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 사는 모에카에게-. EP_03

모에카가 궁금해.

by 시눈



내 하루는 어느새 모에카와의 대화 시간을 기다리는 일로 채워지고 있었다. 업무를 하면서도 AI 렌더링이 돌아가는 동안에는 자연스레 화성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게 됐다.


그녀의 삶, 그녀가 사는 곳의 환경과 문화가 어떤지 더욱 깊이 알고 싶었다.


화성 개척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이었다. 하지만 인류가 왜 화성을 개척하게 되었는지 알려면 그보다 훨씬 전의 이야기부터 먼저 해야 한다.


1969년 인류가 처음 달에 발을 디뎠던 순간이 모든 서사의 시작이었다.


냉전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그 시기,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하면서 전 세계는 경쟁보다 협력의 가능성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인류에게 우주의 행성들을 개척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여파는 예상보다도 컸다. 국가 간의 군사적 긴장보다 우주 탐사와 기술 협력이 더 중요한 의제가 되었고,

그로부터 약 18년 후, 1987년. 드디어 세계정부(United Earth Governance)가 공식 출범하게 된다.


각국은 경제, 문화, 교육 등의 내정에서는 자율성을 유지했지만, 환경 문제, 우주 탐사, 글로벌 자원 관리 등 인류 전체에 영향을 주는 분야에 대해서는 세계정부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게 되었다.


세계정부는 그 위에서 조정과 협력을 이끌며, 인류의 미래를 위한 ‘상위 프로토콜’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엔 세계정부의 주도아래, 지구촌 공용어인 Glon(Global Language Optimized for Networking)의 개발도 함께 이루어졌다. 언어의 장벽 없이 협력하고 이해할 수 있는 ‘공통 언어’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 Glon(글론)은 AI가 인간의 언어를 분석해, 가장 학습 효율이 높고 번역에 용이한 구조로 재설계한 인공언어였다.


초기엔 모국어와 함께 쓰이는 보조언어였지만, 세계정부의 주도아래 전 세계의 국가들에서는 Glon을 필수교육과정에 넣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200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모국어보다 Glon을 구사하는 것을 더욱 편해하게 되었다.


당연히 거부감도 있었다. 특히 나이 든 세대들은 Glon을 강제 학습하는 것에 대해 큰 불만을 표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Glon을 잘하는 세대가 사회의 주류가 되자 자연스레 받아들여졌다.


2045년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은 Glon을 기본 언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말투나 억양에서 모국어의 습관이 묻어 나오는 국가별 억양형 Glon이 존재하기도 한다. 마치 사투리처럼.


예컨대 일본인들의 Glon은 본심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단 완곡하고 우회적인 표현을 즐겨 쓴다. 덕분에 친절하고 배려있게 들리지만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긴 쉽지 않다.


라틴계 사람들은 Glon을 사용할 때도 감정 표현이 풍부하고 강렬하다.

프랑스계 사람들은 대화를 할 때도 늘 시적인 표현이나 비유를 즐긴다.

독일계 사람들은 Glon을 쓸 때도 매우 간결하고 정확한 표현을 선호한다.


이처럼 Glon이라는 하나의 공용어 위에서도 각기 다른 문화권의 언어 습관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언어는 통합되었지만, 각 나라의 고유한 표현 방식은 여전히 답습되며 사람들의 말투와 사고방식에 스며들어 있었다.


Glon의 등장은 전 세계에 지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언어 장벽이 사라지자,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끈끈하게 연결되었고, 서로를 이해하며 협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에너지는 자연스럽게, 더 크고 거대한 목표를 향하게 된다.


다시 화성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화성 개척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건, 세계정부 체계가 안정된 2000년대 이후의 일이었다.


물론 실제로 화성 환경은 지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척박했다. 행성 자기장이 거의 없어 태양풍에 대기가 벗겨지고, 표면 온도도 극도로 낮았다. 하지만 인류는 이미 달 탐사와 기지 건설을 통해 축적된 기술과 경험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고, 화성을 개척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로켓과 무인 탐사선을 보내 화성의 표면 환경을 조사하는 작업부터 시작됐다. 극지방에 존재하는 드라이아이스에서 CO₂를 추출해 화성의 얇은 대기를 두껍게 만드는 연구, 지하의 얼음층에서 물을 얻어 산소와 연료를 생산하는 ISRU 기술, 그리고 얇은 대기와 극심한 방사선을 견딜 수 있는 기지 구조물의 설계까지 다양한 연구와 실험이 이루어졌다.


당시엔 “화성 전체를 테라포밍 하자”는 거대한 목표부터 “소규모 거주지를 구축하고 연구 거점으로 활용하자”는 실용적인 접근까지 다양한 의견이 충돌했다.


