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맑은샘 May 10. 2024

교사의 시선은 아이의 작은 변화를 바라본다.

막 교사가 되어 아이들 앞에 섰을 때 긴장되고 떨렸다. 어디를 쳐다봐야 할지,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그때 나를 바라보는 초롱초롱한 아이들의 눈빛에 힘이 났다. 묻는 말에 또렷하게 대답하는 아이, 설명할 때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 미소를 짓는 아이 쪽으로 저절로 눈길이 머물렀다.  

    

그때는 주로 아이들의 잘한 행동들이 보였다. 숙제를 열심히 했구나, 와, 좋은 생각이네, 발표를 큰소리로 잘했어. 멋진 모둠 활동이었어. 이런 칭찬을 많이 했다.     

 

그러다가 조금 더 아이들을 살피자, 아이들의 작은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 이 녀석이 스스로 숙제를 했군. (글씨는 엉망이지만), 매번 엄마가 데려다주더니 오늘은 혼자 왔네. 드디어 독서록 한 줄(한 줄이면 어떠니! 시작이 반인데)을 써 왔구나.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고 그 아이만의 성장 속도를 인정하면서 과정을 찾아내는 시선을 갖게 된 것이다.      

교실에서 내가 머무는 장소도 달라졌다. 주로 칠판 앞에서 있다가, 점차 아이들이 앉은 구석구석으로 다니게 되었다. 그러면 앞에서 보지 못하고 놓쳤던 것들이 보였다. 교실 뒤에서 앞쪽을 바라보면 칠판이 아득하고, 아이들 눈에는 앞에 있는 교사가 ‘아주 먼 그대’가 된다. 교실 뒤에 서서 아이들을 바라보면 아이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고개를 숙이며 열심히 교과서에 뭔가를 적는 아이들의 과정과 노력이 보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교사의 시선도 쌍방, 사방으로 확장된다. 그러다 교사는 아이들의 마음을 제대로 읽기도 하고, 놓친 걸 찾기도 한다.      


며칠 전, 장애인식 통합교육 연수에 다녀왔다. 강사는 공립고등학교 특수교사였는데 키가 1m가 안 되는 분이었다.     

어릴 때는 더욱 작아서 초등학교 입학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겨우 입학을 허락한 교장 선생님은 아주 작은 아이에게 당부했다. 

“이제는 걸어 다녀야지. 네가 혼자 말이야.”


그때까지 업혀 다닌 작은 아이는 걸어 다니기가 무서웠다. 계단은 너무 높았고, 거리에는 사람이 많아 걸려 넘어지거나 고꾸라져서 다치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는 마음을 졸이면서도 스스로 걸어 다니도록 곁에서 지켜 주었다. 작은 아이도 용기 내어 학교까지 걸었다.     

명랑하고 쾌활해서 반 아이들과 잘 어울렸지만, 다른 반 아이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길을 걸어가면 갑자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거나, 얼마 동안 따라오며 구경하는 사람도 있었다.      


고학년이 되어 버스를 탔는데 기사가 말했다. “너, 그렇게 키가 작아서 어떻게 살아갈래. 장가는 갈 수 있겠니? 빨리 부모님께 말해서 키 크는 주사를 맞아라.”

그때는 버스 기사도 미웠지만, 버스 안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승객들이 원망스러웠다. 가만있는 승객들은 모두 ‘잠재적 가해자’였다. 기사님에게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하냐고, 자기를 편들어 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기를 바랐건만 끝끝내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우리는 그런 순간을 놓친다. 정말 중요하게 나서야 할 때 나서지 못해서, 알아차려야 하는데 알아차리지 못해서 후회하게 된다. 지나고 보니 그때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었는데, 그때 이런 행동을 해야 했는데 하는 것들이 생긴다.     

반대로 가끔 아주 작은 친절이나 배려가 상대를 감동하게 하거나, 미래를 향한 꿈을 키우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 작은 아이에게 그런 운명의 순간이 찾아왔다. 중학교 체육 시간이었다. 반 아이들과 축구하는데, 공을 따라다니다가 그냥 서 있었다.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늘 경기에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그날따라 함께 축구하던 체육 선생님이 축구 골대 앞에 서 있는 키 작은 아이를 발견하고 정확하게 그 앞으로 패스해 주었다. 키 작은 아이는 자기 앞에 떨어진 축구공을 보고 꿈인가 싶었다.   

   

‘저 멀리 서 있는 키 작은 아이에게 패스해 준 체육 선생님.’

축구공을 몰고 가자 다른 친구들이 자기에게 몰려들었다. 골인으로 성공시키지는 못했지만, 그 기쁨은 평생의 소중한 기억이 되었다.     

아무에게 관심받지 못하던 나를 알아봐 주는 선생님, 외롭게 서 있던 나를 보고 있다가 패스를 해 준 선생님 덕분에  키 작은 아이는 축구 선수처럼 힘이 났다. 학교가 살맛 나는 곳으로 바뀌었다.      


이 아이는 그때부터 선생님이 되기로 결심했다. 어려운 길임을 알지만, 그 선생님처럼 학생들에게 기대와 희망을 주고 싶었다.       

   


교사의 시선은 그런 힘이 있다. 교사들은 어떤 상황에서 판단할 때,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 학생의 삶이다. 교육자로서 학생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것을 주려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잘 들여다보지 않는 것까지 깊이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려 한다. 김태현 교사는 이것을 교사의 시선, 존재의 시선이라고 했다.  

    

교사의 시선은 그렇게 성장한다. 교사로서 나의 시선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 교사는 아이들의 작은 변화를 바라본다. 이제 그런 시선으로 교사 자신도 바라봐야 한다. 교사가 먼저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하고, 자존감을 지키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하고 따뜻한 눈빛으로 아이들을 바라볼 힘이 생긴다. 그래야 아이들의 작은 변화를 알아차리고 격려해 줄 수 있다. 그런 교사의 칭찬 한마디와 격려로 아이들은 힘을 내어 세상을 향해 작은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