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불쑥 찾아오는 것.
나는 미즈오의 휠체어를 밀고 천천히 길을 따라 내려갔다. 그녀가 손끝으로 가리킨 방향, “조금만 가면 경치가 좋아요.” 라고 말하던 그 방향으로 미즈오의 휠체어를 천천히 밀었다.
나무가 드리운 길 아래로 저녁 공기가 깔렸다. 흙냄새와 풀잎 냄새가 뒤섞였고, 어디선가 매미 울음이 섞여왔다. 이젠 늦봄부터 울기 시작하는, 지구온난화 때문에 계절이 조금 삐뚤게 흘러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벌써 매미가 우네요.”
“그러게요, 올해는 더 빠른 것 같아요.”
시덥잖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숲속을 지나는데, 갑자기 차가운 액체가 눈 위로 툭 떨어졌다. 반사적으로 손을 올려 닦아내며, “아이씨—” 하고 짧게 내뱉었다.
미즈오는 그 모습을 보고 입을 살짝 가린 채, “핫핫—” 하고 웃음을 흘렸다.
“아마 매미 오줌일 거예요. 걱정 마세요, 나무 수액만 먹고 살아서 더럽진 않대요.”
나는 웃음짓는 미즈오의 모습을 흘깃 보곤 괜히 더 오버스럽게 나무위를 올려다 봤다. 씩씩대며 매미를 찾으려는 시늉을 했다. 미즈오는 더욱 즐겁게 웃었다.
그때, 한 마리 새가 날아와 나무 위의 매미를 낚아챘다. 나는 저놈이 범인임을 확신하는듯 소리쳤다.
“아 저놈인가봐요! 아무 데나 오줌 싸재끼니까 벌받는 거야. 인과응보다, 새꺄!”
그 말을 들으며 가볍게 웃음 짓던 미즈오가 툭 던지듯 말했다.
“웃기죠?”
“뭐가요?”
“인간은 꼭, 사건과 사건을 이어 붙이려 한다는 거요.”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미즈오를 바라봤다.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뭇잎 사이로 붉은 빛이 새어 들어와 얼굴을 물들였다.
“방금 매미 얘기처럼요. 사실은 아무 관계 없는 두 일인데, 꼭 이어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잖아요. 오줌을 싸서 벌을 받았다든가.”
그녀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건 어쩌면 인간의 본능일 거예요. 별자리도 그렇잖아요. 그저 하늘에 떠있는 별들인데 그 점들을 서로 이어서 모양을 만들고 심지어는 거기에 그럴싸한 이야기까지 입혀요."
미즈오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하지만 사실… 세상은 그냥 일어나는 일들로 가득 차 있지 않을까요. 연결 같은 건 없는데, 우리는 자꾸 사건을 이어붙이려고 하고 당위성을 찾아내려하죠.”
나는 조용히 미즈오의 말을 들으며 휠체어를 부드럽게 밀었다.
“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뻐꾸기 이야기 알아요? 뻐꾸기는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요. 그 뻐꾸기는 부화해서 제일 먼저 하는 행동이 다른 알들을 둥지에서 밀어내는거에요. 그 둥지의 어미새는 자신의 알을 모두 잃은체 뻐꾸기 새끼를 애지중지 키우죠.”
해질녘의 산이 금세 어두워졌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둘러싼 공기도 무겁게 가라앉는듯 했다.
“그 다큐멘터리에서는 나중에 그 뻐꾸기가 둥지에 침입한 다른 포식자에게 잡혀가면서 끝나요. 나래이션은 이렇게 깔리죠”
그녀가 낮게 말했다.
"악한 행동에 걸맞는 최후다. 라고요"
“하지만 사실은 그냥 일어난 일이에요. 포식자는 먹이를 찾았을 뿐이고, 뻐꾸기는 살아남으려 했을 뿐이죠. 두 사건 사이엔 아무런 인과도 없어요.”
“인간의 삶도 그런게 아닐까요? 어떤 일들은... 그냥 일어나요. 연결고리 없이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억지로 엮고, 그 안에서 이유를 찾아 헤매이죠.”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가끔 불행을 더 불행하게 만들어요. 만약 그때 내가 다른 행동을했다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런 후회들을 남기죠,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걸 자신의 문제로 돌리곤하죠."
