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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mita Nov 29. 2022

ADHD인데요, 서울대 치대생입니다

ADHD 서울대 치대생의 브런치 시작 

저는 ADHD입니다. 그런데 서울대 치대생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치의학과 본과에 재학 중인 ADHD 대학생입니다.


'ADHD'와 '서울대', 그것도 '치대'는 상당히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내가 ADHD가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을 때,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서도 아예 부정하거나 납득하지 못하셨었습니다. 저조차도 확신하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ADHD가 맞다는 것을 스스로 확신하게 되고, 정신과 전문의가 '심각한 수준의 ADHD'라고 직접 인정한 이후에도 제가 ADHD라는 것에 대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없어도 될 병 굳이 찾아서 만드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하셨고, 

주변 친구들도 처음에는 쉽게 납득하지 못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ADHD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또한 '서울대 치대'라는 타이틀과 ADHD을 향한 흔한 편견 사이의 괴리감에 의해서도 발생했습니다. 


인생 처음 방문한 정신과에서 '어떻게 서울대 치대생인데 ADHD 검사 결과가 이렇게 나올 수 있느냐'면서 재검사를 권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로 ADHD를 이유로 정신과를 방문하기까지 거의 1년이 더 걸렸습니다. 물론 그분의 잘못이라기보다는 ADHD 검사 도중에 계속 졸아서 저 스스로도 그 검사 결과를 믿을 수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참 ADHD 스럽지 않습니까. 우리 ADHD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와 사건들로 가득 찬 삶을 계속 살아가게 됩니다. 


작년 여름 ADHD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 지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정말 'ADHD 스러운' 사건들로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시간을 보내며 점점 ADHD에 대해서 깊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ADHD가 얼마나 내 삶을 망치고 시련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있었는지,

내가 남들과 얼마나 다른 삶을 살아오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ADHD를 완전히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적어도 여러 도구들을 통해 조절하면서 내 삶의 무기로 활용하는 방법을 점점 터득하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ADHD로 고통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인 ADHD 커뮤니티에 글을 쓰고 여러 사람과 소통하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ADHD 진단을 받고 각자의 인생을 어떻게든 바꿔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체감했습니다. 제가 쓴 글로 많은 분들이 감사하게도 공감을 해주시고, 좋은 조언을 얻었다고 반응해주실 때면 그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는 보람과 뿌듯함에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습니다. 브런치에서 ADHD를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이기도 합니다.


비록 예전에 비해 점점 나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만은, 여전히 ADHD에 대한 무지로 본인이 ADHD인지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제 주변에도 ADHD가 거의 확실한 사람들이 몇몇 있습니다. 주제넘게 나설 용기가 없어 바라만 보고 있지만 ADHD라는 빌어먹을 인생의 근본적인 원인만 진단한다면 훨씬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만 가지며 지켜볼 따름입니다.


아무리 못해도 전 인구의 5%는 ADHD라고 합니다. ADHD 진단을 받은 사람의 비율과 비교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지의 고통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ADHD가 아닌 사람도, ADHD 중에서 진단받지 못한 사람과 진단받은 사람 모두 ADHD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ADHD가 얼마나 사람의 인생에 전방위적, 복합적, 다층적으로 깊이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 영향의 양상은 어떻게 내 삶에 나타나는지, 왜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다면 ADHD에 대한 진지한 문제의식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ADHD로 인해 망가진 뇌기능과 인지기능, 정서를 치유하고 개선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전략들이 존재하는지 안다면 아마 놀라실 것입니다. 저 또한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많은 전략을 통해 제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시켜 왔습니다. 물론 ADHD가 없는 '평범'한 사람과 똑같이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 지점을 인정한 후 삶을 바꾸기 위한 여정을 시작해야 합니다. 


사실 브런치에 이 글을 쓰고자 마음먹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본인이 ADHD임을 밝히는 것이 사실 쉬운 선택은 아닙니다. '서울대 치대'를 좁은 사회의 특성상 제가 누구인지 금방 들통날 것이 뻔하기도 할뿐더러, 일종의 장애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 자체가 상당한 용기이지요.

하지만 ADHD가 인생 전반에 거쳐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지를 몸소 체감한 한 명으로서, ADHD를 극복하고 내 삶의 무기로 활용하기 위한 방법을 알고 있다면, 그것을 알리고 나누지 않는 것 또한 일종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더욱이 미래의 의료인으로서 내가 나서서 치유하고 개선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머뭇거리지 않는 것이 일종의 사명감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외국의 경우와 달리 아직 한국에는 실제 ADHD의 경험에 기반해서 작성된 유용한 글이나 책이 적은 것도 이 글을 시작한 이유입니다. 

물론 저의 글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어리고 부족한 지식을 가진 학생이 치기 어린 마음에 괜한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한편에 있습니다. 바쁜 본과 생활의 와중에 얼마나 많은 글을 적을 수 있을 지도 걱정입니다. 


완벽하게 다듬어진 글이 아니더라도 ADHD만이 경험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시야를 제공하고, 곳곳에 널려 있는 ADHD 생존전략을 직접 실천해본 것 위주로만 소개해드려도 반 이상의 성공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에 브런치를 시작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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