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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mita Dec 01. 2022

네가 어떻게 서울대를 왔니?

ADHD가 서울대를 온 비결?

ADHD임을 굳이 밝힐 필요도 살아가면서 별로 없긴 하지만, ADHD 답게 굳이 나서서 알려줄 때가 간혹 있다. 대화의 맥락을 잘 따라가지 못해 뜬금없는 말을 하는 ADHD적인 순간이다. 아마 ADHD임에도 서울대 치대를 온 나의 노력을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리라. 영어 회화 과외 선생님, PT 헬스 트레이너, 친구 등등 적지 않은 사람에게 나의 ADHD를 커밍아웃(?)하였는데 그때마다 공통적으로 돌아오는 질문이 있다.


"ADHD인데 어떻게 서울대 치대에 올 수 있었니?"


이 질문은 ADHD가 아닌 일반인들이 가지게 되는 가장 큰 의문이겠지만, 사실 ADHD에 대한 가장 큰 오해를 함의하고 있기도 하다. ADHD는 집중력이 떨어지고 머리가 나빠서 대단한 성취를 이루지 못한다는 오해일 것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일단 ADHD는 남들에 비해 절망적인 집중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맞다. 하지만 본인이 흥미 있어하는 일에 대해서는 과도할 정도로 집중하고 몰입하는 것 또한 ADHD의 한 단면이다. 내가 좋아하는 비유이기도 한데, ADHD인들은 '페라리 엔진에 고장 난 자전거 브레이크'를 뇌에 장착하고 있다. 그래서 어마어마한 집중력과 성취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반면, 대부분의 경우 제어와 조절법을 알지 못해 실패와 좌절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또 ADHD는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지능과는 직접적인 연관 관계가 없다. ADHD는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주의 집중력과 자기 조절의 문제이다. ADHD는 사회적 성취를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것 또한 오해이다. ADHD가 가진 창의성과 과감함을 활용해 크나큰 성공을 이룬 동지들이 여기저기 수두룩하다. 비록 비전문가의 섣부른 추측일 수는 있으나 서울대 지인 중에도 ADHD로 매우 의심되는 친구들이 몇몇 있으며, ADHD임이 거의 확실한 서울대 교수님도 계신다. ADHD 전문가인 에드워드 할로웰 박사의 저서에 의하면 교사, 설교사, 군인, 발명가, 스탠드업 코미디언, 자수성가형 억만장자, 퓰리처상, 노벨상, 아카데미상, 에미상 수상자까지 다양하다고 하다. 더 친숙하게는 과거 무한도전 정신감정 특집에서 노홍철과 박명수도 ADHD를 감정받지 않았었던가.


그렇다고 해서 ADHD가 서울대 진학에 특별히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간혹 ADHD가 천재가 가지는 기질 비슷한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다. 개인적인 소감을 이야기하자면 천재 중 ADHD가 있고 ADHD 중 천재가 있는 것이지, ADHD가 특별히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ADHD를 가진 것이 인생에 좋을 것은 사실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ADHD만이 가질 수 있는 강점과 특기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ADHD에 의한 단점과 악영향에 전혀 비할 바가 아니다. 우리가 가진 disorder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대안을 만들어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ADHD가 가진 힘에 집중하는 것에 가깝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은 ADHD의 특성인 과몰입이 여실히 발현된 세월이었다. 우리는 일차원적으로 꽂힌 취미나 동기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에 미친 내가 그랬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부보다는 타인을 압도하는 성적 취득과 명문 대학 진학에 광적으로 미쳐있었다. 중고교 6년 동안을 사적인 친구관계, 제대로 된 취미활동 없이 오로지 공부만을 바라보면서 살아갔었다.


재밌는 것은, 공부 이외의 다른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다고 해서, 꾸준히 열정적으로 공부를 했던 모범생의 삶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하루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 빼고 남는 시간 동안 공부하겠다고 계속 자학하면 그중 몇 시간은 건져서 억지로 공부를 하게 되는 격이었다. 실제로 고등학교 시절 동안 꾸준히 공부를 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2주일 정도 몰아쳐서 공부를 하면 어느 순간 뇌에 스위치가 꺼진 듯이 2-3주간 거의 공부를 하지 않았다. 고1 때는 2-3개월 동안 무기력하게 공부를 거의 하지 못했던 기억도 난다. 고 3 올라가는 겨울 방학 때도 우울감과 무기력에 빠져 별다른 공부를 하지 않고 게을리 지냈었다. 뒤늦게 안 사실인데 당시 우리 아버지는 어머니께 '저 놈 재수시킬 준비하고 있어라'라고 체념한 듯 이야기하셨다고 한다.


그와 별개로 내 성적은 늘 우수했었다. 대학 입학 후 학점과는 별개로 나도 여느 서울대생들과 마찬가지로 한때 화려한 성적 스펙을 지닌 우수한 학생이었다. 학교에서는 늘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고 3년 총 내신은 1.0X이다. 수능에서는 절대 평가인 영어를 제외하고 전과목에서 5개 틀린 수준이었으며 그중 한 과목은 전국 석차 0.02%이었다. 이 것을 보고 재수 없다, 기만자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ADHD를 가진 사람이라면 내가 나의 실력과 성적을 믿고 일부러 공부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나의 의지와 별개로 뇌와 몸이 따라주질 않은 결과임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네가 공부 안 한 이유가 이미 다 끝내 놓고 안 한 것이구나'라고 계속 말씀하셨는데 ADHD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말씀이시다. 성적이 잘 나올 것을 알고 공부를 안 한 것이 아니라, 공부를 했다 안 했다를 반복하며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었다.


사실 좋은 성적이 나온 것은 몰아쳐서 집중하는 데 부족한 내가 다행히도 부모님의 지도 덕에 중학교 때부터 주요 과목 선행을 해 놓은 것과 내가 대한민국 입시의 객관식 문제 풀이와 상당히 잘 맞는 지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덕택이 크다. 내가 언젠가 이야기를 할 텐데 나는 작업 기억력 부족으로 암기력이 소위 말하는 '젬병'이다. 하지만 '창의성'에 있어서 만큼은 그 누구에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이 능력이 객관식 문제풀이 공부 스타일과 잘 맞았던 것 같다. 덕분에 대학 온 이후로는 많은 고생 중이다.


결정적으로 여느 서울대인들이 그렇듯이 부모님께 받은 어느 정도 타고난 두뇌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대학 와서 더욱 깨닫고 있다. 공부는 유전이라는 것을. 심지어 노력조차도 말이다. ADHD이기에 더 자신스럽게 말할 수 있다. 유전적인 문제가 있다면 후천적 노력으로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ADHD가 내게 준 축복이 있다면, 내가 성취한 모든 것에 교만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안내해주었다는 것이다. 오로지 나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닌 다양한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하여 얻어낸 것임을 알고 나면 사소한 것에도 참 감사하게 된다. ADHD라서 정말 힘겹게 여기까지 오게 된 경험은 남들은 나 같은 시행착오를 덜 겪기를 바라면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법과 길을 제시해주고자 하는 동기를 갖게 한다. 서울대 등 명문대라는 이유로 ADHD 진단을 미루는 과거의 나 같은 사람들, ADHD에 대해 오해를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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