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 사는 모에카에게-. EP_09

불타버린 신사와 미즈오.

by 시눈


그런 마음을 뒤로한 채 캐리어를 끌고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방이 서너 개뿐인 작은 여관이었다. 나무문은 오래 쓰여 손때가 묻은 듯 반들거렸고, 문을 밀자 가벼운 종소리와 함께 안쪽에서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예약하신 ‘시눈’ 맞으시죠?”


머리는 한올도 흐트러짐 없이 올려 묶여 있었고, 몸에는 전통적인 일본식 의류가 단정하게 감싸고 있었다. 잠깐, 오래된 일본 영화 속에서나 보던 그런 모습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약간은 어두운 조명 밑 오래된 나무로 이루어진 인테리어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녀의 뒤쪽 구석, 벽에 기대 놓인 목발이 눈에 들어왔다.


“아, 네. 제가 시눈 맞습니다. 짐은 어디에 풀면 될까요?”


방은 2층에 있었다. 이용 규칙과 공용 공간 설명을 전하던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상냥했다. 설명이 끝나고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오르려던 순간, 나는 멈춰 섰다.


“아, 그런데요... 혹시 저기 돌계단 위에 있는 신사 말이에요. 불에 타서 없어졌던데, 무슨 일인지 아세요?”


상냥하게 웃던 그녀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 미묘하게 경직된 미소가 다시 입가에 걸렸지만, 그 안엔 머뭇거림이 있었다.


“아... 그게... 음, 한 7~8년 전쯔음... 좀 일이 있었죠.”


그녀는 말을 고르다 시선을 살짝 피했다. 나는 괜히 웃으며 손을 저었다.


“곤란한 이야기면 안 하셔도 괜찮아요. 단순 호기심입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고마움을 전했다. 굳이 불편한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싶진 않았다.


방 안은 낡았지만 창을 열자 초록빛이 한가득 들어왔다. 나무와 풀에서 스며 나오는 흙냄새,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마음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짐을 풀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으니 배가 출출해졌다.


슬리퍼를 끌고 1층으로 내려갔다. 계단을 돌자, 복도 끝에서 여관 주인이 절뚝이며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한 손에는 빨랫감이 담긴 바구니, 다른 손은 벽에 설치된 손잡이를 단단히 쥐고 있었다.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복도 양쪽 벽에는 일정 간격으로 손잡이가 줄지어 있었다.

‘다리가 불편하신가 보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겨 그녀에게 다가갔다.


“제가 들어드릴까요?”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눈빛에는 경계심이 스며 있었다. 순간 당황한 나는 괜히 엉뚱한 말을 내뱉었다.


“아, 그게... 다른 뜻은 아니고요. 그냥 몸이 좀 뻐근해서... 운동 삼아...”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죄다 상황과 어울리지 않았다. 손도 덩달아 어색하게 휘적거렸다. 스스로 생각해도 꼴사나운 모습이었다.


그녀는 나를 잠시 바라보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음을 흘렸다. 아마 ‘이 사람 참 서툴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내 모습에 오히려 경계심이 풀어졌는지도 모를일이였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저쪽 끝방으로 가던 길이었어요.”


그녀가 내민 바구니를 받아 들었다. 우리는 말없이 복도를 걸었다. 그녀는 손잡이에 몸을 살짝 의지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시선을 바닥에 두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맞췄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다리가 불편한 것이 혹시 신사의 화재와 관련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렇게 여성을 따라 조금조금씩 걷던 도중 갑자기 방금전 죄지은 사람처럼 꼴사납게 변명을 늘어놓았던 내 모습이 생각이 났다. 친절을 베푸려고 한건데 마치 죄지은것 마냥... 뭔가 억울했다. 괜시리 혼자 토라져 버린 나는 빨랫감을 세탁기 안에 넣고 난뒤 "수고하세요"라고 짧게 말한채 홱 뒤돌아섰다.


“저기요.”


그녀가 나를 불렀다. 그녀의 얼굴은 사뭇 진지했다.


“신사가 왜 불타 없어졌는지... 궁금하신가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대답이 나오기 전, 내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렸다. 무겁던 분위기가 조금 풀렸고, 그녀는 조그마한 손으로 입을가리곤 '핫핫'하며 짧게 웃었다.


