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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mita Sep 12. 2023

ADHD인을 위한 공부 전략과 방법

본과 공부를 하면서 느낀 ADHD 공부의 TIP

본과 첫 학기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아직 모든 과목의 성적이 발표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저의 예상보다는 꽤 괜찮은 성적을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물론 전체 등수를 기준으로 보자면 중간도 못 하는 성적입니다. 하지만 ADHD라는 콤플렉스로 유급 걱정을 먼저 했던 저로서는 이 정도 성적도 나쁘지 않게 여겨집니다. ADHD임에도 불구하고 서울대에 왔다는 것이, 힘든 공부 공부를 견뎌내고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낸 저 자신이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럽게 여겨집니다.


오늘은 본과 한 학기 동안 치열하게 공부해 오면서 쌓아온 저만의 공부 전략과 방법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목을 "ADHD의 공부 전략과 방법"으로 정하긴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ADHD인 '저'의 공부 전략과 방법입니다. ADHD는 개별마다 특이적으로 나타납니다. ADHD가 공통적으로 가지는 특성들이 진단 기준에 명시되지만 개개인에게 그 정도나 양상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기적적인 결과를 가져다줄 것처럼 소개되는 소위 ADHD 공부법에 대해서 개인적으로는 회의적입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유튜브에서, 블로그에서, 책에서 소개되는 소위 여러 '공부법'을 따라 해서 성공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일반적인 사람과 다른 특별한 두뇌를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공부법은 ADHD이든 아니든 개인의 성향, 취향, 지능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해 결정하는 것 같습니다.


공부법 내용을 암기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공부법이 왜 저에게 맞는다고 생각했는지 흐름을 파악하시길 권장합니다. 물고기를 직접 잡아주기보다는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 주는 게 개인의 삶의 변화시키는 데 더 효과적이니까요.


우리는 ADHD입니다. ADHD가 공부를 통해 성과를 내는 것은 흡사 '차(車) 포(包) 떼고 장기 두는 격'입니다. 남들보다 훨씬 뒤처진 출발선에서 시작한다고 남들이 연민해 주거나 이해해주지 않습니다. ADHD를 극복하고 공부하기 위한 전략을 세워가야 합니다. 그것은 먼저 ADHD가 내 공부에 어떻게 악영향을 주는지 파악하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저의 경우 크게 4가지였습니다. 


1. 짧은 집중력 

2. 난독증 

3. 약물 부작용 

4. 비교하는 마음


1. 짧은 집중력

 ADHD의 숙명과도 같지요. 시도 때도 없이 머리를 들락날락하는 여러 잡생각이 통제되지 않고 들어갔다 나왔다 합니다. 교과서를 읽고 있다가도 금세 다른 생각으로 빠져듭니다. 앉아 있다고 앉아 있는데 눈만 글자를 보고 있을 뿐 머릿속은 어제 먹은 식사, 방학 때 가고 싶은 여행지 등 잡생각이 나타났다 휘발합니다. 아무리 길어도 4-50분 지나면 두뇌가 백지상태가 되어버려 공부를 지속할 수 없습니다. 


2. 난독증

 ADHD 관련 커뮤니티나 블로그에서 흔히 확인할 수 있는 증상입니다. 저는 문장 단위로 글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단어 각각의 의미는 익숙해도 일정 길이 이상 문장으로 조합되면 전체 의미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문장을 통째로 흡수하지 못하고 키워드별로 인식 후 제 사고 회로 내에서 새로 문장을 조합한다는 것이 더 적절한 설명일 듯합니다. 문장을 이해하려면 2-3번씩 읽어야 하고, 글을 읽다가 앞의 문장이 기억나지 않아 다시 읽어봐야 한다는 케이스가 이에 해당합니다. 명확한 원인은 전문가가 아니기에 확신할 순 없지만 아마 (1) 부족한 작업 용량 (2) 산발적인 집중력에 기인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 약물 부작용

