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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mita Jan 14. 2023

ADHD의 서울대 합격 스토리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던

고3 시작부터 대학 합격까지, 그 모든 순간이 ADHD였다.


서울대 치대에 합격하기까지 나의 일대기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합격했나 싶을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는 생각, 행동, 결단의 연속이었다. 수능 가채점 끝난 직후의 작은 소동(?)까지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냥 딱 ADHD 그 자체였다.


고3 내내 지방 일반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었다. 성적과는 별개로, 그 외의 능력은 처참하다는 말로 다 표현 못할 정도였다. '어떻게 이런 놈이 전교 1등을 하는 거지?'라는 자연스러운 의구심이 들게 하는 것이 바로 나라는 존재였다.


전교 1등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단 한 번도 의대를 꿈꿔 본 적이 없다. 이유는 너무 단순하다. 그냥 과학이 싫었다. 과학은 내가 가장 혐오하는 과목이었다. 입시 수학 문제풀이를 재밌어해서, 취업 걱정이라는 현실적인 걱정 때문에 이과에 갔을 뿐이었다. 의대를 가지 않는 것을 넘어서 난 대학을 문과 계열인 A대학으로 진학할 생각을 굳게 먹고 있었다. A대학은 이과도 지원할 수 있는, 명문 문과계열 대학이었다. 철학, 인문학, 역사를 너무도 좋아했다. 이과가 나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고, 의대만큼은 죽어도 가기 싫다는 것이 당시 나의 신념이었다. 주변의 다른 전교 1등들 모두 의대 진학을 희망한다는 사실은 그런 생각에 더욱 부채질을 했다. 남들과 다르고 싶었다. 고등학교 2학년 생활기록부 진로 희망사항에 '융합 인문학 강사'라고 기재한 것을 본 고3 담임선생님의 어이없는 표정을 난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유를 모르겠는 욕 얻어가며 억지로 '기계공학자'라고 수정한 것 덤이다.


나의 행태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중증 ADHD의 머릿속을 일반 사람의 생각으로 이해하려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   


ADHD의 특징 중 하나가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에는 누구보다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야에는 놀랄 정도로 무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시 나는 '성적'과 'A대학' 외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살짝 부끄러울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의대, 치대 입결이 공대보다 높다는 것을 고3 원서 접수철에 처음 알았다. 그제야 전교 1등들이 보통 의대를 지원한다는 현실을 처음 체감했다. 고3 입시철에 담임선생님께서는 본인의 지망 대학 및 과를 작성하게 하셨다. 'A대학' 이외에는 관심도 없어서 상위 6개 대학의 아무 공대 이름 막 적어서 제출했을 때 담임 선생님의 어이없던 표정을 여전히 잊을 수 없다. 그분도 이런 놈 처음 보셨을 거다. 지금 생각하면 고3 담임 선생님도 고생 참 많이 하셨을 것 같다.


대체 어떻게 서울대 치대를 지원하게 된 거냐? 이쯤 되면 궁금할 것이다. 그 답도 간단하다. 담임 선생님과 아버지께서 쓰라고 하셨다. 담임 선생님께서 당시 주변 선생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대 치대 지원을 강력 권유하셨고 아버지께서 이를 들으시고 결단하신 일이었다. ADHD 자녀를 둔 부모님께서는 부모님의 인도와 지원이 어떻게 ADHD 자녀의 인생을 바꿔 놓는지 그 역사의 현장을 읽고 계신 중이시다. ADHD 진단을 받지 못한 시절 나는 정말 대책 없고 충동적이었다. 주변 분들의 적절한 인도가 없었다면 난 정말 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다. 자신만의 길을 찾기 전의 ADHD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필요로 한다.


웃긴 건 6개 지망 대학 중 서울대 치대를 제외하고 5개는 전부 의대를 지원했다. A대학 제외하고 지원할 만한 문과 대학이 없었다. 그리고 5개 의대 모두 설령 붙는다고 해도 전혀 갈 생각이 없었다. 그냥 합격 현수막을 걸면 멋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6개 대학 뭐라도 채워야 했길래 내 성적 대에서 안정적으로 합격 가능한 높은 대학 학과를 선택한 것이었다. 내가 글을 작성하면서도 과거의 나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 '예과'와 '본과'라는 개념도 서울대 치대 진학 후 처음 알게 되었다. ADHD라는 게 참 그렇다.


수능을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잘 보았다. 나의 역대급 성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절대평가였던 영어를 제외하고 전체에서 5개를 틀렸다. 심지어 당시 역대급 불수능이라고 불리던 국어는 상위 0.02%인 만점을 받았다. 수능 전날까지도 미룸과 부주의적 ADHD 증세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던 내 입장에서는 정말 운칠기삼 그 자체였다. 원래 그 정도 성적까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도 ADHD 해버렸다는 점이다. 그날 피시방에서 가채점을 끝내고 너무 기쁜 나머지 학원에까지 자랑하러 다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날 막 수능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너무 큰 기쁨에 취해있던 고3 수험생은 말 그대로 방방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말 그대로이다. 포물선 그리는 토끼 마냥 방방 뛰면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ADHD의 'H'는 과잉행동(Hyperactivity) 임을 기억하자. 그런데 하필 재수가 없게도 그날 인도 보도블록 중 딱 한 곳이 비어있었다. 공중에 풀쩍 떠있던 내 발이 땅에 착지하면서 그 빈 공간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관성의 법칙에 따라 내 상체는 앞으로 떠밀렸고 그대로 내 발은 빠드득! 뼈에 금이 가버렸다. 10분이면 걸어갈 집까지 2-30분 낑낑거리며 겨우 도착했다. 그 뒤 한 달간 발에 깁스를 한 채 목발을 짚고 다녀야 했다는 슬픈 이야기이다. 전날 수능을 성공적으로 마친 제자가 깁스를 차고 있는 것을 본 학원 선생님의 '얜 대체 뭐 하는 놈이지...?' 싶은 표정을 난 여전히 잊지 못한다. 덕분에 난 수능이 끝나고도 한 달 내내 친구들과 만나지도 놀지도 못했다.


대학 면접까지도 목발을 집고 다니며 갔어야만 했다. 사실 그때까지도 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높은 수능 성적 덕분에 A대학 합격은 이미 따놓은 당상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치대에 떨어지고 의대만 합격했었더라면 A대학을 선택했을 것 같다. 그런데 서울대 치대에도 합격해 버렸다. 그때 머릿속에 든 생각은 '오... 서울대 간지 나는데? 가자!!'였다. 과학이 싫어서 의대에는 안 간다고 했던 사람이 치대는 간다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자. 당시의 나는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나의 대학생활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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