나는 미즈오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것 같아 조용히 미즈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휠체어가 떨어진 죽은 나뭇잎을 밟아가며 사각사각 소리를 내었다.
“불행에는 이유가 없고, 행복도 그렇지 않을까요.”
그녀는 허공을 바라보다, 아주 조용히 덧붙였다.
“그냥... 어느 날 불쑥 오는 거죠.”
어느새 미즈오가 말했던 경치가 좋은 곳에 도착해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기분좋게 미즈오와 나에게 불었고 미즈오의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부드럽게 휘날렸다.
이후 미즈오는 내게 또 무거운 이야기를 했다며 사과했고 나는 또 그 어설픈 손 휘적거림을 미즈오에게 보여주어야했다.
숙소로 돌아오니 이미 하늘은 검푸르게 물들어 있었다. 별빛이 하나둘 떠오르고, 저 멀리 산등성이 위로 안개가 걸려 있었다. 나는 여관 안쪽에 마련된 작은 노천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순간, 하루 종일 쌓였던 긴장이 서서히 풀려나갔다.
“후...”
숨이 절로 길게 흘러나왔다. 물결이 가볍게 일렁이며 피부를 감싸고, 근육 깊은 곳까지 열이 스며들었다. 피곤이 조금씩 녹아내리고, 머릿속에 가득 차 있던 생각들도 어느새 부유물처럼 수면 위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김이 피어올라 밤하늘로 흩어졌다. 연기 같은 수증기들이 검은 하늘 속으로 나풀나풀 흡수되듯 빨려 들어갔다. 나는 고개를 젖혀 하늘을 바라봤다. 별 몇 개가 희미하게 반짝였다.
‘얼마나 높이까지 올라가는 걸까?’
생각은 금세 모에카에게 향했다. 이 김이, 이 따뜻한 냄새가 아주 멀리, 지구 밖을 건너 화성까지 닿을 수 있다면. 모에카가 지내는 기지의 작은 창가에도 이 온기가 가 닿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눈이 자꾸 감겼다. 그때마다 물에 고개가 잠기곤 했고, 그럴 때마다 정신을 다잡듯 몸을 다시 일으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즈오가 했던 말들이 물 위로 떠올라 자꾸 귓가를 맴돌았다.
‘불행에는 이유가 없어요. 행복도 그렇고요. 그냥… 어느 날 불쑥 오는 거죠.’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엔 무게가 실려 있었다. 불행이란 그녀에게 너무나 가까운 단어 같았다. 다리의 불편함, 가족의 붕괴, 불타 사라진 신사… 모든 것이 얽혀 있지만, 그녀는 그것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누구도 미워하지 않기위해, 자기자신조차도.
나는 그 말이 슬프게 들렸다. 하지만 동시에 그말엔 희망이 담겨있기도 했다. 불행이 이유 없이 찾아오는 것처럼 행복도 이유 없이, 예고 없이 언젠가 미즈오에게 찾아 오지 않을까?
‘혹시 미즈오도 그걸 기다리고 있는건 아닐까? 어느 날 불쑥 찾아올 행복을...’
물 위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다, 나는 눈을 감았다. 모에카의 생각이 곧장 이어졌다. 만약 미즈오의 어머니가 신사에서 만난 남자와 화성으로 떠난 것이 사실이라면, 그 불행의 그림자가 미즈오에게 드리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선택은 모에카라는 존재를 세상에 남겼다.
그리고 모에카라는 빛은 내게 비춰졌다.
누군가의 불행이 다른 누군가의 행복을 낳는다. 삶은 언제나 불공평했고, 누구도 동시에 모두를 구원할 수 없는 잔인한 구조다. 하지만 그 불공평 속에서 나는 분명히, 모에카라는 나의 기적을 만났다.
나는 잠시 두 손을 모아 물속에 담갔다. 뜨거운 열기가 손끝에 전해졌다. 그리고 그 안에 진심을 담아 조용히 바랐다.
‘부디, 미즈오에게도... 그런 행복이 불쑥 찾아오길...’
밤바람이 스쳤다. 물 위의 김이 다시 흩어졌다. 마치 내 기도가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실려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