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 사는 모에카에게-. EP_04

서로의 결핍을 통해.

by 시눈



사진을 교환한 이후로, 나와 모에카는 더욱 가까워졌다.


모에카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자연스레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곤 했다.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어떤 제스처를 했을지, 어떤 말투로 말했을지ㅡ 머릿속으로 그녀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도 마치 원래부터 알던 사이처럼 느껴지곤 했다.


대화의 주제도 음식이나 문화, 다른 행성의 삶 같은 것에서 벗어나 조금 더 개인적인 이야기로 확장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 대해 천천히, 더욱 깊이 배워나갔다.


가끔은 어릴 적 이야기를 꺼내놓기도 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장난감보다는 공구를 가지고 놀곤 했어요. 어차피 엔지니어가 될 운명이었으니까. 그때부터 손에 익어야 된다라는 부모님의 철학이었죠. 친구들도 선택할 수 없었죠. 어릴 때부터 비슷한 일을 하게 될 친구들이랑만 수업을 들었거든요.]


[제가 여덟 살쯤이었을 거예요. 그날따라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조용한 곳에 숨고 싶었어요.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곳으로 가는 생활이 답답했어요. 어른들이 말하던 ‘너는 중요한 사람이 될 거야’라는 말도 어린 저에겐 너무 버거운 말이었어요.]


[그래서, 몰래 숨었어요. 아무 말도 없이, 마치 세상에서 사라진 것처럼.]


[엄마는 기지 전체를 뛰어다니며 절 찾았대요. '모에~ 모에~!' 하고요. 나중엔 모든 어른들이 '모에~ 모에~!'를 외치며 돌아다녔어요. 저는 작고 어두운 에어덕트 안에 조용히 숨어, 그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웅크리고 있었어요. 온 기지에 제 이름이 메아리쳤죠. 그날, 아마 화성의 모든 사람들이 제 이름을 알게 되었을 거예요.(웃음)]


[결국 사람들에게 발견돼 엄마한테 엄청 혼났지만… 이상하게도 전 그때가 아직도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잠깐이지만, 그 시간이 온전히 제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나는 메시지를 읽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화성에서의 삶이란,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한 사람이 잠깐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모두가 들썩이고, 기지가 멈춘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로 살아간다는 건, 분명 따뜻한 일이겠지만 그만큼 부담스러운 일 일지도 모르겠다.


반면 지구에서의 삶은 그런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떠날 수 있고, 원한다면 조용히 사라질 수도 있다. 누구도 묻지 않고, 아무도 쫓아오지 않는다. 자유롭지만, 어딘가 쓸쓸하다.


너무 소중한 존재가 되면 자유를 잃고, 너무 자유로운 존재가 되면 누구에게도 소중해지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된다는 건, 결국 그 사람을 실망시킬 가능성까지 품는 일이다. 누군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선, 그만큼의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나도 어린 시절, 숨은 적이 있다.


[그렇군요. 저도 비슷한 기억이 있었어요. 저도 딱 그 나이 때에 가출을 했었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소심하고 말이 없었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받고 싶었어요. 제 가출사유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받고 싶어서... 였죠.]


[부모님이 저를 찾을만한 저녁식사 시간쯤에 지하주차장으로 몰래 숨었어요. 정말 가출을 하고 싶었다기보단 누군가 저를 찾는 그 기분을 느끼고 싶었을 뿐이니까, 검은색 승용차 뒤에 숨어 부모님이 저를 찾기를 기다렸어요.]


[한 시간, 두 시간이 흘렀죠. 어린 저한테는 엄청나게 긴 시간으로 느껴졌죠. 그런데 아무도 저를 찾지 않았어요. 분명히 저녁식사 시간이 지났을 텐데 말이죠. 그때 제가 숨어있던 검은색 차량에 불이 들어왔어요. 그 차는 후진을 했죠. 저는 당황해서 뒤로 발라당 넘어져 바닥에 굴렀어요. 승용차의 운전자는 급하게 내려 제 상태를 확인했어요.]


