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에카를 위해 일본으로!
화성의 여름은 쉴 틈 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여름에는 최대한 많은 야외작업을 해놓아야 했기 때문에 그만큼 장비들을 많이 굴려야 했다. 그렇기에 모에카는 일이 더 많아졌다고 했다.
하지만 모에카는 항상 해맑았다. 어느 날은 모에카가 이미지를 보내왔다. 그건… 딸기였다.
[시눈 기쁜 소식이에요! 저 드디어 딸기의 맛을 알게 되었어요. 실제로 보니 생각했던거보단 귀여웠고요, 한입에 넣었을 땐 처음엔 너무 시큼해서 놀랐지만 바로 뒤따라 달콤한 맛이 입안에 퍼졌어요. 음 아직도 생각만 하면 입안에 침이 고여요. 물론 극 소량으로 처음 재배한 거라 한 개밖에 먹지 못하였지만요. 이 맛은 잊지 못할 거예요.]
아—여름의 모에카가 그토록 밝았던 이유는 이것이었구나. 모에카는 먹는 걸 정말 좋아한다. 그 고된 노동에도 밝은 모습을 잃지 않을 만큼.
모에카가 지구에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분명 또래 친구들과 함께 예쁜 카페를 찾아다니며 매일매일 디저트를 먹으러 다녔겠지. 그 상상만으로도 괜시리 웃음이 지어졌다.
언젠가는... 정말 그런 모습들을 볼 수 있을까? 참고로, 그녀가 보낸 딸기 사진은… 누가 봐도 아직 덜 익은 상태였다.
그래서 그렇게 시큼했던 거겠지. 귀엽게도...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어느새 모에카와 연락한 지도 9개월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지구도 봄을 맞이했다. 창문밖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나무들에도 벚꽃이 피었다. 작년은 사실 벚꽃이 핀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갔었는데.
그에 비해 올해는 흩날리는 분홍색 꽃잎들이 왜 이렇게 설레는지. 괜시리 스마트폰을 꺼내 활짝 핀 벚꽃의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이 설렘이 화성까지 닿을 수 있길 바라며.
우리의 연락 지연시간도 줄어들었다. 이제는 5분, 왕복 10분의 지연시간이면 메시지 하나가 오고 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의 마음속 거리만큼. 물리적인 거리도 가까워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따듯한 봄날, 나는 일본으로 떠나게 되었다.
모에카에겐 말하지 않았다. 몰래 일본에 도착해서 사진을 보내고, 짜잔— 하고 놀래켜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착지는 군마현이였다. 도쿄에서 두 시간쯤 떨어진 시골 느낌이 물씬 나는 곳이라고 한다. 모에카의 부모님들이 만난 곳. 어쩌면 모에카의 정신적인 고향일지도 모르겠다.
여권을 만들고 비행기 표도 예약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처음 해보는 일들이라 어색하고, 솔직히 조금 겁도 났다.
부끄럽지만,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성인이 된 이후로 해외는커녕, 다른 도시들도 거의 가본 적이 없다. 여행이란 건 내게 ‘비효율’의 다른 이름이었다. 사람들은 여행을 다녀와선 입을 모아 말한다.
“정말 재밌었어. 특별한 경험이였어.”
그런데 막상 물어보면, 특별한 일은 별로 없다. 그냥, 괜찮은 풍경, 나쁘지 않은 식사, 조금 다르지만 결국 비슷한 일상.
뼛속까지 서울사람인 내 입장에선 여행이란 건 그런것이였다. 어쩌면 그들은 일상에서 도망치려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평범한 일들에 의미를 부여해 정말 재밌었다고, 특별했다고, 좋았다고 믿으며, 다시 도망칠 구실을 만드는 일...
현실도피의 정당함을 찾기 위해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덧대어 포장하는 일. 내게 여행은 그런 것이었다.
물론 이번 내 여행은 다르다. 현실의 지루함에서 도망치려 여행 가는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한 것이 아닌 모에카를 위한 여행이니깐.
금세 시간은 지나 출국날이 다가왔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는 내 계획에 대해 점검해 보았다. 숙소도 다 잡아놨고 마지막날엔 온천도 할 생각이다. 화성에는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한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일이라고 했다.
[목욕을 하려면 몸을 담글 만큼의 물을 받아야 하고 또 가열해야 해요. 화성엔 그렇게 쓸 수 있는 물이 많지 않거든요. 아주 가끔, 일 년 중 손에 꼽을 만큼만 목욕할 수 있는데요, 그땐 온 가족이 같은 물을 돌려 써요. 더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물에 몸을 담그면,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아요. 매일매일 목욕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아이러니하게도, 모에카의 고향이 될 수도 있었던 군마현은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다. 만약 그녀의 부모님이 지구에 남는 선택을 했더라면, 모에카는 원할 때마다 온천을 다니며 살아갈 수 있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창밖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봤다.
