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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Oct 05. 2022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다

  운동회날이었다. 그해 운동회는 학년마다 퍼포먼스를 하면서 입장하기로 했다. 우리 2학년은 ‘토끼와 거북이’를 하려고 미리 미술 시간에 동물 탈을 만들었다. 탈을 쓴 아이들은 입장하려고 줄을 설 때부터 어깨가 들썩들썩 엉덩이가 씰룩 실룩 흥이 넘쳤다. 


  드디어 방송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학년 학생들이 동물 탈을 쓰고 입장하고 있습니다. 힘찬 박수를 쳐 주세요.”

  그 뒤를 이어 영어로 소개하는 말이 들렸다. 

  “Second grade students are entering wearing animal masks. Please give him a       big hand.”

  그다음은 우리 학교 다문화 아이들이 제일 많은 중국어였다.

  “图为2年级学生正戴着动物面具入场。 请报以热烈的掌声.”

  마지막은 어렵게 모신 러시아 언어 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Итак, ученики второго класса, одетые в маски животных. Поаплодируйте сильно.”   


  거북이 탈을 쓴 아이들은 엉금엉금 기어가는 흉내를 내고, 토끼 탈을 쓴 아이들은 뛰어가다 멈추고 잠자는 시늉을 했다. ‘와’ 구경하는 학부모들의 웃음소리에 박수 소리가 묻힐 정도였다. 다문화 학생과 학부모님을 위해 4개 국어로 방송을 한 보람이 있었다. 그날 운동회는 입장 퍼포먼스가 독특해서 시간이 한참 걸렸다. 무지개 우산을 빙글빙글 돌리며 입장하는 학년, 깃발을 흔들면서 오는 학년도 있었다.


  입장이 끝나고 줄을 서는데 제니가 나를 톡톡 치면서 작은 소리로 물었다.

  “선생님, 파키스탄 말은 왜 안 해요?”

  제니는 아빠가 파키스탄 사람이라 그 나라 말이 나오길 기다렸나 보다. 우리 학교에는 중국과 러시아 아이들이 많았지만, 파키스탄, 베트남, 몽골 아이들도 꽤 있었다.


  제니 언니를 작년에 가르치고 올해 제니를 만나서 더 정이 갔다. 자매이지만 제니는 언니와 아주 달랐다. 제니 언니는 나서기를 좋아해서 눈에 띄는 아인데 제니는 찾아야 보이는 아이다. 제니는 커다랗고 짙은 눈이 참 예뻤는데 그 눈으로 조용히 보기만 했다. 공부할 때도, 서로 발표하겠다고 해도, 춤을 출 때도 제니는 바라보기만 했다. 제니가 언니와 닮은 건 달리기를 잘하는 거였다.

  제니는 개인 달리기를 하고 나더니 나에게 도장을 보여 주었다. 1이라고 찍힌 파란 도장이 선명했다. 

  “부럽다. 선생님은 맨날 꼴등이었는데.” 

  내 말에 제니는 커다란 눈이 더 커지더니 자기는 1등 아니면 2등이라며 은근히 자랑했다. 


  마지막 운동회 종목은 전 학년이 큰 공을 굴리는 거였다. 운동장에 전교생이 타원형으로 모여서 청군과 백군 머리 위로 커다란 공을 한 바퀴 굴리는 경기였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함께 했다. 우리 청군은 공을 너무 세게 굴려서 바닥으로 여러 번 떨어져 결국 백군한테 졌다.


  운동회를 마치고 교실로 들어오면서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고 난리였다. 

  “선생님, 오늘은 결석한 아이 없지요?”

  제니가 내 옆으로 다가와 묻는데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싸우는 아이를 보면 피하고, 웬만한 거는 다 양보하는 순한 제니가 절대 물러서지 않는 게 있었다. 바로 먹는 거였다. 후식은 정확하게 인원수만큼 나왔다. 혹시 결석한 아이가 있어 한 개라도 남으면 아이들은 저걸 누가 먹을지 침 삼키며 집중했다. 그럴 때 내가 장난 삼아 “이거 선생님이 먹어도 될까?” 하면 아무도 대답은 안 하고 도끼눈을 떴다. 