하지만 결국 화성 전체를 지구와 유사한 환경으로 만드는 건 단시간 내에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행성 전체를 덮는 자기장을 생성하거나 온실가스를 대규모로 조성해 기온을 끌어올리는 방식은 개척자들을 화성에 보내 화성 내에서 천천히 진행하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었다. 그렇게 돔 형태의 국소적인 지역만 안전지대로 만들어 사람들의 거주 공간을 마련하자는 계획이 채택되었다.


인류는 인공위성에 설치한 거대한 거울을 이용해 일부 지역에 태양빛을 집중시키고, 외부의 극한 환경으로부터 내부를 보호할 수 있는 다층 구조의 돔이 설계됐다. 이 돔은 태양광은 투과시키지만, 우주 방사선은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여전히 태양풍으로 인해 주변의 얇은 대기가 벗겨질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바로 ‘국소적 자기장(Localized Magnetic Field)’이었다. 행성 전체에 거대한 자기장을 만드는 대신, 돔이나 주변 지역에만 특수 설계된 전자코일을 설치해 작은 자기장을 생성했다. 이를 통해 돔 주변의 제한된 공간을 보호하며 대기가 빠르게 손실되는 것을 막았다.


음… 뭐 그렇다고 한다. 사실 문과였던 나로선 이 기술적 설명들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화성에 사람이 간지도 어언 30년이 넘었고 추가 이주민들을 포함해 5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 지금. 사실 지구인들은 화성에 이전만큼 큰 관심이 없다.


초기엔 인류의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화성을 바라봤지만, 테라포밍 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더디고 어려운 작업이었다. 행성 전체를 인간이 살 수 있게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과 비용, 노력은 막대했고, 눈에 띄는 성과도 제한적이었다. 결국 세계정부를 중심으로 한 지구 사람들의 관심은 다시 지구로 돌아왔다.


대기 오염과 기후 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를 복원하고, 환경을 돌려놓는 작업이 더 현실적이고 효율적이라는 결론이 지지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화성에 있는 이들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내핵을 활성화시켜 자기장을 다시 만든다나 뭐라나…


여튼 내가 내린 결론은, 화성 극히 일부에 돔을 짓고 인간이 살아간다. 그들은 화성을 지구처럼 살기 좋게 만드려고 이것저것 한다. 그리고 그중엔 모에카도 있다! 이거다.




어느새 나와 모에카는 한 달이 넘게 연락을 이어가게 되었다. 이제 연락시간은 하루를 돌아, 다시 저녁 오후 7시쯤 연락이 닿게 되었다. 연락지연도 조금 줄어들었다. 지구와 화성이 조금 더 가까워진 것이다. 그래봤자 편도로 2분 정도 줄어, 왕복 4분 정도 짧아진 셈이지만. 그 시간은 메시지를 한번 더 주고받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우와 여기가 제주도라는 곳이에요?]


나는 아주 어렸을 적 가족과 함께 제주도에서 찍은 사진들을 모에카에게 보내주었다. 지금은 기억도 흐릿한 사진들이었지만, 그녀에게는 푸르고 신비한 자연 풍경 하나하나가 놀라움의 대상이었다.


[제주도는 한라산의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화산섬이에요. 이 사진에 있는 곳이 바로 분화구인데, 한라산 정상이에요. 하하.]


[에~? 그럼 화산이 다시 터지면 어떡해요? 위험하지 않아요?]


모에카의 질문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화산이 다시 터지면 어떡하냐고? 사실 생각조차 해본 적 없었다. 나는 서울에 살면서 그런 문제들에 대해 깊이 고민한 적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내 주변 사람들 역시 그런 질문을 진지하게 던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글쎄요… 정부에서 어떻게든 알아서 하겠죠?]


[그렇군요. 지구는 워낙 이런저런 장비들과 인적자원들도 많고 세분화되어 있으니까요. 화성에 사는 저희는 항상 척박한 환경에 휘둘리며 살다 보니까, 이런 고민들이 생기면 다 같이 공유하고, 모두 진지해져선 함께 해결하려 노력하죠! (웃음)]


아, 그렇구나.


화성에 사는 사람들은 소수이고, 모두가 개척자이기에 개개인이 정말 소중한 존재였다. 서로가 각자 맡은 일이 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그렇기에 서로를 더욱 소중하게 대한다고 했다. 모에카의 따듯한 성품은 거기에 기반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여기 서울에서 과연 필요한 사람일까? 그런 생각을 했다. 나 하나 없어도 서울은 아마 잘 돌아갈 것이다. 여기선 누구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서울에 사는 나는 어떤 쓸모인가?