아참 나는 일본에 가서도 일을 할 생각이다. 꿈이 생겼다. 모에카를 지구로 데려올 만큼 돈을 모으는 것. 사실, 얼마 전 귀환 비용을 알아봤다.
화성 귀환 우주선 티켓, 약 2,800만 크레딧.
처음 이 금액을 봤을 땐 잘못 본 줄 알았다. 지구의시간을 기준으로 약 27개월마다 한번 지구와 화성은 가장 가까워진다.
그때마다 한 번씩 지구에서는 엄청난 양의 물자를 실은 왕복선 하나를 보낸다. 그럼 그 우주선은 물자와 장비들을 화성에 내리고 다시 복귀한다.
문제는 그 지구로 돌아오는 왕복선에 탑승하는 가격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었다. 왜 그럴까? 빈 왕복선에 그냥 사람들을 태워줘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 왕복선은 빈 왕복선이 아니였다.
지구의 광물 자원은 거의 고갈되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채굴 속도는 빨라졌고, 인간의 욕망은 그보다 더 빨랐다. 귀금속은 물론,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희토류와 초전도체 합성에 필요한 특수금속들까지… 이젠 지구에서는 찾아보기조차 어렵다.
하지만 화성엔 있다. 미개척지, 수천 킬로미터에 걸친 풍화층 아래에는 고순도의 이리듐, 팔라듐, 하프늄, 텅스텐… 이름마저 어려운 희귀 광물들이 화성에는 가득하다. 거대한 왕복선에 그런 광물들을 가득하게 채운다.
그게 우선이다.
사람 하나쯤, 실을 수야 있겠지. 60킬로? 70킬로? 하지만 현실은 더욱더 잔인한 것이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 자리에 이리듐 40킬로그램을 실으면, 적어도 4,000만 크레딧의 가치가 생긴다.
사람 하나를 태우는 대신 광물을 태우는 편이 경제적이니까. 그렇기에 누군가가 화성에서 지구로 돌아오려면, 그 무게만큼의 금액을 내야 한다. 그게 2,800만 크레딧이라는 가치다.
그걸 모으려면 나는 얼마나 걸릴까... 지금처럼 일해선 십 년이 넘게 걸릴지도 모른다. 더 일을 해야만 한다. 적어도 5년 안에는... 모에카를 위해서, 또 나를 위해서.
그런 생각들에 잠겨있다 보니 금세 일본에 도착했다. 공항에 내려 숨을 들이마셨다.
역시나... 딱히 특별하지 않았다. 몸을 바삐 움직여 공항을 빠져나갔다. 모에카의 메시지가 오기 전에 군마현에 도착하고 싶었다.
[에~ 말도 안 돼!]
내가 사진을 보내자 모에카의 반응이었다. 역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에카에게 일주일 동안 대리여행을 해주겠다는 내 계획을 밝혔다.
모에카는 어릴 적부터 군마현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정확히는 모에카의 어머니의 고향이고 거기서 지금의 아버지와 만나게 되어 모에카가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되었다.
그녀에게 군마현이란 곳은 어머니의 고향 그 이상의 의미를 가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여행의 계획은 없다. 그저 모에카가 가고 싶었던 곳을 가고, 원하는 음식들을 먹는게 내 계획이였다.
[감동이에요 시눈, 하지만 그러기엔 제가 너무 미안해질 것 같은걸요…]
모에카는 여행인데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겠다는 내 모습에 미안함을 느꼈다. 어쩌면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에카가 좋아하는 게 내가 원하는 것이다. 나는 최대한 그녀가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장난기를 담아 메시지를 보냈다.
[그럼 모에가 계획을 멋지게 짜줘야겠네!]
음... 아무래도 더 부담스럽게 해 버린 것 같다. 이게 아닌데... 꼭 이런 메시지를 보낼 때는 나도 모르게 어색한 메시지를 보내게 된다. 그리곤 전송을 누르고 나서야 잘못된 부분이 눈에 보인다. 혹시 모에카가 부담스러워서 거절을 하면 어떡하나 고민을 하는 새, 답장이 도착했다.
[음...! 그럼 최대한 열심히 해볼게요! 군마현에 대해선 어릴 적부터 엄마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긴 해요! 어렸을 때 들었던 가게가 있는데요! 내일은 일단...]
다행히 모에카의 반응은 좋았다. 엄청난 양의 텍스트가 도착했다. 평소와 다른 조금 더 높은 텐션이 느껴지는 메시지였지만 그 또한 모에카의 따듯한 배려가 느껴져서 좋았다.
아무래도 내일은 일할 여유가 없을 것 같다...
그렇게 나와 모에카의 여행은 시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