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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mita Dec 25. 2022

힘들었던 ADHD 인간관계

지옥 같았던 adhd의 인간관계 회고

"만약 ADHD 증상이 계속되면 학습장애, 강박장애, 틱장애, 불안장애, 우울증, 품행장애 등이 동반될 수 있어 자존감을 잃기 쉽다. 사춘기까지 이어지면 반항과 품행장애로, 성인까지 이어지면 우울증과 사회부적응 등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조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 글을 작성하기 위해 참고한 신문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여러 번 곱씹어 볼수록 '어떻게 지난 나의 인생을 저렇게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있는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오히려 이 기사의 문장은 나의 지옥 같았던 삶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하고 극히 일부만 보여줄 뿐이다. 저기 있는 장애 중 아마 틱장애 제외하고는 거의 웬만하게 겪어 보았고 그 때문에 고생도 많이 했었다. ADHD와 만나 치료를 시작하기 전 내 인생의 대부분은 행복과 평범함이라는 단어와는 괴리된, 불행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불행과 고통의 구렁텅이에 날 몰아넣은 주된 원인은 당연히 인간관계였다.


충동성, 부주의, 급격한 감정 변화, 잦은 건망증, 과잉행동, 불안, 우울증, 강박 등 인간관계를 망치는 온갖 재료들은 ADHD 뇌에 버무려져 있다. ADHD를 알기 전까지는 내 인간관계가 왜 이렇게 늘 엉망인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타인도 겉으로 티만 내지 않을 뿐이지, 다 나와 같으리라 믿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기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21년이 걸렸다.