 책 '젊은 ADHD의 슬픔' 저자 정지음 작가님은 ADHD 약물의 이점이 100이라면 부작용은 60 정도라고 밝힌 적 있습니다. 식욕 저하, 성욕 저하, 불안 등 사람마다 약물 용량과 종류 따라 부작용은 다르게 나타납니다. 저의 경우 메틸페니데이트 계열 약물의 불안 부작용이 유독 심했습니다. ADHD 약물 치료 초반에는 약효가 극적으로 나타나지만, 약물 치료가 지속될수록 체감되는 약효는 낮아지고 부작용만 지속되는 것 같습니다. 섣불리 용량을 높였다가 온종일 지속되는 불안감과 그에 따른 부정적 사고에 휩싸여 공부에 집중하지 못한 적도 꽤 있습니다. 


4. 비교하는 마음

 ADHD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대학의 좋은 과에 왔다는 자부심은 삶의 중요한 기둥입니다. 하지만 동일한 입시를 통과한 타 동기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효율과 능력에 소외감과 열등감에 쉽게 빠져듭니다. 더 나아가 2-3배 노력해야 하는 처지에 비관해 공부 동기를 상실하고 인맥 관리나 운동 등에 열중하며 도피합니다. 공부로 승부를 볼 수 없으니 다른 분야에서 가치를 높이겠다고 합리화합니다마는 본질은 회피이고 도피입니다. 


 의대생은 아니지만 예비 의료인으로서 질환의 명칭과 원인을 밝히고 치료 방법을 찾는 데 익숙해서 일까요. 나름대로 각각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전략을 세워봤습니다. 


 1. 짧은 집중력

 -> 보통 4-50분이 지나면 미칠 듯 집중하고 있다가도 백지상태가 되어버립니다. 이쯤 되면 무슨 노력을 해도 다시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의지의 문제라고 핀잔을 줄지 모르지만 어찌합니까. 부족한 전전두엽을 가지고 태어난 것을. 다년간의 경험 데이터 기반으로 차라리 자리에서 일어나 산책이라도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압니다. 스마트폰을 하거나 멍하니 수십 분 흘려보내는 것보다는 훨씬 유익합니다. 도서관 근처 한 바퀴 돌 때 의미 없이 돌아다니지 않고 '마음 챙김 명상'을 하며 걷습니다. 청각, 시각, 촉각, 미각, 후각 오감의 감각에 집중하며 (걸을 때는 특히 발바닥의 감촉에!) 집중과 주의를 오로지 현재에 초점을 맞춥니다. 현재 나와 주위 환경을 비판 없이 관찰하며 공부에 사용할 수 있는 집중 에너지를 비축합니다.  

 * 마음 챙김 명상 관련 자세한 사항은 'ADHD를 위한 마음 챙김 처방'이나 '마음 챙김 긍정심리 훈련(MPPT) 워크북'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2. 난독증 

 -> 특히 해부학 등 이해가 아닌 암기 중점의 과목은 난독증 유무와 관계없이 어렵기에 약효가 없을 때는 그런 과목 위주로 공부합니다. 이해가 요구되는 과목 공부를 해야 할 때는 어떻게 하냐고요. 그저 공부를 지속하고 반복하는 데 의의를 둘 뿐입니다. 너무 이해가 안 될 때는 내용을 그대로 필기라도 하면서 내용이 무의식 속에 각인되길 바랍니다. 본과 공부 특성상 이해보다는 암기가 요구되는 경우가 많아 난독증은 예상외로 큰 걸림돌은 아니었습니다. 실습이나 수업 때 교수님이나 조교님의 설명을 듣고 이해하는 데에는 여전히 장애물이지만요.


