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들.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졌다. 술기운 탓인지 천장이 천천히 회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숨을 푹 내쉰 뒤, 손등을 이마 위에 얹고 눈을 감았다.
나와 모에카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 친구의 말처럼, 우리는 온라인에서 알게 되었고 사진을 주고받았지만, 실제로 얼굴을 본 적은 없다. 목소리조차 들은 적이 없다. 우린 서로를 정말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한, 나는 이 관계에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이고 싶다는 내 욕망을 덧씌우고 있었던 건 아닐까? 모에카가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이라면, 나도 그중 하나에 불과한 건 아닐까?
아니, 설마... 모에카가 내가 상상한 그런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사진도, 이야기들도, 전부 거짓이라면? 혹시 화성에 사는 것도 거짓이라면? 아니… 모에카라는 사람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누군가 나를 놀리기 위해 작성하고 나를 속이는 것이라면?
머릿속은 점점 어지러워졌다. 우리의 관계는 만날 수 없으니 물리적으로 증명할 수가 없다. 그저 믿음 하나로만 유지되어 온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작은 의심 하나에도 이토록 쉽게 흔들린다.
그래 맞다. 이건 내 머릿속에서 자라난 확증 편향이다. 나는 늘 어떤 일이든 최악의 최악까지 먼저 상상한다. 거기까지 상상해놓고 나면 어떠한 잔인한 진실을 맞이하더라도 조금이나마 덜 아플 수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충격 흡수 장치 같은 거다.
하지만—그런 생각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로도 나를 비참하게 만들곤 한다. 지금 이 순간처럼.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무렵, 스마트폰에 알림이 떴다. 모에카였다.
[시눈, 오늘도 바쁘게 하루를 보냈어요. 재미있는 일이 하나 있었는데요—오늘 한 친구 생일이었거든요. 저희는 서프라이즈를 준비했어요. 일부러 아무도 생일 이야기를 하지 않고, 축하 한마디 없이 조용히 하루를 보냈죠. 그 친구는 다들 자기 생일을 잊은 줄 알았을 거예요.]
[작업이 끝나고, 조그마한 컵케이크에 초를 꽂고 ‘생일 축하합니다’를 부르자마자—그 친구가 아이처럼 펑펑 울더라고요. 근데 너무 진지하게 울어서… 오히려 좀 웃겼어요 (웃음)]
[더 기뻤던 건요, 그 친구가 그 케이크를 제게 양보해 줬다는 거예요. 덕분에 저는 생애 두 번째 빵을 먹었답니다.]
[먹으면서 시눈이 보내줬던 컵케이크 사진을 떠올렸어요. 그 맛을 상상하며 한 입, 한 입… 정말, 정말 행복했어요.]
나는 메시지를 읽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모에카의 메시지는 따듯한 내용이였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작은 에피소드가 담긴 일상. 작은 컵케이크 하나에도 행복해 할 수 있는, 그런 모에카의 하루와 차가운 내 하루가 겹쳐 보이며, 왠지 모르게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그래. 모에카는 행복한 하루를 보냈구나...
나는 스마트폰 자판 위에 천천히 손가락을 올렸다.
[모에는 행복한 하루를 보냈구나, 나는 오늘…]
그다음 문장이 생각나지 않았다. 오늘 내게 있었던 일들, 내가 했던 생각들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그러니까 나는 오늘...
[... 힘들었어.]
그렇게 적었다. 더 이상의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 말을 적고 나니 이유 모를 눈물이 떨어졌다.
작은 스마트폰 위로 몇 방울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방울진 눈물 속에 몇 글자의 텍스트가 굴곡져 보였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초라함과 외로움이였다.
어느 무리에도 속하지 못한 내가 찾은 유일한 연결고리는 모에카였다. 서로의 결핍을 이해해 주고 위로해 주며, 모에카는 어느 순간부터 내게는 없어서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곁에는, 나 말고도 소중한 사람들과 따뜻한 일상들이 가득하다. 부끄럽지만, 나는… 모에카도 나만큼이나 외로운 사람이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랬군요. 시눈, 힘든 하루였었군요. 살다 보면 그런 날들이 있죠. 그래도 있죠? 저기 하늘 위를 바라봐요. 제가 사는 별은 지구에서 보이는 날도 있고 보이지 않는 날도 있겠죠. 하지만 변하지 않는 건 거기에 존재한다는 거예요. 하늘이 까맣게만 보이는 날에도 그 별은 분명하게 거기에 존재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별엔 시눈을 항상 응원하는 제가 있어요. 힘내요 시눈.]
어이없게도, 그 따듯한 메시지에 나의 이기적이고 못난 마음들은 스르르 녹아내렸다. 부끄러웠다. 내게 필요했던 건 아마, 그저 한마디 위로였는지도 모른다.
