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ramita Dec 03. 2022

천방지축 전교 일등 ADHD

전혀 평범하지 않았던 전교 일등의 모습

'전교 일등'

  그것도 대한민국 고등학교에서의 '전교 일등'이 갖는 위상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그 덕택에 여러 명문대학의 상위 과를 합격할 수 있다면 더더욱 말할 필요가 없다. 비록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학벌 위주의 사회라고 오랫동안 불린 대한민국의 현실을 감안하면 말이다.


'전교 일등'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규칙과 관습을 잘 따르는 조용한 학생, 꾸준히 예습과 복습을 실천하는 모범생 등등이 연상될 것이다. 하지만 ADHD에게는 전혀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었다. 나름 성실하고 꾸준한 모습을 보였냐 묻는다면 'YES'라고 답할 것이나,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번듯한 이미지는 아니었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고교 동창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 때문에 '서울대는 다 저런 미친놈들만 가는 줄 알았다'고 하더라.  고등학교에서도 '미친 돌아이'으로 정평이 나있었고, 학원 영어 강사 선생님께서도 뒤늦게 회고하시길 '몇 안 되는 연구 대상' 중 한 명이었다고 밝히셨다. 저 멀리 어린 초등학교 6학년 시절에는, 당시 담임 선생님께서 나더러 공개적으로 '공부 잘하는 학생의 이미지를 깨뜨려준 학생'이라고 말하니 반의 모든 친구들이 웃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난다.


물론 오로지 ADHD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며 모든 ADHD가 나와 같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ADHD에도 몇 가지 유형이 존재한다. 과잉행동-충동형, 주의력 결핍형, 혼합형의 3가지 유형이 있는데 나는 과잉행동(Hyperactivity)과 주의력 결핍(attention deficit)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혼합형이었다. 혼자 있을 때 부주의하고 산만한데 남들 앞에서 온갖 오버 액션과 미친 짓을 하니 얼마나 돋보였었겠는가.


다른 '정상적'인 의치대 사람들이 들으면 무슨 미친 소리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내 인생에서 가장 평온하고 안정적인 시기는 본과 시기다. 그 이전에는 나의 ADHD를 진단받지 못했고, ADHD가 전방위에 걸쳐 내 삶을 파괴해가는 것을 방치하고 있었다. 특히 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은 나에게 일종의 지옥 같았다. 무슨 교도소 마냥 생긴 학교 건물에 획일화된 죄수복 같은 교복을 입고 어떠한 흥미도 느껴지지 않는 수업을 계속 듣는 문제는 그렇다고 치자. 문제는 그런 외부적 상황과 관계없이 내가 나를 계속 잠식하며 목을 조여갔다는 것이다.


남들의 시선으로는 단순히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당시 나는 ADHD가 유발할 수 있는 온갖 악영향과 공존질환에 시달리며 살아갔다. ADHD 그 자체보다도 전교 일등의 성적을 유지하기 위한 시도와 노력이 나를 더욱 그렇게 몰아갔다. 진단과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ADHD가 인생의 중요한 도전과 노력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재앙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것과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불안, 우울, 낮은 자존감, 잦은 실수, 대인 관계의 문제, 공황, 자기혐오, 자기모멸, 난독증, 청각 난독증, 귀찮음을 넘어 병적이었던 미룸, 때때로의 극단적인 사고와 자살 충동

지금 돌이켜 보면 어떻게 저 기간 동안 정신과 한 번 가볼 생각을 못했던 것인지 신기하기만 하다. 나의 과잉행동성이 남들 시선에 개그맨, 광대처럼 비칠 동안, 내면은 저 많은 고통들로 쑤셔지고 있던 것이었다. 당시의 나는 내가 '남'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만 있었을 뿐 그것이 병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단지 '성격'의 문제로만 여기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의 높은 성적도 그런 측면을 더 부추기지 않았나 싶다. 그냥 머리 좋은 놈이니까 지능이나 뇌에 문제가 있기보다는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머리가 돌아버린 놈' 취급을 받지 않았나 싶다.


Self regulation이 병적으로 부족한 adhd의 단점을 그대로 갖고 있던 나는 내신 기간 중 한 주는 아예 공부 안 하기 일쑤였으며, 공부도 했다 안 했다 계속 반복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공부를 안 하는 것'이었다. 주변에 말하면 부모님도 친구들도 선생님도 재수 없다고만 한다. 정확히 말하면 '공부를 안 하는 것'이 아닌 '공부를 계획하고 시작하고 실행하는 능력이 극도로 낮은 것' 즉 비정상적으로 낮은 실행기능이었다. 성적은 잘 나와도 그 과정은 내게 고통이었다. 글을 5분 이상 쓰거나 읽으면 과도로 내 양쪽 머리를 찌르고 휘젓고 가르는 고통이 느껴졌다. 학원에서 수업을 들어도 특유의 청각 난독증 때문에 영어 수업 1시간 20분 중 1시간은 계속 다른 생각을 하거나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이기 십상이었다. 때로 분출하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해 학교 교실과 심화반에서 과잉행동을 일삼았다. 심장이 터질 듯한 고통을 안고. 대인 기피증은 기본으로 쭉 달고 살았기에 고1 때까지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고2 때부터 우연히 친구들과 사귀고 대화함의 행복을 느끼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일말이라도 관심이 없거나, 배경지식이 없는 주제의 대화만 나오면 맥락도 내용도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 대화는 안개로 뒤덮인 미로에서 헤맴으로 비유가 가능하다. 부족한 작업기능능력으로 드러나는 난독증은 청각에서 더 두드러졌다. 보통 친구와 오래 대화하면 난 들어주는 스타일이었다. 왜냐고? 이해를 못 하니까 듣는 척만 하는 거다.


지금 그 순간을 회고해보면 '좀 더 일찍 ADHD임을 알았다면 훨씬 더 삶이 편안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불행한 인생을 원인도 모른 채 오래도록 살아왔던 것에 대한 회한이랄까. 다시는 그 당시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본과의 인생을 몇 번이고 더 살면 살았지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 힘든 시절을 어떻게든 버텨내고 이 자리까지 온 과거의 나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이미 과거는 지나간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떻게 현재와 미래를 건설적이고 긍정적으로 설계하고 살아가느냐일 뿐이다. 과거의 아픈 기억에 너무 매달리기 보단, 당시의 힘들었을 나를 위로하고 보듬어주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그리고 막말로, 저렇게 살면서도 서울대 치대면 누구나 인정할 만한 것 아닌가? 마무리 문장은 이목을 끌어보려고 자극적으로 적어보았다. 대면으로 만나면 저런 이야기 낯간지럽게 안 하니 걱정하지 마시라.



 

 

매거진의 이전글 네가 어떻게 서울대를 왔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