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구름 한 점에도.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자 약속은 금방 잡혔다. 안 그래도 주말마다 나올 수 있는 사람끼리 모여 한잔씩 기울이는 모임이 있다고 했다.
친구들은 내가 나온다는 말에 하나같이 신기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내가 지금까지 주변사람들에게 너무 무관심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밤공기를 맞으며 외출을 했다. 모에카를 위해 음식을 먹으러 나오는 외출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술집에 들어가자 시끌벅적한 소리들이 나를 맞이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사람들의 소리였다. 친구들이 나를 발견하곤 소리쳤다.
“오 저기 드디어 기어 나오셨구만! 오랜만이다?”
“그래, 야 오랜만이다. 미안하다. 연락 못해서.”
나는 오랜만에 본 친구들과 가볍게 서로를 툭툭 치며 인사했다. 옆을 보니 다섯 명 정도의 친구들이 먼저 모여있었다. 그렇게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매주 만나 똑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만 나누던 친구들에게 나란 존재는 새로운 재밋거리였다.
“야 그래서 어떻게 지낸 건데, 우리끼리 말이 많았어. 너 혹시 복권이라도 당첨된거 아니냐고.”
“혹시 그런 거면 너가 이 자리 내주는 거다?”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네는 오랜만에 만났는데 변한 게 없냐… 오해하지 마라, 복권은 안 됐는데 1차는 내가 쏠게.”
오랜만에 들이마신 시끌벅적한 공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아직도 내 주변에 이렇게 만나줄 사람들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조금 반가웠던 걸까. 나도 모르게 마음이 들떴다.
어쨌든 그 말에 술자리 분위기는 더욱 올라왔다. 환호하는 친구들 사이,
“야, 이 새끼 진짜 뭐 된 거 맞는 거 같지?”
하며 진지하게 묻는 친구, 나는 오랜만에 가볍게 웃었다.
그래 어쩌면, 내 지구의 삶에 너무 소홀했을지도 모른다. 친구 한 명 한 명의 안부를 묻곤 다 같이 술을 들이켰다. 술이 들어가니 자연스럽게 주제는 여자 이야기로 흘렀다.
“저번에 내가 말했던 스트리밍 한다는 여자애 기억하지, 내가 진짜 겨우겨우 연락해서 실제로 만났거든? 와 나는 이 과학기술이 말이야. 그 정도로 고도로 발달했는지 몰랐다니까?”
“존나 별로였대매? 얼마나 달랐길래?”
“눈코입이 달려 있다는 것을 제외한 전부.”
저급한 농담에 친구들이 깔깔 웃어댔다. 나도 피식 웃었다. 자연스럽게 친구들의 시선은 나로 향했다.
“시눈, 넌 뭐 없냐?”
“야, 이 새끼 뭐 있어, 뭔가 되긴 됐어.”
“얘 좀 누가 닥치게 해 봐.”
왁자지껄한 친구들 사이, 나는 고개를 들어 잠시 허공을 바라봤다. 모에카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 손으로 얼굴을 살짝 쓸어내렸다.
“이 새끼? 웃네? 야 뭐 있다 있어.”
친구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나는 숨을 잠시 고르곤 말했다.
“근데, 나는 좀 진지해.”
“야 나도 진지했어, 실제로 만나기 전까진.” 아까 전 저급한 농담을 했던 친구가 덧붙였다.
음… 모에카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입을 열기 전, 나는 잠시 머릿속으로 첫마디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고민했다.
모에카와 처음 연락이 닿았을 때부터, 이상하리만치 묘한 끌림이 있었다. 어쩌면 우린 언젠가, 어디선가 반드시 마주쳐야 했던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어릴 적에 닿았더라면, 아마 소꿉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같은 동네를 뛰어다니며 장난을 쳤을 테고, 서로의 도시락을 바꿔먹고, 우주 이야기를 하며 밤을 지새우기도 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지구에서 닿았더라면… 우리는 연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길거리 노점에서 붕어빵을 나눠 먹고, 비 오는 날엔 하나뿐인 우산을 함께 쓰며 저녁거리를 사들고 웃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평범하고 소중한 하루를 보냈겠지.
지구와 화성.
서로 다른 행성, 광대한 우주를 사이에 두고도 우리의 운명의 끈은 서로를 향해 정확히 도달했다.
이토록 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닿았다는 건— 단순한 우연이라고 말하기엔 어딘가 부족하다.
어쩌면… 우리 사이엔 정말, ‘인연’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무언가가 특별한 힘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입을 뗐다.
“너네 인연이란 거 믿냐?”
“이년 저년 믿는 거 아니다.”
딴지를 거는 친구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말을 이어갔다.
“너네가 말하는 그런 사람들과는 좀 결이 달라. 우린 좀 순수하다고 해야 할까?”
친구 한놈이 입을 열었다.
“오 그래 그림 그리는 우리 예술가 님의 연애는 우리랑 다르단 거지, 한번 들어나 보자.”
“음… 그러니까, 그녀는 화성에 살아.”
