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정말 많이 성숙해졌다
예과 1학년 신입생 시절 이후 거의 2년여 만에 날 만난 선배가 건넨 말이다. 그 선배가 기억하는 나는 ‘혼돈 그 자체’였다. 그렇게 기억 속에 남아있는 나를 2년여 만에 보았을 때 적잖이 당황한 것이다. 너무 차분해지고 점잖아졌다나.
나를 오랜만에 보는 혹은 오랫동안 보았던 사람들이 흔히 내게 하는 말이 있다. 예과 시절 때와 달리 많이 성숙해졌다는 것이다. 시련과 고난 연속이었던 ADHD 인생을 견뎌내고 ADHD 진단 및 치료의 시작을 통해 얻어낸 긍정적인 변화이다. 그런데 역으로 생각해 보면 문득 궁금해진다. 도대체 과거의 나는 어느 정도로 답이 없는 놈이었던 것인가.
예과 1학년 신입생 시절을 회고하면 당시의 나는 ‘혼돈’ 그 자체였다. 특히 과잉행동(Hyperactivity)과 충동성(Impulsivity)으로 스펙터클한 삶이었다. 대학생이라면 쉬이 공감하실 것이다. 신입생 시절은 가장 자유롭고 흥분되고 설레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인간관계, 환경과 마주해 더없이 불안하고 외로운 시기라는 것을 말이다. 외로움, 공허함, 불안의 틈을 파고든 것은 나의 과잉행동과 충동성이었다.
주량을 모르는 신입생 술자리와 ADHD의 결합은 환장의 조합이다. 과엠티, 동아리 환영회, 번개 등 코로나 이전 신입생 라이프 초반은 술자리로 가득 차 있었다. 술자리 하나하나 다 중요한 줄 착각하던 당시 나는 술자리에서 온갖 기행을 일삼았다. 쓸데없는 개그 본능이 외로움, 과잉행동과 결합되어 과에서 나름 유명한 사람으로 만들었다.(결국 나중엔 다 각자 흩어지지만)
당시 신입생 동기들은 나를 인싸라고 생각했단다. 정말 신입생다운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단체 술자리에서 나는 온갖 흥과 텐션에 맞추고 때로는 그 텐션을 주도했었지만 그 후에 찾아오는 무력감과 공허함에 시달려야 했다. 사람 많은 자리에서의 웃긴 모습은 나의 과잉행동을 억제하지 못한 결과였을 뿐이다. 개인 프라이버시라 상세하게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말하지 못하지만 온갖 이불킥 사건들이 많았다.
서울대에는 (아마 다른 대학교에도) ‘밥약’이란 전통이 있다. 후배가 선배님께 한 번 밥 한 끼 먹자고 부탁하면 선배와 후배가 만나 밥을 먹으면 학교 생활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친목을 다지는 시간이다. 밥약만 거의 10번 이상을 했던 것 같다. 선배와의 만남이 편하지도 유익하지도 않았지만 대학에서는 선배와의 관계가 필요하다는 강박에 시달려 충동적으로 이 사람 저 사람과 밥을 먹었다. 결국 남는 관계는 거의 없었다.
여행도 정말 충동적으로 다녔다. 고삐 풀린 망아지 마냥 이 약속 저 약속 잡고 다니고 방학 때는 이곳저곳 여행을 잡아놓았다. 2주가량 혼자 유럽 여행을 떠났다. 떠난 계기는 간단하다. 고등학교 친구가
‘갈까?’하고 나는 ‘그래 가보자!‘. 그 친구가 못 가게 되었다고 했을 때는 ’그럼 혼자 갈까?‘해서 혼자 갔다. 스위스 숙소의 경우 출국 하루 전에 예약했고 공항 경유지에서 처음으로 숙소 이외 여행 계획을 짤 정도였다.
과잉행동과 충동성으로 얼룩진 생활이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긍정적일 땐 한 없이 긍정적이다가도 부정적일 땐 끝없이 부정적으로 변하는 기분 변화 때문에 1학기 만에 번아웃이 온 것이다. 2학기 동안에는 그저 조용히 살 따름이었다. 별 다른 일을 벌이지 않았었는데 매우 편안했던 시기였다.
물론 치료되지 않은 ADHD 기질은 적군처럼 잠복해 있어 삶을 구렁텅이에 빠뜨릴 준비를 늘 마치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폭풍 전의 고요를 의심 없이 만끽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