[팔꿈치가 좀 까졌을 뿐. 크게 다치진 않았어요. 그런데도 저는 엉엉 울었죠. 아무도 저를 찾지 않았던게 서러웠었나 봐요. 그 아저씨는 저를 집까지 데려다주었고 저는 집에 도착해서 다 식어버린 저녁식사를 먹었어요. 부모님은 제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죠. 저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제 가출은 일단락되었어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는 의자를 뒤로 젖혀 천장을 바라보고 모에카의 답장을 기다리며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어쩌면 저는 시눈의 삶을, 시눈은 저의 삶을 살게 되었다면 좋았을지도요. (웃음)]


그럴지도 모른다. 나와 모에카는 서로에 대한 결핍을 서로의 모습에서 찾는지도 모른다. 나는 모에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고, 모에카에겐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이 있다. 그러므로 우린 서로의 대화를 통해 위로를 받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좋지만 모에카 같은 소꿉친구가 어린 제 옆에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우린 서로에게 위로가 되었을 수도 있어요.]


모에카의 답장이 왔다.


[그럼 소꿉친구였던 걸로 하죠! 이제 '모에카' 말고 '모에' 이렇게 불러봐요. 저와 가까운 사람들은 다 그렇게 부르거든요.]


나는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만약, 어린 나에게 모에카 같은 소꿉친구가 있었다면—.




모에카와 연락한 지도 이제 6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나는 꾸준히 모에카에게 지구의 음식과 지구의 일상 사진들을 보냈고 이제는 그 일들은 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나는 자꾸만 모에카와 지구에서 만나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모에카와 대화 중에도 자꾸만 그러한 말들이 튀어나왔다.


[모에, 네가 지구에 오면 꼭 제주도에 가보자. 거기 정말 예쁜 유채꽃 밭이 있거든. 분명히 모에는 엄청 좋아할 거야!]


[언젠가 모에랑 같이 지구에서 노을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모에, 언젠가 내가 직접 파르페 만들어 줄게. 시눈표 파르페 기대해도 좋아.]


그러한 내 메시지에 모에카는 항상 말끝을 흐리며 ‘그랬으면 좋겠네요 ^_^’ 하고 웃으며 답했다.


연락지연도 점점 짧아져 이젠 7분 정도의 지연밖에 되지 않았다. 처음 대화했던 때와 비교해 보자면 지연시간이 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그렇게 우린 두 배 더 많은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


모에카의 말로는 우리가 처음 연락을 주고받았던 시점엔 화성이 봄이었단다. 그때는 먼지와 추위가 잦아들고, 모두가 돔 바깥으로 나가 설비를 정비하고, 대지의 기능을 다시 켜는 계절이었다고 한다.


지금의 화성은 여름, 본격적인 활동과 수확의 계절이라고 했다.


[여름에는 작물들이 잘 자라요. 특히 일부 과일들은 여름이 아니면 못 키우거든요. 수확량도 가장 많고요. 바쁘긴 한데… 그만큼 먹을 것도 많고, 그래서 다들 표정이 밝아져요.]


화성의 여름 낮, 기온은 지구 기준으로 15도에서 20도까지 오른다고 했다. 물론 밤이면 다시 -70도까지 떨어지긴 하지만, 일조량이 풍부해져 태양광 에너지 수급이 가장 안정적인 시기라고 했다. 그래서 겨울이나 봄에는 엄두도 못 냈던 행사들을 이 시기에 몰아서 하게 된다고 했다. 사계절 중 가장 활력이 넘치는 계절, 모에카는 그렇게 말했다.


[여름 끝자락쯤엔 1년에 단 한 번 있는 큰 축제가 있어요. ‘루멘의 밤’이라고 하는데… 전 그날이 일 년 중 가장 행복해요.]


‘루멘의 밤.’ 신비한 느낌의 이름이었다. 나는 메시지에 이렇게 적었다. ‘그날, 내가 옆에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곤 전송을 누르기 직전,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얼른 지워버렸다. 요즘 나는 종종 이런 말들을 썼다가 지우곤 한다. 가끔은 내 마음이 제어할 수 없이 커져 버린 건 아닐까 무섭기도 하다.