“출출하신가봐요? 소바가 조금 남았는데 드실래요?”


나는 뒷머리를 긁으며 웃었다.

“아... 아까 돌계단을 올라갔다 오니 배가 고프네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작은 2인용 식탁 위에 김이 피어오르는 야키소바 한 접시가 놓였다. 나는 나무젓가락을 반으로 쪼개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잘 먹겠습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 한 잔을 내밀었다.

“저는 미즈오라고 해요.”


“아, 저는 시눈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고, 잠시 조용한 시간이 흘렀다. 젓가락 끝이 면을 들어 올리자, 간장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첫 젓가락을 입에 넣은 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까 말씀하신… 그 신사에 대해서요.”


미즈오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실 수 있나요?”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8년쯤 전이에요. 아버지가... 그 신사에 불을 지르셨거든요.”


젓가락을 들던 손이 멈췄다. 그녀는 내 표정을 살피더니 부드럽게 덧붙였다.

“괜찮아요. 먹으면서 들어도 돼요. 오래된 일이에요.”


나는 짧게 숨을 내쉬며 다시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날, 아버지는 술에 많이 취해 있었어요. 그렇게 불을 지르고... 한심하게도, 빠져나오지도 못했죠.”


말끝을 흐린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물을 한 모금 삼켰다.


“죄송합니다. 그런 사연일 줄은 몰랐어요.”


“다 지난 일이에요. 그리고... 좋은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그녀의 시선이 조용히 자신의 다리로 향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것도 아버지 때문이에요.”


그 한마디 안에는 오래 눌러둔 감정이 묻어 있었다.


“어릴 땐 별생각 없었어요. 다들 그런 줄 알았거든요. 근데 크면서 알게 됐죠. 남들이 말하는 보통 가정이 우리 집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그녀는 허공을 바라보며 무언갈 생각하는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아버지는 저를 볼 때마다 어머니 이야기를 했어요. 제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이 떠오른다고.”


“...어머니께선?”


“저와 아버지를 두고 떠나셨어요. 제가 아주 어릴 때, 아주 먼 곳으로.”


짧은 침묵이 흘렀다.


“화성으로요.”


그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둔탁한 종소리가 울리는 듯했다. 미즈오는 아무렇지 않게 이어 말했다.


“아버지 말로는, 그 계단 끝에 있는 신사에서 어떤 남자를 만났대요. 그 사람과 함께 떠났다고. 아무런 말도 없이.”


내 머릿속에 불쾌한 가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가설은 거의 확신처럼 느껴졌다. ‘군마현 언덕 위 신사에서 만나, 화성으로 떠난 남녀.’ 그건...


나는 최대한 표정을 숨겼다.

“...힘드셨겠네요.”


“네. 하지만 어릴 땐 그냥 그게 인생인 줄 알았어요. 술 취한 아버지가 신사 앞에서 소리 지르고, 돌아와선 저를 때리고... 그 속에서 버티는 게 전부였죠.”


그녀의 시선은 한층 더 먼 곳을 향했다.


“아버지는 술에서 깨어나면 울었어요. 미안하다며. 하지만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해 또다시 술을 마셨죠. 어쩌면... 제 삶도, 아버지의 삶도, 오래전부터 그 신사처럼 모두 타버린 걸지도 몰라요.”


긴 침묵이 흘렀다. 젓가락 끝으로 야키소바를 괜히 뒤적이며 무슨 말을 꺼낼까 고민했지만,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가 먼저 고개를 들었다.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했죠. 오랜만에 꺼내다 보니... 듣는 사람 입장은 생각 못했네요. 실례했습니다.”


그 모습에 나는 또 어색하게 손짓을 하고 말았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미즈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죄송하지만, 하나만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상하게도 거절할 수 없었다. 마치 모에카 부모님의 과거를 내가 대신 짊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때로는 ‘진실을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묵직한 죄책감이 내려앉는다.


“네, 어떤 부탁이죠?”


그녀의 시선이 구석에 놓인 휠체어로 향했다.

“오랜만에 무거운 얘기를 하니… 바람이 좀 쐬고 싶어졌어요. 혼자서도 가긴 하지만, 밖은 산길이라 제겐 위험하거든요. 조금만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 역시 이 무거운 이야기들 듣느라 바람이 쐬고 싶어졌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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