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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은샘 Feb 25. 2023

                       책 출간합니다

http://m.yes24.com/Goods/Detail/117667871



“진정한 나의 주인공들,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


학교 합창부 지휘, 스카우트 대장, 환경봉사대 학생 지도, 학교 숲 관리, 돌봄교실…….

내가 교사가 되어 맡았던 업무들이다. 이 업무 하나하나에  많은 추억들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잊을 수 없는 건 돌봄교실 관리교사였다.

돌봄교실은 방과후부터 학부모들이 퇴근하는 저녁 9시까지 아이들을 돌보는 곳이다. 돌봄교실 관리교사는 아이들이 다 귀가할 때까지 돌봄 전담 교사와 함께 학교에 남아 있는 것이 주업무였다. 당시에는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10시에 집으로 가는 게 일상이었다. 출장을 갔다가 와도, 교직원 전체 회식을 한 후에도 돌봄교실 때문에 학교로 되돌아가곤 했다. 그 덕인지, 우리 학교는 전국에서도 돌봄교실 운영을 잘하는 곳으로 유명해 교육부 장관까지 방문할 정도였다.

처음 관리교사 일을 맡았을 때는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했을까, 후회스러웠다. 그때는 학교 교무부장이라 담임교사와 부장 업무만으로도 체력이 방전되는 듯했다. 돌봄교실 아이들이 모두 집에 가는 늦은 시간까지 교실에 있으려니 누에고치가 된 기분이었다. 갇힌 것처럼 답답하고 서글픈 생각까지 들었다.

방학 중에도 매일 출근해야 했고, 쉴 수 있는 기간은 방학내 ‘돌봄교실 방학’뿐이었다. 일주일간의 방학 외에는 돌봄 학생들처럼 나도 학교에 가야 했는데, 그럴 때면 다른 학생들과 부모님, 동료 교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모두들 시원한 해수욕장으로, 산으로, 해외로 가는데 나만 뜨거운 여름 방학을 꼼짝없이 교실에서 보내야 한다니!

그날도 평소처럼 돌봄교실에 가서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고 교실로 왔다. 방학 기간이라 아이들이 없는 학교는 무척 조용했다. 휘몰아치는 태풍 같은 아이들이 사라진 교실은 낯설고 어색했다.

고요한 교실, 아무도 없는 교실, 여름 방학에 혼자 있는 교실…….

그때였다. 아련하게 떠오르는 기억. 아, 예전에도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언제였지? 희미하던 기억이 점점 또렷해지더니 어릴 적 일이 생각났다.

6학년 때, 나는 서울에서 바닷가 근처 시골 학교로 전학을 갔다. 겨우 친구 한 명을 사귀었는데, 그 친구는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집에서 어린 동생을 돌봐야 해서 같이 놀 수가 없었다.

여름 방학이 되자 나는 더 외롭고 쓸쓸했다. 남동생을 비롯해 온 동네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살다시피 했다. 나도 몇 번 수영을 배우려고 따라갔는데 그럴 때마다 바다가 너무 무서웠다. 바닥에 발이 닿지 않으면 몸이 굳었다. 동생들은 하루하루 수영 실력이 늘어갔고, 나는 종일 몸을 비틀어대며 심심해했다.

그러다 내가 찾아낸 곳은 학교 도서실이었다. 전학 간 시골 학교의 작은 도서실은 말이 도서실이지 그냥 교실이었다. 교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한쪽 벽에 유리문이 달린 책장이 있고, 책장 안에는 세계 동화전집, 위인전 등이 있었다. 『소공자』, 『소공녀』, 『장발장』, 『제인 에어』, 『빨간 머리 앤』……. 나는 그런 책들을 읽으며 뜨거운 여름 방학을 보냈다.

동네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다이빙하고 작살 낚시를 하는 동안 나는 혼자 책을 읽었다. 거기서는 한여름의 열기를 피할 수 있었다. 선풍기가 없어도 창문을 열어 놓으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아무도 없는 교실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교문 앞 나무에서 우는 매미 소리만 들렸다. 그 도서실은 내가 책 속 주인공을 만날 수 있는 나만의 행복한 공간이었다.

시골 학교 도서실 생각이 나서 그랬을까? 아니면 학교에 오래 남아 있는 게 익숙해져서 그랬을까? 그 후로 밤늦게까지 학교에 머무르는 시간이 처음처럼 힘들지 않았다. 교실의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에 점점 안정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돌봄교실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이야기가 들렸다. 아이들은 책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인 사연을 품고 있었다. 마치 책 속 주인공이 현실 세계로 나온 게 아닌가 싶었다.

소풍 가는 날, 빈 도시락을 가져온 아이.

교사가 모닝콜을 해야 학교에 겨우 오는 아이.

밤 10시까지 엄마를 기다리며 꾸벅꾸벅 조는 아이.

나는 책을 보는 것처럼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아이들의 마음을 읽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돌봄교실 아이들의 진솔한 모습이 보이자, 답답하게 갇혀 있는 고치가 아니라 훨훨 나는 나비의 자유로움을 느꼈다. 꽃과 같은 아이들을 만나면서 나는 처음으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나에게 글이란 아이들의 편을 들어주는 일이었다. 교사로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들에게 힘이 되어 주지 못해 미안해서, 아이들이 어려운 일을 혼자 겪어야 하는 게 힘들어 보일 때, 나는 그런 아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그러면서, 네가 화를 내고 소리 지르고 우는 게 잘못이 아니라고 괜찮다며 다독거렸다.

초등학교 6학년, 전학을 가서 외롭던 나에게 책 친구를 소개해 준 교실, 거기서 나는 다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이제 내 친구는 더 이상 책 속에 있지 않았다. 내 곁에서 떠들며 돌아다니고 키득거리며 웃는 아이들이 진정한 나의 주인공이었다. 지금 나는 그 교실에서, 학교에서 어린 시절의 나처럼 심심하고, 외롭고, 같이 있어 주길 바라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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