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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Sep 19. 2022

선생님이 깨워주세요

    오전 9시, 준영이 자리가 또 비어 있었다. 2학년 3반 아이들 25명이 다 왔는데도 준영이 빈자리만 눈에 띄었다. 준영이 아버지는 요리사인데 손님이 많으면 밤늦게 퇴근한다. 아버지와 둘이 사는 준영이는 아버지를 기다리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부쩍 지각이 잦자 나는 걱정되어 준영이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내 전화에 펄쩍 놀랐는데 그 때문인지 얼마 동안 준영이는 일찍 왔다. 어떤 날은 눈곱을 매단 채 달려왔고, 어떤 날은 티셔츠를 거꾸로 입고 왔다. 일주일쯤 지나자 준영이는 다시 늦기 시작했다.      


  방과 후에 준영이에게 왜 늦는지 물었다.

  “아빠가 한 번만 깨워줘요.”

  준영이는 한번 깨우고는 쿨쿨 자는 아버지 탓을 했다. 아버지가 깨워줄 때 벌떡 일어나야 하는데 그걸 놓치면 또 지각이었다. 그때 집에 같이 가려고 옆에서 기다리던 준영이 단짝 친구가 말했다.

  “내가 너희 집에 가서 깨워줄까?”

  “정말?”

  준영이만큼 나도 반가웠다. 


  다음 날 아침, 단짝 친구는 준영이를 깨워서 같이 학교에 왔다. 나는 단짝 친구와 준영이를 향해 엄지 척을 날리며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교사인 나도 하기 힘든 일을 단짝 친구가 해낸 것이다. 그런데 삼 일째 되는 날, 단짝 친구만 터덜터덜 혼자 왔다. 

  “선생님, 준영이 깨우는 거 못하겠어요. 아무리 불러도 나오지 않아요.”

  단짝 친구는 자기까지 늦었다며 입이 불쑥 나왔다.      


  준영이는 이 교시 끝날 무렵에야 왔다. 쭈뼛쭈뼛 말이 없던 준영이가 겨우 한마디 했다.

  “학교에 늦게 오면 안 돼요? 오후반이 있으면 좋겠어요.”

  준영이를 기다렸던 단짝 친구가 끼어들었다.

  “야, 중학교, 고등학교 형아들은 더 일찍 가, 네가 유치원생이냐?” 

  준영이 얼굴이 확 붉어지더니 소리쳤다.

  “나, 유치원생 아니거든. 혼자 일어나려고 해도 안 돼서 그런 거거든.”


  난감했다. 2학년 학생이면 부모가 깨워주는 경우가 많은데 준영이는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 전날 준영이 아버지는 새벽에 들어왔다고 한다. 이럴 때 야단치면 준영이가 너무 서러울 것 같았다. 

  “준영아, 늦긴 했지만 그래도 학교 온 건 잘했어!” 

  나를 쳐다보는 준영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학교 지각하지 않게 선생님이 도와주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준영이가 눈을 껌벅껌벅하며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선생님이 깨워주세요.”


  ‘뭐라고?’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아침마다 준영이를 깨워준단 말인가? 단짝 친구처럼 준영이 집에 가서 부를 수도 없고, 그러면 우리 반 애들은 자기도 그렇게 해 달라고 할 텐데.

  “흠, 선생님이 아침마다 전화해서 깨워줄까?”

  준영이는 기분 좋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준영이는 자기는 핸드폰이 없다며 아빠 핸드폰으로 하란다. 나는 알았다면서 준영이에게 전화를 꼭 받으라고 했다. 


  모닝콜을 하는 첫날, 신호음이 들리자마자 준영이가 전화를 받았다.

  “네. 선생님.”

  둘째 날, 조금 있다가 받았다.

  “……네. 선생님.”

  그다음 날부터는 들쭉날쭉했다. 한참 동안 아무도 받지 않거나, 끊어질 때쯤 아버지가 받아서 준영이에게 넘기기도 했다. 그럴 때 준영이와 아버지의 생생한 목소리가 들렸다. 

 “준영아, 선생님 전화 왔어. 빨리 학교가!”

 “에이, 몰라!”

 나와 준영이 사이가 나빠질 것 같았다. 


 전화는 받았는데 아무 소리가 없을 때도 있다. 그러면 내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애가 탄다.

  “준영아, 준영아?” 

 한참 있다 꿈속에서 헤매는 준영이 목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다. 

  “……네.”

  여기서 물러서면 준영이가 그냥 또 잘 수 있다. 속이 터진다.

  “준영아!!! 학교 와야지.” 


  모닝콜은 항상 성공적이지 않았다. 아예 전화를 안 받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에는 줄기차게 전화를 했다. 그렇게 전화를 하느라 내 기운을 쏙 빼놓고 나타난 준영이! 나는 무척 반가운데 준영이는 일부러 나를 못 본 척했다. 친구들과 놀면서 슬금슬금 나를 피했다. 일찍 온 날은 달랐다. 한 번에 모닝콜을 받은 걸 자랑하듯 내 앞에 와서 아는 척을 하고 인사도 했다. 그런 날 준영이 얼굴은 아주 환해 보였다.   

  

  준영이 얼굴이 환한 날이 또 있었다. 마을음악회 때였다. 학교 옆 공원에서 했는데 학교 선생님 몇 분과 함께 참석했다. 흰 목티에 빨간 나비넥타이를 한 준영이는 리코더를 연주했다. 교실에서는 리코더 못 분다고 그렇게 엄살을 부리더니 마을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불었다. 가로등 불빛과 새로 설치한 조명등까지 환히 비춰서 그런지 내 눈에는 준영이가 제일 잘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날 음악회는 들썩들썩한 마을 잔치였다. 한복을 입은 민요 가수들이 와서 어른들이 좋아하는 우리 가락을 노래하고, 초등학교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캐리비언의 해적’ 영화음악을 연주했다. 중간중간 추첨을 해서 선물을 나눠주고 팝콘도 튀겨 주었다. 팝콘 기계 앞에 줄이 길게 서 있는 게 보였다.


  “선생님, 이거요.”

  내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준영이었다. 종이봉투를 슬며시 내미는데 팝콘이었다. 한참 동안 줄을 서서 받은 팝콘을 내게 주었다. 한 개 먹어 보니 고소하고 따뜻했다. 준영에게 같이 먹자니까 자기는 또 받으면 된다며 달아나 버렸다. 가을밤, 가느다란 초승달이 뜨고 서늘한 저녁이었지만 준영이가 내민 팝콘 때문에 포근하고 훈훈했다.     


  “선생님이 깨워주세요!”

  이 말을 하는 준영이는 당돌하고 당당했다. 준영이가 앞으로도 쭉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살아가도록 학교와 지역사회, 나라가 준영에게 든든한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모닝콜은 늦게 받거나 아예 수신 거부를 당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준영이는 가끔 지각하고, 자주 일찍 왔다. 모닝콜로 부족했는지 준영이는 아버지와 마트에 가서 ‘알람 시계’도 샀다고 자랑했다. 알람 시계 덕분인지 모닝콜 덕분인지 모르지만 준영이의 지각은 점점 줄었다. 그렇게 준영이는 3학년이 되었고 아침마다 애타게 전화하던 나의 짝사랑도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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