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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mita Jan 26. 2023

연애, 동아리 회장, 그리고 우울증 시작

도전하는 ADHD는 고통스럽다

ADHD임에도 나름 편안하게 대학 생활을 보내왔다. 이는 예과가 성적 부담이 없었기에 가능했다. 예과는 공부하기 싫어했던 나에게 좋은 핑곗거리였다.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뿐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동기들과 나의 공부 능력 차이는 날 종종 괴롭혔다. 다른 동기들은 아무리 공부를 안 해도 수업을 듣고 이해를 한다. 전날 벼락치기로 어느 정도 성적을 낸다. 하지만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내로라하는 교수님들께서 직접 심사하시면서 합격을 한 나였다. 그러나 어떤 수업을 들어도 그저 귀에서 귀로 빠져나갈 뿐이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벼락치기를 해서 머릿속에 지식을 저장해 시험장에서 배출하는 동기들이 너무도 신기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머릿속에 지식을 저장해 본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순탄히 이어지던 대학 생활에 재앙을 가져온 두 가지 사건이 갑자기 발생했다. 

첫째는 인생 첫 연애, 둘째는 동아리 회장 발탁이었다. 

이 두 사건에 의해 우울증이 급격히 악화되어 내 인생이 끝없는 하강 나선에 빠져들었다.


연애

연애를 한다는 것이 왜 불행의 시작인지 쉽게 이해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연애란 기본적으로 행복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었는가. 하지만 나의 연애는 ADHD 답게 순탄치 않았다. 오랜 친구 사이에서 연인으로 발전하였지만 친구 사이일 때는 보이지 않았던 상대의 단점과 더불어 나의 단점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연애란 기본적으로 사람의 인생과 인생이 맞닿는 사건이다. 단순한 친구 관계에서는 보이지 않던 상대의 면모까지 알게 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나의 본모습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연애를 통해서 난 내가 그동안 회피하고 파악하지 못했던 나의 단점을 여실히 보게 되었다. 

여자친구와 나의 삶은 근본적으로 무엇인가 달랐다. 그동안 나에게 독서란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이니 읽어도 머릿속에 남는 것이 당연히 없는 활동으로 여겨졌다. 독서란 결국 깨달은 것이 아무것도 없으면서 아는 척하는 활동에 불과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애인은 소설을 읽고 이해를 한다, 책을 읽고 정보를 흡수한다. 이 자체가 나에게는 거대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 대학 수업을 들으면서도 당연히 강연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그런데 내 애인은 대학 수업을 듣고 이해를 하고 있었다. 이 또한 나에게 크나큰 충격이었다. 수업은 듣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얻은 것이 하나도 없는 겉멋치레라고 생각했었다. 연애 상대임에도 계속 알맹이 없는 대화만을 지속한다.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쓸데없는 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결국 나는 끝없는 열등감과 자격지심, 소외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동안 회피해 왔던 나의 낮은 자존감과 함께 내 삶을 더 아래로 아래로 끌어당기는 것이었다. 결국 이 연애를 중단해야 한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나의 뇌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이곳저곳에서 번뜩이며 생겼다 사라지고 부정적인 생각에 휩싸여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즉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하는 상태였다.


동아리 회장

어쩌다 보니 동아리의 회장을 맡게 되었다. 나름 역사와 규모를 자랑하는 동아리였다. 그 책임감에 짓눌려 일을 잘해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동안 부족한 끈기와 주의력이 발목을 잡았다. 업무를 시작조차 할 수 없었다. 병적으로 미루는 증상이 심각했다. 중요한 동아리 업무에 있어서는 설마 그러진 않겠지 생각했으나 천만의 일이었다. 중차대한 일조차 시작을 하지 못했다. 중요한 동아리 업무를 시작하려고 하면 엄습하는 어마어마한 불안감에 손이 떨리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중, 고등학교 시절 내내 겪은 불안, 공황, 강박 등의 재발이었다. 동아리 행사를 위해 연락처를 돌리는 업무를 도저히 시작할 수 없어서 서울대 입구역에서 오이도역까지 지하철을 탔다. 오이도역에서 카페까지 직접 걸어갔다. 그리고 그 카페에서 노트북을 꺼내 들어 업무를 시작하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시작하지 못해 돌아가는 버스 정류장 밖에서 추위에 떨면서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내가 동아리 회장으로서 추진하는 업무의 목표, 방향, 맥락, 내용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기획하고 추진하면서도 이 행사가 무엇인지, 왜 하는 것이고, 어떻게 일처리를 해야 하는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동아리 임원진과 회의 주관하지만 그 회의의 내용이 뭐였는지 결국 까먹어서 나중에 다시 물어봐야 하는 지경이었다. 서울대라는 타이틀과 학벌에 자신만만해 있던 내가 이렇게까지 무능한 사람이었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어마어마한 자괴감이 느껴졌다. 나의 정신은 그렇게 무너져 내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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