  그럴 때 제일 좋은 건 ‘그날 생일인 아이’가 먹는 거였다. 아이들은 그건 인정했다. 특별한 행운으로 생일인 아이는 하나 남은 후식을 차지했다. 생일인 아이가 없는 날은 반 전체가 고민에 빠진다. 그러다가 아이들은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했다. 식탐이 있는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는데 비장한 전쟁터 분위기다. 그럴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아이가 제니였다.


  제니는 결석생이 한 명도 없다는 내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이제 어떤 반찬이 나올지 후식은 뭐일지 궁금하다며 얼른 자기 자리로 갔다. 손을 깨끗이 씻고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는 아이들. 나는 뜨거운 밥과 국 식판 뚜껑을 열었다. 물론 아이들 관심은 밥과 국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오늘 급식에 자기들이 좋아하는 치킨, 돈가스, 돼지갈비, 탕수육, 불고기 같은 고기반찬이 나오길 기대했다. 생선조림이나 버섯탕수육, 두부조림이 나오면 몇 명 아이들만 좋아하고 나머지 아이들의 입은 불룩 나왔다. 아이들은 모두 커다란 반찬통을 여는 급식당번을 쳐다보았다. 급식당번의 입이 활짝 벌어졌다. 

  “돈가스야!”


  벙글벙글 웃는 아이들 속에서 한 사람만 어두운 빛으로 바뀌는 게 보였다. 제니였다. 제니의 어깨가 금세 축 내려가더니 기운 없이 줄을 섰다. 급식 판에 밥도 조금 받고 국도 조금 받았다. 돈가스를 담아야 하는 곳은 아예 비워 놓고 깍두기와 콩나물 반찬만 받았다. 다른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더 큰 돈가스가 자기 식판에 올라오길 기다리는데 말이다. 


  급식 배식을 다 하고 밥을 먹으려는데 제니가 앞으로 나왔다.

  “저어, 선생님.”

  “응?”

  제니는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 

  “저기 있잖아요. 짝꿍이 받은 거 보니까 오늘 나오는 거 돈가스 아닌 것 같아요. 돈가스 아니지요?”

  아, 제니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 먹고는 싶지만 먹으면 안 된다며 참는 아이였다. 대신 닭고기로 만든 치킨가스면 먹을 수 있어서 묻는 거였다. 급식 안내표에는 돈가스라고 했지만, 가끔 메뉴가 바뀌기도 하니까 제니가 그렇게 묻는 거였다. 나는 아직 안 먹은 터라 “글쎄.” 선뜻 대답을 못하고 우물거렸다. 


  그때였다. 공부 시간에는 발표도 안 하고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던 제니가 갑자기 아이들에게 큰소리로 물었다.

  “얘들아, 이거 돈가스 아니지?”

  제일 먼저 급식받은 아이가 한 입 먹고 말했다.

  “그러네, 치킨가스 같아.”

  다른 아이들도 서둘러 먹더니

  “맞아” 

  “그래. 돈가스 아니야.” 

  여기저기서 소리쳤다. 

  제니의 입이 슬그머니 벌어졌다.

  “그렇지? 그럼 나도 먹어야지.”

  제니는 활짝 웃으며 급식 판을 다시 들고나가, 커다란 치킨가스를 받았다. 


  밥 먹는 시간처럼 행복한 시간이 있을까? 그날은 운동회 하느라 아침부터 뛰어다녀서 밥맛이 더 좋았다. 큰 공 굴리기 경기에서 청군이 졌다고 속상해하던 아이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꿀꺽꿀꺽 맛나게 먹었다. 그날 아이들은 좋아하는 메뉴가 나와 몇 배로 더 즐거운 식사였다. 제니는 어느 틈에 치킨가스를 다 먹고는 하나 더 갖다 먹었다. 우리는 아무도 급식실에 물어보지 않았다. 그날 우리가 맛있게 먹은 게 돈가스는 아닐 거라며 소스를 듬뿍듬뿍 묻혀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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