잠깐의 침묵이 흐르곤 친구들은 다 같이 미친 듯 웃어제꼈다.
“하하하. 시바 다르긴 확실하게 다르네, 다르다 못해 행성이 다를 줄이야.”
“눈코입은 달려있는 거 맞지? 야, 그거 중요하다?”
나는 잠시 소란이 가라앉기까지 기다렸다. 친구 놈들은 계속하고 싶은 말을 참지 못하고 한 마디씩 뱉느라 나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아니 진짜 진지하게 들어봐. 우린 좀 특별해.”
나는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을 친구들에게 말했다. 모에카가 내 그림에 댓글을 달았던 이야기, 지구와 화성의 거리 때문에 시간지연이 되어 하루에 이야기를 많이 주고받지 못했던 이야기, 모에카가 먹고 싶었던 음식을 내가 대신 먹어주었던 이야기,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웃고…
아까부터 딴지를 걸던 그 친구 놈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계속 낄낄됐다. 계속해서 신경이 쓰이다. 순간 짜증이 확 나서 말했다.
“야 뭐가 웃긴 건데?”
그 친구는 이죽거리며 내게 말했다.
“그래서… 뭐가 다르냐고”
“뭐?”
“만나 본 적 없고, 온라인으로 만난 거고, 눈코입 있고… 아 그건 확실치 않은가?”
그 친구는 입꼬리를 비틀게 올리며 약 올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여튼 아까 내 스트리밍 하는 여자애 만난 이야기랑 뭐가 다르냐고.”
분위기가 살짝 얼어붙었다. 나는 반박하려고 했지만 그럴만한 논리적인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뭐?"
"이 새끼 존나 발끈하네? 너 그거 사람은 맞냐? 혹시 AI랑 대화하면서 착각하는 건 아니지?"
그 친구의 비아냥에 내 입에선 원초적인 욕지꺼리가 튀어나왔다.
"뭐 이 씨발아?"
나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며 일어났다. 내 주위 친구들은 그런 나를 붙잡았다.
“말해보라고, 뭐가 다른데? 아! 다르긴 하네 나는 만날 수 있었고 너는 못 만날 거니깐, 또 모르지 그 여자애 화성에서 딴 놈이랑…”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주먹이 나갔다. 내 주먹은 정확히 그 녀석의 코에 닿았고, 순식간에 술자리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친구들은 나와 그 친구를 떼어 놓느라 애먹었다. 거리가 멀어지자 그 친구가 코에서 흐르는 피를 닦으며 이야기를 했다.
“야 씨발, 뭐가 다르냐고 니가 우리랑 뭐가 그렇게 다른 건데? 예전부터 느꼈어 니 말투, 표정, 넌 너가 뭔 특별한 존재인줄 아는 거냐? 착각하지 마 너나 나나 똑같애.”
나는 그 말 또한 반박하지 못했다. 아수라장이 된 술집 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하자, 잃었던 이성이 다시 서서히 되돌아왔다.
그 시선들은 한없이 차가운 것이었다. 누구 하나 놀라지 않고 감정의 동요 없이 그저 구경거리가 하나 생겼다는 듯 흥미로운 눈빛으로 우릴 보며 키득거릴 뿐이었다.
나는 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조용히 밖으로 빠져나왔다. 한 친구 놈이 담배하나를 꺼내 불을 붙이곤 내게 말을 꺼냈다.
“야… 저 새끼 말로는 험하게 했어도, 그 여자애 진짜 좋아했거든. 진짜 만나려고 몇 달을 준비했대. 결국 만나서 실망하고 맘고생 좀 했었나 봐. 너한테 지랄한 건… 이해 좀 해줘라.”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흥분이 가라앉은 내 머릿속엔 같은 생각만이 맴돌았다.
‘그래, 도대체 뭐가 다른 걸까… 우린 진짜 특별한 게 맞나? 혹시… 내가 혼자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친구들에게 먼저 들어가겠다고 말하자, 놈들은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기분 풀어라. 연락하고.”
“그래. 연락할게” 나는 형식적인 물음에 형식적인 대답을 남긴 채, 뒤돌아섰다.
서울의 밤거리는 유난히 서늘했다. 사람들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손엔 스마트폰을 든 채 무표정하게 걷고 있었다. 한숨을 쉬며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은 붉은 그 행성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맑은 날엔 분명히 보이던 저 별도, 흐린 날이면 감쪽같이 사라진다. 어쩌면 우리 사이도 그럴지 모른다.
그녀의 대한 나의 믿음도 작은 의심 하나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는— 그런 얇은 선 위에 서 있었던 건 아닐까.
모에카와의 대화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모에카의 따듯한 말들, 지구의 음식을 보며 궁금해하는 순수한 모습들, 그녀와 나눴던 어린 시절 이야기들.
그 모든 게 진심이었기를 바라면서도, 문득 떠오른다. 그건 나 혼자만의 바램이 만들어낸 모에카의 모습은 아니었을까?
내가 믿고 있었던 우리를 이어주는 운명의 끈이란건ㅡ 어쩌면, 내가 그녀에게 걸어둔 일방적인 믿음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