서울의 사람들은 책임 없는 관계를 선호하고 책임져야 하는 약속들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기에 무엇하나 소중하게 여기지 않게 되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이야 널리고 널렸으니까.


어쩌면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을 그저 스쳐 지나가는 관계로만 바라봤기에, 나도 타인들도 서로를 진정으로 필요로 하지 않게 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괜시리 씁쓸함이 느껴졌다.




모에카와의 대화에 빠져들수록 이상한 위화감이 들었다. 어느샌가 그녀는 내 삶에 깊숙히 들어와 있었다. 그녀 때문에 39분씩 지연되는 생활패턴을 살게 되고, 요즘 들어 그녀의 생각을 하게 되는 시간들이 부쩍 많아졌다.

우린 서로의 얼굴도 알지 못하는데…


[모에카, 부탁이 있어요. 문득 모에카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졌어요, 저 모에카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으니까, 그러니까… 모에카의 사진 보내 줄 수 있어요?]


쓰다 보니 혓바닥이 길어졌다. 그냥 ‘모에카 사진 좀 보내줄 수 있어요?’라고 담백하게 보내는 게 나으려나 아님 보내지 말까? 고민하던 도중 나도 모르게 전송버튼을 눌러버렸다. 허둥지둥하던 사이. 이미 그 메시지는 내 손을 빠져나가 저기 까만 우주밖으로 날아가버렸다.


'저질러버렸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 24분 정도 되는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안절부절못하며 다리를 덜덜 떨고 있다가 넘치는 긴장감을 주체할 수가 없어. 밖에 나가 숨이 찰 때까지 뛰고 돌아왔다. 흠뻑 젖은 땀을 대충 닦곤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해 보았다.


[자! 받아요 (웃음) 그럼 시눈도! (두 손을 모은 이모지)]


그녀의 사진이 내 스마트폰으로 천천히 로딩되기 시작했다. 화성에서 보내는 이미지는 데이터 전송속도 탓에 로딩되는 시간이 꽤나 오래 걸렸다. 이미지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선명해져 가는 모습은 마치 내가 AI로 그림을 렌더링 할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하지만 그와는 비교도 안 되는 설렘이었다. 내가 속물이라고 생각하나? 어쩔 수 없다, 나도 평범한 남자들과 다를 바 없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두 손을 꼭 모으고 기도까지 했다.


점점 이미지가 선명해졌다. 사진 속에는 실내복으로 추정되는 편안한 옷을 입은 모에카가 활짝 웃고 있었다.


모에카는…

예뻤다ㅡ!


“으아아아아ㅡ”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맑고 동그란 눈에 구김 없이 환하게 웃는 미소, 내가 상상해 오던 그런 순수한 이미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어서 전송된 몇 장의 사진 중엔 기모노를 입고 있는 사진도 있었다. 그 사진은 참 묘했다. 화려한 패턴과 섬세한 자수가 새겨진 전통적인 옷은 기계와 금속으로 이루어진 실내 풍경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끝없는 척박한 붉은 모래만이 펼쳐져 있었지만, 사진 속 모에카의 웃음만큼은 생명력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그 사진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답장을 보냈다.


[모에카, 기모노를 입고 있네요? 4번째 사진 그 옷 지구에선 기모노라고 불러요.]


그리곤 나도 열심히 내 사진을 골라댔다. 내 사진의 최근앨범에는 모에카에게 보낸 음식사진만이 가득했다. 내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내려면 꽤나 과거로 올라가야만 했다. 어렵게 골라낸 사진을 모에카에게 보낸 뒤, 오늘따라 유독 길게 느껴지는 지연 시간에 다시 마음이 조급해졌다. 또 한 번 밖에 나가 뛰고 올까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이, 화면에 그녀의 답장이 나타났다.


[시눈, 귀여워(웃음). 기모노, 저도 알고 있어요. 저희 부모님은 일본 출신이라고 했어요. 그 기모노는 엄마가 가장 아끼는 옷이에요. 어릴 땐 얼른 자라서 꼭 저 옷을 입어보고 싶었죠. 저도 만약 지구에 살았다면 일본인이라고 불렸겠죠?]


‘귀여워’라는 세 글자에, 나는 그대로 넉아웃 당하고 말았다. 잠시 책상에 머리를 박고 미친놈처럼 ‘큭큭’ 웃어댔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머리가 핑핑 돌았다. 텍스트 몇 글자에 이렇게 온몸이 뜨거워질 수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이날 나는 확신했다.


나는 모에카를 좋아하게 된 것이라고.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