3. 약물 부작용

 -> 참.... 약물 이놈 어쩔 땐 계륵 같은데 가끔 없어서는 안 될 놈이고... 애증의 관계입니다. 최소 용량에서도 부작용이 눈에 띄게 나타나서 절 참 힘들게 하는 놈입니다. 약물 부작용은 무조건 전문가와 상의하고 대처해야 합니다. 항불안제 데파스를 처방받아 불안이 심하게 올라올 때 가라앉힙니다. 

 약물 치료 시작한 지 어느 정도 지났다면 약물에 지나치게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약물 치료를 시작하기 전보다 집중도나 생활 습관이 전반적으로 개선된 상황일 것입니다. 약물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태도가 가장 중요합니다. 물론 분명한 효과가 여전히 있어서 제 기준 아직 끊을 수는 없습니다. 효율과 기억력은 제 기준 그대로지만 집중도, self regulation, 공부 중 학습 방법 및 주의 전환 등에는 여전히 괜찮은 효과를 보입니다. 약물의 부작용, 효과, 내 컨디션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해 약물 복용 여부를 조절합니다. 이미 체력적으로 방전 직전까지 간 시험 당일, 전날에는 굳이 복용하지 않습니다. 약효를 보기엔 몸이 너무 지쳐있더군요.  


4. 비교하는 마음

 -> ADHD임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버텨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남들이 인정할 만큼 좋은 성과를 입시에서 냈습니다. 그러나 비교하는 마음을 줄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나는 서울대생이라서 더 가치 있는 사람이 아니고, 유전적 결함이 있어서 더 부족한 사람이 아닙니다. 존재 자체로 고귀하며 소중한 존재입니다. 자존감은 성역의 영역으로 나조차도 건드릴 수 없습니다. 주변 서울대생이 2-3시간 쭉 집중하고,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외울 때 주눅 들기도 하지만, 나는 원래 그런 사람임을 인정하고 비교하지 않습니다. 수백억이 있어도 빈곤할 수 있고 천만 원만 있어도 부유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나의 부족함을 판단과 비판 없이 바라보고 수용합시다.

 여기에 더해, 집중을 방해하는 넘쳐나는 에너지 분출을 위해 달리기, 헬스 등 자기 계발에 힘써서 인정받아도 비교하는 마음이 덜해지더라고요. '있는 그대로의 수용'이 이론적으로 완벽하지만, 현실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중생으로서 남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분야 하나 정도 있어서 나쁠 건 없죠.   


ADHD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공부'를 손에 놓아서는 안 됩니다. 일차적으로 대한민국 사회에서 생계와 생존을 유지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도구입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자기 계발을 위해서 필수적입니다. 우리 삶을 지속적으로 고통으로 몰아넣는 ADHD, 공황, 우울증, 불안을 다루고 치료하는 데에도 공부가 필수적입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입니다. ADHD의 원인이 무엇이고 증상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각각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전략에 무엇이 있는지, 공존 질환은 왜 유발되며 어떻게 직면하고 해결해야 하는지 공부하지 않고서는 지옥 같았던 우리 인생은 바뀌지 않습니다. 또한 공부는 ADHD 증상이 어떻게 내 삶을 괴롭히고 확인하고, 무슨 전략으로 대처할지 알 수 있는 좋은 수행처입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면 누구든 억지로라도 책상에 앉아 공부해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입시를, 취업을 위해서 언젠가 마주해야 하지만 ADHD가 가장 악영향을 미치는 골칫덩어리입니다. 그렇기에 과거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함께 해왔지만, 속을 드러내지 않는 친구처럼 그 정체를 대체 알 수 없는 이 ADHD란 놈을 가장 잘 파고들 수 있는 기회입니다.


공부는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과제입니다. 남들보다 부족하고 뒤처진 우리에게는 때로 감옥, 지옥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피하지 않고 직면하여 맞선다면, 남들보다 더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아가는 숙명을 가진 우리 내면을 가장 깊게 들어갈 수 있는 수행처가 될 것입니다.


까짓 거 덤벼봅시다!!


*본 글은 2022년 7월 12일에 adhd 커뮤니티 에이앱에서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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