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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mita Feb 09. 2023

아들이 ADHD라고 울지 마세요

ADHD 아들이 부모님들께 전하는 말

저는 중증 ADHD이자 서울대 치대생입니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부모님들께서는 'ADHD임에도 불구하고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성공신화에 집중하실 것 같습니다. 특히 본인의 자식이 ADHD라면 말이죠. 내 자식도 저처럼 '노력'한다면 ADHD라는 '장애'를 딛고 '성공'할 수 있다고 믿으실 것입니다. 부모의 노력을 통해 내 자식도 저렇게 성공시킬 수 있다! 믿고 싶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들께서 그러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의 서울대 타이틀은 ADHD임에도 불구하고 얻어낸 값진 성취임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ADHD임에도 고지능을 가진 사람, 출발선상이 앞선 사람은 누구나 인정하는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그런 케이스였습니다. 노력하면 서울대 치대에 합격할 만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후천적인 노력과 시기적절한 운을 만나 인생의 성과를 달성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시련과 고난을 겪었습니다. ADHD 진단을 대학에서 받기 전 인생의 상당 부분은 불행했습니다. 서울대 치대 타이틀을 버릴지언정 두 번 다시 그렇게는 살고 싶지 않습니다. ADHD의 삶이란 그런 것입니다. 


많은 ADHD의 삶은, 특히 한국 사회에서, 성공 신화로 귀결되지 않습니다. 제가 그래왔듯이 어린 시절부터 남들은 공감조차 못해줄 인간관계의 시련과 학업적 어려움, 심리적 고통을 안고 살아갑니다.

 

오은영 박사님의 '금쪽같은 내 새끼' 프로그램에서는 종종 ADHD 아동을 둔 부모님의 사연이 나옵니다. 프로그램 속 비치는 ADHD 아동들은 '문제'가 많아 보입니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과잉행동을 일삼습니다. 수업 도중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부모에게 욕설까지 합니다. 그런 아이를 보며 부모님은 우십니다. 내 아이가 저렇게 된 것이 다 내 탓인 것 같습니다. 양육 환경이 ADHD의 원인은 아니라는 말도 위로는 되지 않습니다. ADHD의 주된 원인이 '유전'이라는 말이 비수처럼 다가옵니다. 내 아이의 ADHD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과학적 증거가 너무도 아프게 다가옵니다.


저 또한 부모님을 극도로 원망했었습니다. 한때는 부모님을 싫어하고 원망하는 지경을 넘어 경멸하고 혐오했었습니다. ADHD임을 몰랐던 시절의 일입니다. 그때도 전 저의 인생이 근본적으로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저의 많은 ADHD적 증세가 어머니에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힘든 시기에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비수가 되는 말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TV 프로그램에서 본인의 어머니를 '죽일 거야!'라고 말했던 ADHD 아동의 심정을 전 너무 잘 이해합니다. 어머니와 같이 밥을 먹는 순간 자체가 너무 힘들어서 극심한 두통과 공황에 시달리기도 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전 부모님을 진심으로 싫어하지는 않았습니다. 한 편에는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이 더 원초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면의 진실을 알면서도 저를 통제하기 너무 힘들었습니다.


오은영 박사님의 금쪽같은 내 새끼에서 한 ADHD 아동의 인터뷰를 보고 전 펑펑 울었습니다. 그 아이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딱 제 마음에 꽂혔기 때문입니다.


'금쪽이는 친구가 많아?'

 '나 혼자 놀아, 싫어하는 친구들이 더 많은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해?'

 '친구들이 가끔 날 무시하는 것 같아.. 그래서 가끔 싸우기도 해'

'그럴 때 기분이 어때?'

 '나도 모르게 그냥 (화가) 나와.. 가끔 화날 때 왜 화가 나는지 모를 때도 있어.. 답답해..'

'너의 마음을 얘기해 봤어?'

 '표현하기 힘들어. (나 때문에) 엄마가 우는 거 많이 봤어. 같이 울고 싶을 때도 있어'


어린 시절 저의 모습이 떠올라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ADHD 입장에서 가장 존경하는 부모님은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검프 부인입니다.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의 어머니이죠. 척추가 휘어져 있고,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포레스트에게 검프 부인은 말합니다. '넌 다르지 않아' 포레스트 검프의 지적 능력이 떨어진다고 하여 품에만 넣고 세상을 느끼지 못하게 하지 않습니다. 포레스트 검프는 남들과 다르지 않다고 말해주며 검프의 잠재력을 무한히 발산할 수 있게끔 인도해 줍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검프에게 '삶은 초콜릿 박스와 같아. 어떤 것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지.'라는 뭉클한 명대사까지 말씀해 주시죠.


여러분께서도 이미 아시는 사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삶은 원래 힘든 것입니다. 록키 발보아에서 록키가 세상의 시선을 신경 쓰는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인생은 햇빛과 무지개로 가득한 곳이 아니라고요. 추악하고 교활한 것들로 가득 찬 세상이죠. 그 누구도 인생보다 강하지는 않습니다. 얼마나 대단하고 멋진 일을 해내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계속 인생에게 배신당하고 무릎 꿇리더라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게 이긴다는 것입니다.


ADHD는 인생에게 얻어맞을 일도 무릎 꿇릴 일도 참 많습니다. ADHD임을 모르고 20년 넘게 살아왔습니다. 그 기간 중 상당 기간 저는 제 인생을 감옥이고 지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지속적이고 쓰디쓴 시련과 고난을 겪어왔습니다. 그러나 ADHD를 진단받으며 총체적인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제 삶은 근본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원천적인 힘은 제 부모님께서 제게 보내주신 아낌없는 사랑에 기반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저에게 존재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주셨습니다. 존재 그 자체로서 인정받고 격려받아온 사람은 회복 탄력성이 강합니다. 비록 때로 힘들고 걷지 못하는 때가 있을지라도 다시 기회가 온다면 걷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자식이 ADHD인 것을 알게 되었나요? 전 당신을 너무 존경합니다. 그리고 너무 부럽습니다. 두렵고 회피할 수도 있는 진실을 그대로 마주하였습니다. 덕분에 자식은 수십 년 동안 영문도 모른 채 겪었을 고통에서 해방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ADHD임을 알고 나서부터 제 인생은 비교적 평탄했습니다.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힘이 생깁니다. 그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동기가 생깁니다.


ADHD는 모르면 저주이지만, 알게 되면 삶의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자원이기도 합니다. 자식의 ADHD를 인정하고 치료를 시작한 그 순간부터 문제의 반은 해결된 것입니다. ADHD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영상과 글, 책을 읽으세요. ADHD는 의지대로 살아가기 매우 어려운 존재임을 알아주세요. 혼내고 부정하기보다는 부정적 측면은 조절하고 긍정적인 면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낮은 자존감에 시달릴 수 있는 자식에게 '넌 잘못된 것이 아니야'라고 말해주세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부모님한테만은 의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세요. 잘못된 행동과 생각은 변화하도록 인도해 주되, 기본적으로 무한한 사랑과 신뢰를 주세요. 인생은 초콜릿 박스와 같습니다. ADHD 인생도 열어보니 참 달콤한 순간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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