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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Sep 20. 2022

밤 10시, 엄마를 기다려요

  밤 10시, 학교에 간 적이 있는가? 분명 늘 보던 교실과 복도인데도 달라 보인다. 그 시간 아무도 없는 교실에 혼자 있으면…… 무섭다. 나는 돌봄교실 관리 교사라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었다. 3층 우리 교실만 애꾸눈처럼 불을 켜 놓고 있다가 화장실이나 1층 돌봄교실에 가려면 불부터 켜기 시작한다. 복도에 불을 켜고,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 불을 켠다. 아무렇지 않던 화장실도 밤에는 천장과 바닥에서 뭐가 불쑥 나올 것만 같다. 

  1층은 딴 세상이다. 돌봄교실이 있어서 대낮처럼 환하게 불을 밝힌다. 복도와 화장실뿐 아니라 운동장도 환해서 부모님을 기다리는 아이들 마음 같다.      

 


  그해는 저녁 9시가 아니라 10시까지 ‘방과후 돌봄교실’을 운영했었다. 이미 9시까지 운영하고 있던 터라 밤 10시까지 연장한다니 돌봄 학부모님들은 환영하는 눈치였다. 밤늦게까지 아이를 맡아주는 저녁돌봄교실, 직장 다니는 학부모에겐 고마운 곳이지만 아이들에겐 어땠을까? 아침 일찍 집을 나온 아이들은 부모가 데리러 올 때까지 학교에서 기다려야 했다. 

     

  예지는 1학년 우리 반인데 연년생 언니와 돌봄교실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다. 예지는 아이들이 하나둘 갈 때마다 문을 쳐다보며 엄마를 기다렸다. 밤 9시가 넘으면 자매만 남아 꼬박꼬박 졸기도 했다. 그러다 엄마가 오면 두 팔을 벌리고 달려가서 “왜 지금 왔어? 기다렸잖아.” 하며 엄마를 꼭 끌어안았다. 집에 갈 때도 예지는 엄마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밤늦게 집에 간 예지는 아침 일찍 학교에 왔다.

  “엄마는 어제 일찍 퇴근했는데 아빠랑 싸우느라 늦게 온 거래요.”

  예지는 밤사이 있었던 얘기를 풀어놓았다. 그러다 엄마에게 한 것처럼 내 손을 잡고는 쿡쿡 웃었다.

  “선생님, 우리 엄마 아빠 결혼식 한대요.”


  나는 예지가 뭘 모르고 한 소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예지 엄마가 청첩장을 갖고 왔다. 예지 할아버지가 싸우지 말고 잘 살라고 늦은 결혼식을 하도록 지원했단다. 예지 엄마는 신혼여행도 갈 거라며 예지의 체험학습을 신청했다. 일주일 동안 돌봄교실은 썰렁했다. 


  예지가 돌아온 날,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참았을까 싶게 아침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결혼식 날 언니랑 화동했는데 엄마는 정말 예뻤어요. 엄마 아빠는 제주도로 신혼여행 갔고 우리는 이모 집에서 기다렸어요. 엄마 아빠가 올 때 선물을 사 왔는데 뭔 줄 아세요?”

   처음엔 비밀이라더니 돌하르방과 초콜릿이라고 했다.


  결혼식을 하고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나 보다. 예지는 아침에 교실에 오면 슬며시 내 손을 잡고 얘기했다. 저녁에 아빠는 소리를 질렀고 엄마는 슬퍼서 밤새 울었다고 했다. 그런 날엔 예지의 머리는 엉망이었다. 숱이 적고 긴 예지의 머리를 묶어주면서 나는 예지 엄마와 얘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날은 밤 10시가 됐는데 예지 엄마가 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다 귀가하는 걸 보고 퇴근하던 나에게 돌봄전담교사가 말했다.

  “예지 엄마가 곧 오신다고 했으니까 선생님은 얼른 퇴근하세요. 집이 멀어서 지금 가도 11시잖아요.”

  밤 10시가 넘어서 이른 퇴근을 했다. 왠지 불안했는데 정말 큰일이 생겼다. 곧 오겠다던 예지 엄마가 늦게까지 오지 않았다. 술 취한 목소리로 친구를 대신 보낼 테니 애들을 보내 달라고 전화했다. 돌봄전담교사는 ‘학부모 동행’이 원칙이라 보낼 수 없다고 하자 한참 후에 나타난 예지 엄마는 “왜 사람을 오라 가라 하냐?” 면서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다음 날 아침, 예지는 학교에 늦게 왔다.

  “엄마는 어떠시니?”

  “자고 있어요. 어제는 일찍 퇴근해서 계속 술을 먹었대요.”

  내 손을 잡은 예지의 작은 손이 파르르 떨렸다. 

    

  어젯밤, 예지는 그런 줄도 모르고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렸다. 그런데도 예지는 늦게 온 엄마에 대해 서운함보다 밤새 아픈 엄마 걱정을 했다. 

  “아빠가 직장에서 또 잘려서 술 마셨대요. 엄마는 술 안 마시면 정말 좋은데.”


  예지 엄마를 만났다. 고등학교 때 만난 첫사랑과 아이 낳고 살다가 뒤늦게 결혼까지 했는데 많이 다툰다고 했다. 예지와 언니를 잘 기르고 싶은데 둘 다 안정적인 직장이 없어 힘들다고 했다. 문득 자녀가 둘인 부모에게는 직장과 육아시간을 보장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그러면 예지는 마음 졸이지 않고 엄마 아빠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텐데. 얼마 뒤 예지네는 직장이 생겼다며 할아버지가 사는 곳으로 이사 갔다.


  가끔 밤 10시가 되면 예지 생각이 난다. 늦은 밤까지 엄마를 그리워하며 기다리던 예지는 지금 어떻게 지낼까? 할아버지가 사는 곳에 갔으니 엄마가 일찍 와서 같이 따뜻한 저녁을 먹었을지.  

  한 명, 한 명 갈 때마다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예지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내 손을 꼬옥 잡았을 때 나뭇잎 같던 가벼움과 따뜻함도 생생하다. 예지가 잡고 싶은 건 내 손이 아니라 엄마 손이었을 텐데. 지금이라도 예지가 가족과 함께 오붓한 저녁 시간을 보내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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