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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Sep 30. 2022

사랑스러운 아이

  “지금까지 공부하고 왔는데 또 해요?”

  아이들 입이 불쑥 나온다. 돌봄 교실 아이들에게 국어나 수학 공부를 하자고 하면 고개를 흔들어 댄다. 교실에서 여태껏 공부하고 왔다며 재미있는 걸 기다리는 표정이다. 그럴 때 나는 매트를 가리키며 말한다.

  “가운데로 모여 앉으세요.”

  아이들 입꼬리가 올라가며 질서 있게 매트 위에 앉는다. 그림책을 읽어 주는 줄 아는지 떠들던 아이들도 조용해진다.     


  나는 그림책 표지부터 찬찬히 보여 주며 아이들에게 묻는다. 

  “여기 있는 주인공 기분이 어때 보이나요?”

  “화났어요.”

  “슬퍼 보여요.”

  “욕하는 거 같아요.”

  여기저기서 툭툭 나오는 말은 각자 자기 기분을 말하는 것 같다. 그림책만 읽으면 15분이 채 안 걸리지만 사이사이 아이들 이야기를 듣노라면 40분이 훌쩍 지나간다. 그림책은 자연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게 한다. 아이들은 방귀, 똥 이야기에 깔깔거리고, 돼지와 늑대 같은 동물과 장난꾸러기가 나오면 더 귀를 쫑긋거린다.      


  <세상에서 가장 못 된 에드와르도>는 돌봄 아이들이 좋아해서 서너 번 읽어 준 책이다. 주인공 에드와르도가 어른들에게 심술꾸러기, 사나운 녀석이라고 야단맞으면 아이들은 ‘오호~’ 하며 재미있어한다. 마치 자기는 그 정도 장난꾸러기는 아니라는 듯 우쭐한 표정이다. 

  그러다가 에드와르도가 발로 찬 화분이 우연히 흙 위로 떨어져 식물을 잘 기르는 아이로 소문나고, 개에게 물 한 바가지를 뿌렸는데 깨끗이 씻어줬다고 칭찬을 받으면 ‘우와아~’하고 웃는다. 에드와르도가 세상에서 가장 못 된 아이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가 되는 이야기다. 그때쯤이면 아이들은 ‘그럼 나도 사랑스러운 아이 맞나?’ 하는 표정이 된다. 


  돌봄 교실에도 에드와르도 같은 아이가 한 명 있었다. 못된 아이와 사랑스러운 아이를 수시로 오가는 아이, 바로 철휘였다. 부모님 나라는 ○○이지만 철휘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말도 잘했다. 

  봄이면 학교 둥근 화단에는 작은 꽃들이 피어났다. 해마다 꽃모종을 사다가 심고, 작년에 심은 꽃들도 피어나서 화사한 꽃밭이 됐다. 철휘는 아무도 안 보는 줄 알고 화단에 오줌을 누었다. 마침 그걸 본 여자아이가 달려와서 일렀다.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철휘는 해맑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거름 되라고요.”


  얼마 뒤 철휘는 화단에 핀 꽃을 꺾어 왔다. 처음엔 입을 꾹 다물고 말이 없더니 야단을 맞고야 털어놓았다. 

  “요건 선생님, 요건 엄마 주려고 했다고요.”

  철희는 꼭 쥔 주먹을 폈다. 양 손바닥에 꽃이 한가득이다. 나한테 주려고 딴 꽃은 오른쪽에 있었다. 나는 고개를 흔들면서 학교에 있는 건 함부로 따면 안 된다고 알려 주었다. 

  “밤만 되면 동네 사람들이 학교 숲에 열린 살구와 앵두도 따는데요”

  철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억울해했다. 학교의 주인인 자기가 꽃을 따는 건 괜찮은 줄 아는 거 같았다. 이런 못 된 녀석이 있나, 이런 사랑스러운 녀석이 있나, 하루에도 몇 번씩 철휘를 보면서 뒷목을 잡았다가 웃다가 나도 참 미칠 지경이었다.   

  

  돌봄 교실에서 남자아이들이 블록 놀이를 하다 말고 숙덕거리고 있었다. 둥그렇게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 게 궁금해서 나는 슬쩍 다가가서 귀를 기울였다. 우리 학교는 다문화 아이들이 많아서 돌봄 교실 아이들도 부모님이 외국인인 경우가 많았다. 수호가 부모님과 ○○을 다녀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국은 엄청 깨끗한데 ○○ 길거리는 지저분했어.”

  찬휘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확실히 깨끗한 거에서는 한국이 이겨.”

  수호가 물었다.

  “그럼 ○○이랑 한국이 진짜로 싸우면 어떻게 될까?”

  돌봄 남자아이들이 눈이 동그래지면서 한 마디씩 했다.   

  “○○이 이겨. 무기도 많잖아.”

  “한국이 이기지. 얼마나 싸움을 잘하는데.”

  “사람이 많아야 해, 돈도 많아야 하고…….”


  나는 저학년 돌봄 교실 아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 자연스럽게 부모의 나라와 한국을 비교하는 거에 놀랐다. 장난꾸러기 찬휘가 어쩐 일로 말이 없었다. 수호가 그런 찬휘에게 물었다. 

  “넌 어떻게 할래?”

  찬휘가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쳤다.

  “싸우면 안 돼!! 난 사이좋게 지내라고 화해시킬 거야.”

  수호와 남자아이들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싸우는 사람만 손해라고, 진짜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싸우지 않는다고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들은 이야기를 해댔다. 그러고는 아이들은 다시 머리를 맞대고 사이좋게 블록 놀이를 했다.      

  학교에 다문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 아이들도 우리나라의 아이들이고 우리나라 미래의 주인공들이다. 찬휘가 지금처럼 건강하게 잘 자라서 한국과 부모님 나라의 든든한 가교가 되기를 바란다. 찬휘 말대로 화해와 중재를 하는 민간 외교를 멋지게 해 낼 것이다. 역시 찬휘는 사랑스러운 아이다.     



  * 해마다 다문화 아이들의 출생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초등학교 전체 학생 중 다문화 학생이 비율이 4.2%(2021년 기준)이다. 이 글은 돌봄 교실에서 아이들의 대화를 쓴 것으로 순수하게 읽어 주길 원해 특정 국가를 지칭하는 대신 ○○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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