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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Sep 07. 2024

끝과 시작, 같은 순간에 일어난다.

교사로 발령받기 전, 나는 피아노 학원에서 알바를 했다. 서울 아파트 상가에 있는 제법 큰 피아노 학원이었다. 원장님은 그랜드 피아노로 입시생을 가르쳤고, 나는 바이엘과 체르니를 배우는 아이들을 가르쳤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발령받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교직이 안 맞는다 싶으면 피아노를 가르치며 살아야지.’

학교 가기 전이라 내가 어떤 교사가 될지, 얼마나 잘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발령을 기다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냥 이대로 좀 더 있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3월 중순, 발령이 났다. 60 학급이고 교직원만 80명이 넘는 큰 학교였다. 거기서 나는 그해 8월 정년을 앞둔 대선배님을 만났다. 선배님은 하도 오랫동안 가르치다 보니 제자의 자녀도 여럿 가르쳤다고 하셨다.

‘아, 저렇게 오랫동안 교직에 계신 분도 있구나!’

나는 역사 속 조상을 만난 듯 아주 엄숙하게 바라봤는데 존경심보다는 신기함에 가까웠다. 어떻게 40여 년의 긴 세월을 교직에 계셨을지 궁금했다. 막 발령을 받은 나는 선배님의 마음을 짐작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교직을 시작했고, 그 선배님은 퇴직하셨다.

초임 교사일 때 퇴직까지의 세월이 까마득하게 길어 보였다. 지루하고 버티기 어려울 것 같아 다른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두 번은 없다> 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다.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늘 새로웠다. 역동적이고 긴박한 일들로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갔다. 심지어 똑같은 아이도, 어제와 오늘 새로운 아이처럼 달랐다. 두 번은 없고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어서 나는 피아노 학원 갈 생각을 전혀 못 하고 지금껏 학교에서 지내고 있다.  

     

이제야 나는 퇴직한 대선배님 마음을 알 것 같다. 선배님 나이와 얼추 비슷해서 몇 년 후면 나도 학교를 떠난다. 그때 선배님은 퇴직하는 게 얼마나 영광스럽고 기다려졌을까, 홀가분하고 자랑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8월 말, 존경하는 A 교장선생님이 정년을 1년 앞두고 명예퇴직을 하셨다. 작년에 학부모 민원으로 두 명의 교사가 병가와 병 휴직을 하는 힘든 시기도 든든하게 울타리가 되어 주신 분이다. 올해 학교가 별일 없이 안정되자, ‘가장 좋고 아름다울 때’ 퇴임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 깊은 속마음을 어찌 알 수 있을까만 그분은 꿈꾸는 교사였고 교장선생님이었다. 요즘 같은 학교 현장에서도 그 꿈을 놓지 않고 잘 마무리하신 것에 축하드린다.

  

후배 교사들의 고민도 깊다. 젊은 교사일수록 정년까지 학교에 남아있으리란 신이 없다. 코로나와 작년 9월 이후 학교 현장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교대생이 600명 넘게 자퇴를 했다. 교사가 안정성과 방학이 있다는 장점으로 인기가 있었는데 작년 교권 침해 논란이 심각해지자 선호도가 낮아졌다. 젊은 교사들이 학교를 많이 떠나고 있다. 아이들의 행복한 교육과 미래를 만들기 위해 교권과 공교육의 회복이 절실하다.     

발령받기 전, 내가 가진 두려움은 내가’ 학교 교사로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아이들을 잘 가르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었다. 지금 젊은 교사나 교대생들은 어떤 학생과 학부모를 만날까 하는 두려움을 갖는다고 한다. 교사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일 것이다.  


끝과 시작은 같은 순간 일어난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새로운 문이 열린다. 발령이 학교로 들어오는 시작이라면, 퇴직은 학교 밖으로 나가는 시작이다. 끝과 시작에는 설렘과 함께 두려움이 따른다. 인생은 단 한번 그냥 가는 길이다. 아무런 연습이나 훈련 없이 누구나 가는 길이다. 시작하면 이 있다.      


너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그러므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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