방금 전까지 가득했던 불안과 의심이, 마치 물에퍼진 물감처럼 마음속에서 스르르 퍼지더니 이내 옅어지고 사라져 갔다.
그렇다. 그런 거였다. 모에카는 한결같은 사람이였다. 지금 흔들리고 나를 괴롭히는 모든 생각들은 다... 내 안에 존재하는 것들이였다. 그녀는 분명 그 자리에서 항상 같은 빛으로 나를 비춰주고 있었다. 그 빛이 내게 닿을 때도, 닿지 않을 때에도.
다른 사람의 시선들도, 모에카 옆에 나 말고도 좋은 사람들이 가득한 것도 중요한 게 아니었다. 모에카가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 또 나를 응원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내가 믿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모에... 고마워. 방금 그 말에 정말 큰 위로를 받았어. 오늘은 내게 정말 힘든 하루였거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화성이 안 보이더라. 그게 왠지 나를 더 서글프게 했어. 그런데 모에의 말을 듣고 나니까 다시 힘이 나는 것 같아.]
[믿을게. 그 행성이 보이는 날이든, 보이지 않는 날이든—저 멀리서 모에가 날 응원하고 있다는 걸. 모에, 너는 나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야.]
마지막 문장을 쓰고 여느 때와 같이 망설였다. 늘 그랬듯, 보내기 직전에 지울까 말까 고민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냥, 보내고 싶었다. 술기운을 핑계 삼아서라도.
[시눈의 말들은 가끔 너무 솔직해서 놀랄 때가 있어요. 하지만 기분이 좋을 때도 많아요.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저에게도 시눈은 소중한 사람이에요. 가끔 고민이 있으면 저에게 털어놓아도 좋아요. 해결은 못해주겠지만... 잘 들어줄 수는 있어요.(웃음)]
나는 그 메시지를 눈 안에 한참을 머금고 있었다. 모에카는... 정말로 상냥한 사람이였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모에카가 내 삶의 소중한 사람이란 걸 받아들였다. 그러고 나니 모에카에게 더 많은 것들을 해주고 싶어졌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모에카가 지구에서 해보고 싶은 것들을 대신 경험해 주고 전해주는일. 좀 더 특별한 그런 경험을 전해줄 순 없을까?
[모에는 지구에 온다면 가장 먼저 어디를 가보고 싶어?]
[음… 아무래도 일본이겠지요? 부모님의 고향이니까.]
아차. 모에카는 일본사람이었지? ‘지구인’과 ‘화성인’이라는 이질적인 틀에 갇혀 그런 것들을 잊어버리곤 한다. 내가 마지막으로 해외에 나가본 적이 언제였더라? 아주 어릴 적 부모님 손을 잡고 갔던 기억을 제외하곤 내 발로 내 의지로 갔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럴 자금적 여유도 없었고... 지금의 삶은 딱 내 생활을 유지할 정도만 벌며 살고 있으니깐. 음... 그래 돈이 문제다.
그날부터 나는 작업량을 늘렸다. 뭐든 좋았다. AI 렌더링을 돌려놓고도,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다른 스케치를 이어나갔다. 이렇게까지 일에 몰입해 본 게 언제였던가? 아니 그런 적이 있긴 했었나?
계속해서 일갯수의 모수를 늘려나가려면 작업물의 어느 정도 이상의 퀄리티를 보장해주어야 했다.
이전엔 스케치를 하다가 귀찮으면 그냥 실루엣만 그려놓고 ‘사람 뒷모습’이라고 적어두곤 했다. 어차피 AI가 다시 그려주는 시스템이었으니까.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으면 원하는게 나올 때까지 돌려버리면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한번 그릴 때 스케치를 정확하게 해 두면 그만큼 의도한 그림이 나온다. 그만큼 렌더링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그만큼 작업량이 많아진다. 어쩌면 나는 내 일에 지금까지 진지하게 임하지 않았었는지도 모른다.
모에카와 연락할 시간이 되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일들을 하려 노력했다. 어쩌면 화성의 노동시간과 내 노동시간이 비슷해져 버린 걸 지도 모르겠다. 요즘엔 일을 끝내면 녹초가 되어 버리곤 했다. 누워서 모에카의 연락을 기다리다가 몇 번이나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깨곤 했다.
어느 날엔...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꿈이였다. 허겁지겁 스마트폰을 확인해 보니 이런 답장이 와있었다.
[아레? 시눈 잠들었나 봐요. 이런 적이 처음이라 신기하네요. 혼자 답을 기다린다는 건 이런 기분이군요. 이제야 처음 느껴보네요. 그만큼 시눈이 저를 배려해 줬다는 뜻이겠죠? 고마워요. 시눈, 잘 자요. 좋은 꿈 꿔요.]
메시지를 보니 왠지 살짝 미안해졌다. 모에카는 이런 기분이였겠구나.
아마도, 우리는 조금씩 더... 서로를 이해해가고 있는 중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