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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서리 Jun 21. 2021

누군가가 주는 애정을 온몸으로 느낀다는 건

그 누군가가 사이버 친구라는 게 믿기시나요

주말에 그저 침대에 누워 하릴없이 뒹굴고 있는데, S에게 DM이 왔다. 다 쓴 노트를 구경하다 내 글에 대해 구구절절 적어둔 피드백을 발견했다며. 꽤 지나버린 시간에 나도 잠시 잊은 글이었는데, 약 한 달 만에 받은 피드백은 그 글을 나에게 다시 데려왔다. 사실 잘 쓰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글이었다. 그런데 그 글을 읽고 꾹꾹 눌러쓴, 날 '언어의 마술사'라고 불러주는 S의 한 마디가 뭐라고. 나는 월요일을 버텨낼 작은 씨앗을 얻은 기분이었다. 훅 올라오는 사랑스러움을 '얼굴 보고 꼭 말해줘야지' 하고 다짐하며 일요일을 보냈다.


그렇게 맞이한 월요일은 사실 그 나름대로 힘에 부쳤다. S의 귀여운 진심에도 불구하고 주말 내내 날 찾아온 무력감이 월요일에는 더욱 나를 괴롭혔다. 축축 쳐지는 기분과 몸 상태를 느끼면서 기계적으로 일을 해나가고 있던 오후. 또 다른 S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한 글을 읽고 전에 나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고. 내가 읽어보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글을 읽고 나를, 나와 했던 이야기를 떠올려준 S를 생각하니 삭막하기만 했던 회사의 내 자리가 괜히 따스해지는 것 같았다. 그 말은 가라앉았던 기분을 둥둥 뜨게 만들고, 내 마음을 깊은 바닷속에서 뭍으로 끄집어 올려주었다.


때때로 찾아오는 무력감을 잘 갈무리하지 못해 나의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때가 있다. 가끔은 별 거 아닌 일에 져버리는 것 같아 약해빠진 나를 자책하기도 하면서. 그런데 이제는 그럴 때면 S들이 화분에 물 주듯 나에게 슬쩍 줘버린 애정을 떠올리려고 한다. 의문과 질책으로 가득하던 머릿속을,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예진 시야를 스르륵 비우고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다정한 말들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월에 만나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5개월을 보낸 사이버 친구들이 나에게 이렇게나 큰 따스함을 가져다준다는 것이. 사과집의 책 <싫존주의자 선언> 중 '신인류의 우정'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종종 사이버 우정은 오프라인 우정을 넘을 수 없는 대체품으로 서열화된다. (중략) 이 우정은 안전하면서도 위험한, 멀지만 가까운, 모든 걸 알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새로운 시대의 우정'이다." 맞다. 나는 지금 새로운 시대에서 신인류와의 우정을 경험하고 있는 거다. S들을 포함한 따뜻함으로 무장한 이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애정을 받아가며. 그러면서 나는 다짐한다. 나도 이들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우리가 이어나가는 이 우정이 앞으로도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사실 한 편으로는 무섭기도 하다. 가늘고 긴 관계가 오래간다는 말을 나도 이미 들어서 아는데, 자꾸만 두꺼워져 가는 이 관계가 혹여나 중간에 툭- 하고 끊어져 버릴까 하고. 그럼에도 나는 불안과 안정을 동시에 주는 이 관계를 사랑한다. 우리는 두껍고 긴 관계가 될 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으니. 그리고 이 마음을 이렇게 끝내 기록하게 만드는 이 관계를 나는 앞으로도 계속 지속하고 싶을 거라는 것도 안다. 글을 매개로 만난 우리는 글을 통해 쭉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 느슨해 보이지만 단단하고 가늘어 보이지만 두꺼운 우리의 모습을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보고 싶은 마음이 욕심이 아니길. 슬쩍 바라 보는 어느 날의 밤이다.



_ <분노의 글쓰기 클럽> 친구들에게 바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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