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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Nov 22. 2024

혁수네 반이 수상하다

2학년 담임 선생님이 혁수를 나에게 데려왔다. 교실에서 친구와 싸우다 화가 진정이 안 되어서 데리고 온 거다. 혁수는 아침맞이를 하며 제일 먼저 이름을 외운 아이다. 9시나 되어야 느릿느릿 나타나는 아이. 교문까지 100미터쯤 되는 등굣길을 높은 산 오르듯 억지로 걸어 올라오는 아이다.


혁수와 마주 앉아서 차분해지길 기다렸다가 무슨 일인지 물었다.

“석희가 잘난 척해요.

나랑 안 놀고 다른 애들하고만 놀아요.

아까는 내 가방을 쓰레기통에 버리겠다고 하잖아요.”


실제는 이런 상황이었다.

혁수가 수업 시간에 일어나서 공부하는 석희를 툭툭 건드린 일로 시작되었다.

석희가 “조용히 해!”라고 하자 혁수가 “잘난 척” 한다고 소리쳤다.

석희가 다른 애들이랑 노는데 혁수가 자기랑 놀자고 못 놀게 방해했다.

석희 물건(빼빼로 모양 지우개, 콜라 모양 사탕통)을 마음대로 가져가서 망가뜨렸다.


그런데도 혁수는 계속 친구 탓을 했다. 석희가 잘못해서 자기가 화가 났다는 거다. 저학년일수록 이런 일은 흔하다. 혁수는 선생님과 반 아이들과 전혀 다르게 상황을 받아들인다. 자기가 피해자고, 억울하게 당했다고 한다.


나는 혁수 옆에 앉아서 이야기를 들어주다 이렇게 물었다.  

“친구 얘기만 하지 말고. 혁수야, 넌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혁수는 입을 다물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했다.  

“공부 시간에 돌아다니지 않고, 앉아있어야 해요.

친구 물건도 함부로 가져가면 안 돼요.

망가뜨려도 안 돼요.”


나는 스스로 그런 말을 하는 혁수를 대견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혁수는 이렇게 말했다.

“앉아있으면 불편하고, 돌아다니면 좀 괜찮아져요.”


‘이럴 수가! 아직 멀었구나. 선생님이 정말 힘드시겠네.’

혁수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관심 갖고 잘 살피시는 분이다.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에도 아이들을 지도하신다. 하지만 그 반 아이들은 지나치게 활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쳐 다툼과 갈등이 자주 일어난다. 선생님의 체력이 약해지고, 목소리가 변해 병원에 자주 다니신다.  

 

혁수와 같이 공부를 했다. 2학년 교과서에 수록된 『콩이네 옆집이 수상하다』 책을 읽었다.

콩이네 옆집에 아주 아주 수상한 동물이 이사 왔다는 소문이 났다.

그 동물은 땅속에 살고, 시커멓고, 다리는 여섯 개, 눈은 다섯 개 달린 동물이다.

엄청나게 많은 수로 패 지어 다닌다. 콩이의 친구들은 무서운 동물을 상상하며 몸서리를 쳤다. 마침 ‘똑똑’ 문을 두드리며 이사 온 동물이 인사를 하러 찾아오자, 친구들은 문도 열어 주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콩이는 ‘나쁜 동물이 아니라는’ 말을 믿고 문을 열어 준다. 이사 온 동물은 ‘개미’였다.


혁수랑 나는 번갈아 며 동화책을 읽고 그림도 살펴보았다. 콩이는 옆집에 이사 온 동물을 믿어주었다. 수상하기도 했지만, 나쁜 동물이 아니라는 말을 믿고 문을 열어 주었다. 혁수도 지금은 수업 시간에 돌아다니고 화를 못 참고 욱 하지만 ‘앞으로 집중하고, 친구랑도 잘 지낼’ 거라는 말을 믿어야겠지?  


40분 수업 시간이 끝날 즈음, 혁수에게 앞으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었다.

“공부 열심히 해서 경찰관이 되고 싶어요.”

나는 경찰관이 되고 싶으면 공부 시간에 불편해서 좀 참고, 하기 싫어도 끝까지 해내야지 했더니 알았단다.


그러더니 갑자기 이 말을 했다.

“학교에 일찍 오고 싶어요.”

혁수는 9시 거의 다 되어 오는 지각생인데 의외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물었다.

“학교에 일찍 와서 친구들을 맞이하고 싶어요.

반에서 제일 먼저 오고 싶어요. 우리 담임선생님도 일찍 오거든요.”


아이들은 자란다. 끊임없이 흔들리고 고민하면서 자기가 바라고 원하고 방향으로 자란다. 혁수도 그럴 거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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