돌이켜 보면 나의 빌어먹을 과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었던 첫 번째 기회가 있었다. 바로 4-5살 어린 시절. 기억의 희미한 단편조차 거의 남지 않은 시절이지만, 당시 부모님은 나 때문에 꽤 많이 속을 썩이셨다고 했다. 5살이 되었는데 말을 거의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어린이집에서는 병원에 방문해 어디 문제는 있지 않은지 검사해보는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우리 어머니는 우셨고 우리 아버지는 완강하게 반대하셨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내 아들이 어디 문제 있을 리는 없다고 말이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도 5살 즈음 내 말문이 정말 갑자기 느닷없이 트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정말 말이 많았다고 한다. 부모님이 싫증 낼 정도로 말이다. 어디 놀러 오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찌 그렇게 말이 많은지 지겨울 정도였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자랑스럽게 이 일화를 내게 풀어놓으셨지만, ADHD을 진단받고 ADHD에 대해 꽤 나름 찾아보고 이해하게 되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그리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은영 박사님께서 방송에서 하신 말씀에 의하면 만 3세를 기준으로 명확하게 언어발달이 지연되어 있다면 기다리면 안 된다고 한다. 반드시 전문가의 진단이 필요하다고 한다. 물론 당시는 지금보다도 정신과나 ADHD에 대한 인식이나 이해가 떨어졌을 시기이고, 우리 아버지 또한 많은 고민을 하고 내린 결정이었을 테니 원망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ADHD 의심 자녀를 둔 부모 혹은 본인이 ADHD인 부모가 계시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을 것을 권유드린다. 왜냐면 내 인생은 내 언어 지연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었던 귀중한 기회를 날림으로써 그 이후 20여 년을 지옥 속에서 보냈어야 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2-3학년 때에는 직접 담임 선생님에게 전학 권유를 받기까지 했었다고 한다. 물론 나의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일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부는 잘하지만, 반 친구들에게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억울하기도 했을 것이다. 다른 친구들이 왕따를 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과 어울리지 못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인데 그것을 꼭 왕따라고 표현을 했어야 했는가. 물론 그즈음 피아노 학원에서 '왜 나는 친구가 없는 걸까...' 하면서 남몰래 울었던 기억이 생생히 나는 것을 보면 정말 왕따가 맞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3학년 담임 선생님께서는 공부를 잘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얘 왕따니까 어떻게든 조치를 취하셔야 한다고라고 직설적으로 말하셨다고 한다. 나중에 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빌리자면 참 싹수가 없었다고 한다. 지금 이 학교에서는 나 혼자서만 공부를 열심히 하니까 소외되지만, 다른 공부 잘하는 동네에 가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니까 인간관계 어려움을 덜 겪을 것이니 전학 권유를 받은 것이다. 부모님께서는 나와 대화도 하면서 많은 고민 끝에 결국 전학을 보내지 않기로 하셨다. 아버지와 직접 다른 도시까지 며칠을 걸으면서 대화를 했었는데 내가 공부에 대한 뜻과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아버지께서 깨달으시고 결국 본인에게 주어진 상황을 스스로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자식을 믿어보겠다고 결심하셨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께 참 감사하다. 내가 왕따를 당한 원인이 '공부를 열심히 한데'서 있었던 것이 아니라 'ADHD가 공부를 열심히 한데'서 있었던 것이므로 학업 열기가 높은 동네에 간다고 했더라도 내 인간관계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소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또 어떠한 시련이 있어도 내가 이겨낼 수 있다는 에너지와 신념을 읽으시고 믿어주신데 참 감사함을 느낀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힘든 시절의 경험들이 ADHD 발견 이후의 삶에 너무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렇게 ADHD스러운 초등학생 시절을 보내고 난 뒤 중학교 3년의 세월이 다가왔다. 솔직히 말하면, 중학교 3년 동안의 세월은 내 기억 속에 거의 남아있지 않다. 공부를 했던 것인지, 놀았던 것인지, 무기력하게 허송세월을 보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사춘기와 ADHD와 결부되어 삶에 많은 악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확실했던 것은 중학교 3년 동안에도 친구가 없었다. 친구들과 어디 놀러 간 기억, 피시방에 간 기억, 운동한 기억 아무것도 없다. 노래방은 3년 동안 2-3번은 가긴 했었던 것 같다. 확실한 아싸의 삶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은 또 다른 좌절의 반복과 기회의 시작이 겹친 시기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지역의 수학 학원 심화반에서 너무 공부를 안 해서 1년 동안 배운 내용을 뒤로하고 1년 아래 과정을 다시 배우게 되었다. 몇 개월 째 수업동안 무기력하게 다른 짓만 하고 한숨만 쉬고 있으니 학원 선생님께서 내린 결정이셨다. '내 인생은 왜 또 이러지...' 내 인생 내내 반복된 생각을 다시 촉발한 방아쇠 같은 사건이었다. 하지만 나의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기회였다. 수업을 1년 꿇게 되면서 처음으로 내 또래 친구들과 동시에 수업을 듣게 된 것이다. 심지어 지역 학원이었어서 대부분이 나와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이었다. 서울대스럽지 않은 경험이지만, 그 친구들과 함께 수업 농땡이 치면서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기들이 몇 번 있는데 그중 첫 번째가 그 친구들과 같이 어울린 첫 한 달이었다. 수업을 농땡이 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5-6명 친구들이 함께 노래방에서 1-2시간 노래를 부르는 것이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준다는 것을, 스트레스받고 답답할 때는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풀면 가슴이 뻥 뚫린 듯 상쾌하다는 것을, 모두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즈음부터 내 사회성이 현격하게 좋아졌다.


주변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회성, 싹수없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살던 돌아이 전교 일등이, 친구들과 어울리고 사회성과 인성부터 달라지기 시작하니 주변에서 친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막 생겨났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모두에게 인정받는 능력과 지위를 갖춘 사람은 본인이 마음만 먹는다면 인간관계 형성도 훨씬 용이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경험이다. 나를 움직이고 만족시키는 가장 큰 욕구 중 하나가 인정 욕구인 것이 이와 같은 경험에 기인할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ADHD가 인정 욕구에 목말라 하는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 아닐까. 관계에서의 실패에 대한 오랜 경험의 누적이 일종의 욕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계속 새로운 일을 만들어 내서 인정을 받고, 나의 가치를 존중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많은 ADHD는 암울한 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달라진 나의 인간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다. 역시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어느 날 한 반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작년에는 소문만 듣고 너 완전 인성 파탄인 애인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직접 어울려보니까 너 진짜 좋은 사람인 것 같아." 그 옆에 있던 다른 친한 친구가 "XX아, 너 잘 모르는구나? 얘 진짜 인성 파탄이야~"라고 초치지만 않았으면 더 완벽했을 순간이다. 그 이후 3일 동안 얼마나 그 말 한마디로 행복했는지 모르겠다.


