졌다. 수많은 지구 사람들 속에서도 느끼지 못한 따듯함을, 저 먼 곳에서 온 짧은 텍스트 한 줄에서 받는다는 사실이 참으로 묘했다.
곧이어 내 파르페 사진에 코멘트를 단 메시지가 도착했다.
[와아 이게 뭐예요? 엄청 예뻐요! 정말 먹는 거 맞죠? 가끔 지구에서 물자가 오면 아주 조금의 지구 음식이 오는데… 저는 그 음식들을 정말 좋아해요. 저번엔 ‘빵’이란 걸 먹어봤는데… 진짜 감동했어요.]
그녀는 파르페를 처음 보는듯했다.
[이건 파르페라고 해요. 달콤하고 차갑고, 입안이 복잡해지는 맛이랄까요? 과자, 크림, 과일, 시럽 같은 게 층층이 쌓여 있어서, 어디를 떠먹느냐에 따라 매번 맛이 달라요. 마치 지구의 삶처럼. 선택지가 다양하죠. 하하.]
다시 30분 후, 모에카에게서 이미지가 도착했다. 블록처럼 생긴 음식 사진이었다. 곧이어 메시지가 따라왔다.
[이건 제가 점심에 먹은 영양블록이에요. 화성에서는 보통 이런 블록 형태의 음식으로 끼니를 때운답니다. 맛도 없고 못생겼지만 건강에는 좋아요!]
[저는 여기에서 태어났어요. 부모님은 지구에서 화성으로 오는 선택을 했지만, 저는 선택권이 없었죠. 저는 지구의 사진과 문화들을 보는 걸 좋아해요. 어쩌면 평생 가보지 못하겠지만요.]
모에카의 말에서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졌다. 매일 같은 블록을 먹고, 같은 일을 반복하는 삶. 나와는 다르지만 어딘가 비슷한 그 고립 속에서,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다.
[모에카의 그 말도 어딘가 씁쓸함이 느껴지네요. 영양블록이라 흥미로워요. 사실 화성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세히 알진 못하거든요.]
우린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갔다. 다만, 메시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기까지는 항상 30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처음엔 단순 답장이 느린 줄 알았지만, 모에카는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지구랑 화성은 둘 다 태양 주위를 돌고 있어요. 그런데 공전 궤도도 다르고, 속도도 달라서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진 않아요.]
때로는 두 행성이 가까워지고, 때로는 멀어진다. 가장 가까워졌을 땐 단 한쪽 방향으로 4분, 왕복 8분이면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가장 멀어질 땐 한쪽 방향만 22분 이상, 왕복으로는 거의 45분이 넘게 걸리기도 한단다. 지금 우리가 주고받고 있는 메시지는 약 15분 정도 지연된 상태에서 오간다. 내가 메시지를 보내면, 모에카가 그걸 15분 후에 받고, 다시 답장을 보내면 내가 그걸 받기까지 또 15분이 걸리는 구조다.
그래서 결국 하나의 대화가 이어지려면 최소 30분은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였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일까, 난 이 느린 대화가 왠지 더 흥미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화성에서의 삶은 지구에서의 삶과는 전혀 다른 결로 짜여 있었다. 가장 먼저 놀란 건 노동 시간이었다. 하루 10시간, 주 6일. 그것이 화성 정착민들의 표준 스케줄이었다. 실로 엄청난 노동강도였다.
현시점의 서울은 특수한 직업들을 제외하곤 주 4일제, 하루 8시간을 노동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프리랜서인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부끄럽지만 사실 나는 그보다 더 적게 일하고 있다.
모에카는 시설, 장비 유지보수 엔지니어라고 했다. 그녀의 말로는, 부모님이 처음 화성에 올 때도 같은 일을 했다고 했다. 자연스레 자식에게도 그 역할이 이어진 것이다.
[하하. 직업까지도 제가 선택할 수 없었죠. 하지만 이 일이 싫진 않아요. 정말 중요한 일이니까! 모두가 안전하려면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죠.]
선택지가 너무 많은 나, 선택지가 없었던 그녀. 지구와 화성의 삶은 그 거리만큼이나 다른 것이었다.
대화를 통해 그녀의 삶을 조금씩 알아갈수록, 나는 오히려 내 삶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만 먹으면 밖으로 나가 거리를 걷고, 뛰고,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스마트폰 몇 번만 두드리면, 원하는 음식을 집 앞으로 배달시킬 수도 있다.
이건,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던 내 일상이었다.
하지만 모에카는 그러지 못했다. 그렇기에 아주 짧은 휴식에도, 단순한 음식 한 조각에도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모에카는 지구의 일상 하나하나를 동화 속 장면처럼 바라봤다. 특히 음식에 관해서는 더없이 궁금해했다. 내가 올린 파르페 사진을 보고는 몇 번이고 확대해서 들여다보며
[맨 꼭대기에 있는 건 뭐예요? 저 위에 노란 건 치즈인가요? 저 아래 갈색은 시럽이에요?]
하고 연달아 메시지를 보냈다. 그렇게 해맑고 진지하게 묻는 모습엔 서울 사람에게선 느낄 수 없는 순수함이 있었다.
그렇게 우린 30분 간격의 답장처럼, 천천히. 서로에 대해 알아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