[그 ‘루멘의 밤’엔 무얼 하는데? 그렇게 행복할 정도로?]


모에카는 장난기 가득한 답장을 보냈다.


[훗— 그건 아직 비밀이에요. 그날이 다가오면 알려드릴게요. (웃음)]


이제는 이런 장난도 자연스럽다. 그만큼 서로가 편해졌다는 증거겠지.


누군가의 관심이란 건 대단하다. 열정이 전혀 없었던 내 못난 일러스트레이터 생활도 요새는 잘 풀려간다. 일거리도 많이 늘었다. 물론 내가 하는 일은 스케치를 하곤 AI의 렌더링을 돌리며 ‘럭키!’를 바라는 것뿐이지만, 그런 일조차 요즘엔 콧노래를 부르며 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 또한 모에카의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저는 시눈의 그림이 좋아요, 사실 화성에는 문화나 예술이 발달할 여유가 없어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없거든요. 위험표시 표지판을 그리는 사람은 있어도 (웃음). 아무리 스케치라고 해도 상상하고, 창작으로 그림을 그리는 시눈, 멋져요.]


저 ‘멋져요.’라는 말 저게 내 콧노래의 원동력이다. 하하. 저 한마디의 말 때문에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조금이나마 더 진지하게 임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간 내 손으로 직접 모에카를 그려, 그녀에게 선물하리라ㅡ 혼자 다짐했다.


하지만 항상 좋은 일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화성의 여름, 모에카의 삶은 외부작업들로 쉴틈이 없었다. 맛있는 걸 많이 먹을 수 있지만 그만큼 힘든 계절이라는 그녀의 말마따라, 우리의 연락시간은 더욱 짧아질 수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기다려 단 몇 개의 메시지만을 주고받은 채 나는 다시 하루 종일 기다려야 했다. 답장이 없는 메신저창을 켜놓고 나는 항상 한 시간쯤 기다려본다. 답장이 오지 않으면 나는 꼭,


[모에, 잠들었나 보구나. 오늘도 고생 많았어. 좋은 꿈 꿔.]


같은 메시지를 남겨두곤 했다. 사실, 나는 내심 서운했다. 하루 종일 모에카의 답장을 기다리는 삶... 주인을 기다리는 도시의 반려견들의 삶이 이러한 느낌일까? 기다림은 길고 반가움의 시간은 너무 짧았다.


어느 순간 그녀도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그녀의 휴일엔 폭풍처럼 메시지를 보내오곤 했다.


우린 사진도 자주 주고받았다. 나는 주로 음식 사진이나 지구의 풍경 사진을 보냈고, 모에카는 일과를 마치고 동료들과 찍은 사진이나, 가족과 함께한 따뜻한 순간들을 보내주었다.


물론, 내 시선은 언제나 모에카에게만 향해 있었지만—. 그녀의 사진을 보다 보니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자주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금발에 파란 눈, 모에카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남자. 이름은 ‘조슈아’라고 했다.


[조슈아는 저랑 작업도 많이 겹치고, 나이도 비슷해서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냈어요.]


모에카는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사진 속 다정해 보이는 둘의 모습을 보며 어느샌가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그때 모에카에게 메시지가 왔다.


[오늘은 제가 먼저 인사를 해줄게요. 저 이제 잠에 들 것 같아요. 시눈, 잘 자요.]


모에카의 메시지를 받고 나는 스마트폰을 덮었다. 이상하게 마음속에서 왠지 모를 서운함이 느껴졌다.


내가 보낸 사진들을 다시 훑어봤다. 각기 다른 풍경과 음식들, 다채로운 색감으로 가득한 사진들, 하지만 정작 그 안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모에카의 사진들도 다시 열어봤다. 비슷한 풍경, 반복되는 실내, 단조로운 배경.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늘 달랐고, 누군가가 찍어준 사진, 함께 웃는 사진, 그녀는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였다.


짧은 망설임 끝에,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오랜만에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솔직히 말해, 별로 보고 싶지도 않았는데. 왜 그랬을까…?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 마음은 입으로 내뱉기엔 부끄럽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