많은 ADHD, 어쩌면 대부분의 ADHD는 인간관계에서 큰 어려움을 겪는다. 비 ADHD 혹은 ADHD 성향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은 가져'라고 치부해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차(車), 포(包) 없이 장기를 두는 사람에게 원래 장기는 어려운 거야라고 말하는 격이요, 손 하나 없이 막노동하는 사람에게 막노동은 원래 다들 힘들어하는 거니까 별거 아니라고 말하는 격이다. ADHD는 나의 경험, 그리고 과학적 연구 결과에 의해 인간관계에 명백한 어려움을 만들어 냄이 밝혀져 있다. 하지만 나의 사례를 통해서 알 수 있듯 사람과의 '연결'은 그 자체로 ADHD의 강력한 치유제이다. 타인과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나의 ADHD 증상이 촉발한 반사회성, 외로움, 자살 충동 등이 많이 개선되었다.


대학교 시절엔 어땠냐고? 고등학교 시절보다 훨씬 나은 인간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변화는 역시 ADHD 진단을 받은 이후이다. ADHD라는 빌어먹을 내 과거의 근본적인 문제를 발견하고 치료를 시작했을 대 인생 전체가 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는 오래전부터 아버지께서 나를 믿어주시고 스스로 판단하고 해결하고 버틸 수 있는 힘, 그리고 연결을 통해 알게 모르게 높아진 자신감과 자존감에 기인하였다. ADHD임을 몰랐을 때도 이 정도만큼 해냈는데, 이제 더 이상 못할 게 무엇인가. 인간관계에 있어 완전 바닥부터 시작한 내가 누군가를 잃을까 두려워서 벌벌 떨까. 물론 아예 그러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경험에 기인한 자신감이 존재한다.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ADHD 동지들에게 말하고 싶다. 사람과의 '연결'을 끈을 놓지 말라고. '연결'은 약물, 공부, 운동, 상담, 명상 등 다른 ADHD 치료 기법과 함께 그 자체로 강력한 치유제이다. 그동안 내 인간관계가 비관적이었다고 생각한다면 실제로 그랬던 것보다 내 마음이 부정적인 탓이 더 클 것이다. 긍정적인 마음을 갖자. ADHD가 내 인생을 쑤시고 고통스럽게 했을 때조차도 난 이만큼 살아왔다. 나의 인간관계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괜찮다. 나쁘지 않다. ADHD 치료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더 올라갈 일만 남았다. 내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ADHD를 근본적으로 치유하기 시작하면 삶의 모든 것이 좋아진다. 타인과의 관계를 힘들게 했던 청각난독증, 대인기피, 부주의, 충동성, 지나친 타인 의식과 인정 욕구, 결핍 등 모든 측면이 개선된다. 그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만족과 행복, 편안함을 얻을 수 있다.


ADHD 친구를 둔 비 ADHD인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ADHD인의 내면은 고통스럽다고. 우리의 노력과 의지 여하와 관계없이 반복되는 실수와 잘못은, 스스로를 더 괴롭힌다고. 비 ADHD인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타인과 함께 있음에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질감과 단절감은 우리를 너무 외롭게 한다고. 진정한 이해를 바라지는 않지만, 최소한 우리가 그대들과 다른 존재라는 사실만은 알아달라고.



<참고 자료>

 "성장기 아동 ADHD 방치땐 언어발달 지연 초래할 수도" < 기타 < 뉴스 < 기사본문 - 메디소비자뉴스 (medisobiz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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