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든 것을 리셋한다
개강이 코앞이다. 언제나 개강은 나에게 설렘보다는 긴장감으로 먼저 온다. 교육을 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긴장감이 당연한 것이지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긴장감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다시 시작될 개강에 앞서 나의 전반적인 환경을 현재 리셋 중이다.
일주일 남짓 남긴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학기가 시작되면 신경 쓸 수 없는 것들을 정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작된 모든 정리들로 일주일 내내 정신없이 바빴다. 일단 50리터짜리 봉투 네 개를 사서 준비하고 수납장과 옷장을 열었다. 아까워서 버리지 못한 것들과 중복되는 것들이 많았고 보풀이 났지만 한 계절만 더 신고 입자는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맘을 단단히 계절 한 바퀴를 돌면서 입지 않고 신지 않았던 사용하지 않았던 모든 것들은 버렸다. 색이 바랜 옷들 양말, 그리고 문구도 모두 정리하면서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예전부터 청소는 나에게는 그런 느낌이었다. 특히 겨울을 지난봄에는 이런 정리가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겉면이 누렇게 색이 바랬고 자리를 차지하던 오랜 시간의 추억을 담은 그러나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아 이사 때마다 뭉치로 옮기고 다시 꺼내 보지 않았던 열 권의 앨범들. 앨범을 꺼내 사진들을 모두 분리하여 바닥에 펼쳤다. 접착제가 단단히 붙어 사진이 찢어지고냄새도 나는 그런 오래된 앨범들 안에서 숨겨진 추억과기억들을 모두 끄집어내어 바닥에 펼치고 정리가 시작되었다.
사진 모두를 떼어내고 앨범을 버리고 추린 사진들을 내가 한 번, 남편이 한 번 두 사람의 시각에서 정리하고 나머지는 모두 찢어 버렸다. 풍경 사진은 모두 버렸고 여행과 큰 이슈가 있는 사진은 테마별로 5장 이내로 남기고 중복된 컷은 제일 잘 나온 사진 한 장만 남겼다. 인연이 다한 사람들도 사진으로 그 인연을 다시 환기하고 모두 버렸다. 그 기억마저도 모두. 좋은 건 좋은 것대로 안 좋았던 기억은 잊는 것으로.
사람의 인연이 오래되어야 잘 살았다는 생각을 안 한지는 오래되었다. 인연에도 유효기간이 있어 그 시절 충분히 교류하고 부대낀 것으로 만족한다. 그들도 나도 이제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사니 이제 사진을 남길 이유가 없다고 해야 하나. 모든 기억을 다 부둥켜안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남은 사진을 담고 보니 김치통 하나 정도에 테마별로 5장 이하로 남겨졌다. 소중한 인연, 추억만 최소한으로 남겼다. 그리고 이건 또 5년쯤 후에 다시 재정리하면서 줄일 생각이다. 나와 남편의 인생에서 중요한 컷과 여행 사진은 테마별로 정리했고 이제 유럽 배낭여행 앨범 3권만 남았다. 이것도 다음 방학이 오면 정리할 생각이다. 정리하고 보니 생각보다 마음이 후련해졌고 둘이서 지나온 사진을 보고 오랜만에 서로의 인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필요한 시간을 가진 것 같아 마음을 위로받았다. 그리고 남편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 부부에게 필요한 시간이었다.
부부라 하여도 상대의 사연을 다 알 수 없다. 소중한 인연도 그 시절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지만 이번 기회에 남편의 그 시절 이야기도 듣고 나 역시 나의 인생 히스토리의 굵직한 사건을 따라 인생을 조금 정리해 볼 시간을 가졌다. 나름 의미 있는 정리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냉장고 청소도 연이어하였는데 참 많이 쌓아 놓고 지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의 일상을 패턴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먹는 것도 사는 것도 입는 것도 그 모든 것을 확장하지 않고 정리해서 패턴화 하면 삶이 더 충실해지고 단단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를 연이어하면서 많은 생각과 계획이 생겼고 이게 모두 학부 강의만 하게 되어 방학이 생긴 보너스 시간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계속 강의가 있었다면 이런 시간은 엄두도 못 내었을 듯하다.
이제는 학기가 끝난 방학이 쉼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방학이 있어 여행도 가고 방학이 있어 나의 삶을 정리하고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이제 그동안 공부하고 경력 쌓느라고 돌아보지 않았던 가족들에게 시간을 좀 내어 주고 나에게 베풀어 준 배려의 보답을 하려고 한다.
바쁜 일정으로 시간과 곁을 내주지 않았던 조카와 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나의 집을 나의 집만이 아닌 것으로이제 좀 오픈하려고 한다. 그러려면 진짜 비우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이 모든 정리가 이런 사고의 흐름에 영향을 받아 시작되었다. 내 성을 무너뜨리려 한다. 나의 공간을 오픈하고 좀 더 나를 놓으려고 하기에 올 한 해는 부대끼는 생활을 하면서 나의 마음과 몸을 릴랙스를 시도하려 해 본다.
이제 그런 나이에 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고 나를 어루만지는 삶을 살고 싶다. 물건에 미련을 두지 않고 욕심도 두지 않는 조금 더 현명한 삶의 태도를 가지길 희망한다. 올해는 나를 조금 더 성장시키고 주변을 돌아보며 나의 일에도 내실을 기하는 그런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쉼 없이 페달을 밟고 달려온 일정을 페이스 조절을 하면서 가 볼 생각이다. 나를 응원하고 새로운 출발을 한 나의 남편을 응원하면서 이렇게 방학을 마무리해 간다.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