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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Sep 27. 2022

가장 소중한 보물

   세계 여행하는 TV 프로그램을 가끔 본다. 여행자는 멋진 유적이나 풍경을 찾아다니다 현지인의 집을 방문하기도 한다. 화면에 아이들 모습이 나오면 내 눈은 순간 반짝인다.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는 아이들을 보면 나는 안심이 된다. 엄마나 아빠가 함께 있으면 더 마음이 놓인다. 세계 어디서나 아이들에게 부모란 그런 존재인가 보다. 아이들이 보물이라면 부모는 보물상자다. 든든하고 안전하게 보물을 지키고 보호한다. 

      

  우리 반 애라는 엄마에게 보물이었다. 입학식 날 애라는 비싼 가방과 옷을 입고 있었다. 옆에 있는 엄마는 초라한 옷차림이었다. 학부모 상담 때 만난 애라 엄마는 딸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엄마는 못 배워서 하고 싶은 걸 못 했지만, 딸에게는 다 해주고 싶다고 했다. 애라 꿈이 ‘선생님’인데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었다.


  애라는 교과서에서 튀어나온 아이 같았다. 줄을 바르게 서고, 자기 자리에 반듯하게 앉았다. 책을 막힘없이 읽고, 쓰기를 할 때 겹받침을 빠뜨리는 실수도 하지 않았다. 획순에 맞게 반듯하게 써서 반 아이들은 애라처럼 쓰고 싶어 했다.


  받아쓰기하면 대부분 한두 개 틀리는데 애라는 늘 백 점이었다. 어떻게 그러냐며 아이들이 물으면 “연습하면 다 되는데” 했다. 애라는 나에게 살짝 말했다. 엄마랑 받아쓰기를 열 번씩 연습한다고. 

  “책이 두 권씩 있어요. 집에서 공부하는 책으로 한 번씩 미리 공부하고 와요.”

  애라는 학교와 집에서 공부하는 교과서가 따로 있었다. 그래서 수학 문제도 틀리지 않고, 발표도 잘하는 거였다. 애라 엄마는 애라를 위해 직장을 두 곳이나 다니고 있었다. 저녁에 퇴근하고, 밤에는 다른 일을 또 한다고 했다.  

    

  나는 그런 애라가 기특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애라가 일 학년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잘 놀기를 바랐다. 나는 교실과 운동장에서 체조와 놀이 활동을 많이 하고, 동요와 율동을 신나게 같이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몇 권씩 빌려오기도 했다. 애라는 그림책을 좋아했는데 내가 그림책을 읽어 주면 애라는 눈을 반짝이며 들었다.    

 

  초여름, 애라가 울먹이며 말했다.

  “선생님, 엄마가 아프셔서 수술해야 한대요.”

  건강 검진에서 암 진단받아 급하게 수술하게 된 애라 엄마. 애라는 엄마와 둘이 살아서 이웃집 지인이 잠시 맡아주기로 했다. 엄마는 간단한 수술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애라를 안심시켰다. 초기 암이라 수술만 하면 금방 완쾌될 거라고 했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는 동안 애라는 혼자서 숙제하고 준비물도 챙겼다. 엄마와 처음 떨어져 봐서 무척이나 불안했을 텐데 잘 참고 기다렸다. 그런데 수술 후 금방 올 거라던 애라 엄마는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엄마와 헤어지고 몇 주 만에 애라는 엄마를 장례식장에서 만나게 되었다. 장례식장에서 본 애라는 정말 작고 여린 1학년 어린아이였다. 엄마가 있을 때 어른스럽고 의젓하던 애라는 철부지가 되어 있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걸 모르는 아이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내가 온 걸 반가워했다.


  장례식장에 손님은 별로 없었다. 외할머니와 이모는 애라를 보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들은 애라의 거처를 마련하지 못해 한숨만 내쉬었다. 애라 친아버지와 연락이 닿았지만 이미 오래전 재혼한 상태라 애라를 돌봐 줄 형편이 안 되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돌아온 애라는 이웃집에 그대로 머물렀다. 애라의 변하는 모습을 보는 건 정말 슬펐다. 가장 먼저 애라의 초롱초롱하던 눈이 잠자다 일어난 것처럼 초점을 잃어갔다.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는 눈으로 멍하게 앉아 있기만 했다.     


  자기 소원을 말하는 시간이었다. 교과서에 알라딘과 램프 요정이 나오고 말풍선에 자기 소원을 쓰고 발표하는 공부였다. 나는 교실을 다니며 아이들이 뭐라고 썼는지 살펴보았다.

  애라는 흘려 쓴 글씨로 이렇게 적었다.

  ‘하늘나라에 있는 엄마를 만나고 싶어요. 하늘나라에 데려다주세요.’

  아, 나는 차마 그걸 발표하라고 할 수 없었다. 애라는 그걸 쓰고는 또 창밖을 바라보았다.     


  늦게까지 돌봄교실에 남아있던 애라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애라는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고 했고, 아버지가 돈을 많이 갖고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친아버지는 애라를 맡아 준 이웃 지인에게 매달 양육비를 보낼 테니 계속 돌봐 달라고 했다. 양육비는 고작 몇 달 오다 그쳤고 이웃 지인은 애라를 맡을 수 없다고 했다. 


  그림책에서 읽은 대로라면 알라딘은 램프 요정의 힘으로 부자가 됐고, 소공녀 세라는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부자 아저씨를 만나 하녀에서 다시 공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애라는 6개월이 지난 후 겨울, 다른 학교로 전학 갔다. 애라에게는 램프 요정도 부자 아저씨도 없었다. 애라는 부모가 없거나 양육을 포기한 아이들을 돌봐 주는 시설로 갔다. 


  애라는 엄마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셔도 여전히 애라는 보물이다. 애라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 험난한 곳, 두려운 곳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애라가 끝까지 자신의 꿈을 놓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딸의 꿈이 자신의 꿈인 양 기뻐했던 애라 엄마. 딸만 남겨 두고 눈을 감으면서 얼마나 원하고 바랐을까. 나는 애라가 꼭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더 깊게 이해하고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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